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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토닥 Mar 16. 2023

[먼훗날우리] 잘 가 고마웠어, '먼 옛날의 우리'

<영화> 먼 훗날 우리, 초라했지만 반짝였던 너와 나에게


<영화> 먼 훗날 우리(2018)


  이 영화를 처음 발견한 건 넷플릭스 <아시아영화 추천> 페이지였다. 2020년 당시 나는 중화권 영화라 하면 90년대 홍콩영화나 만화책st. 대만드라마를 선호했던 터라 중국영화에 대한 큰 기대 없이 미리보기 한 줄만 대충 훑어보고는 영화를 넘겨 버렸다. 그러다 우연히 '주동우'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꼭 봐야 한다는 지인 추천으로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다 [별 4.9★★★★]의 평점을 가진 이 작품이 눈에 띄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먼 훗날 우리' 넷플릭스 표지>


  이 영화의 주인공 <젠칭(정백연役)> 샤오샤오(주동우役)는 같은 시골동네 출신으로 고향 가는 기차에서 우연히 처음 마주한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도망치다시피 시골을 떠나 도시로 유학을 온 상태였고 비슷한 점이 많아서인지 금세 친구가 된다.

자신의 부모처럼 시골에서 그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이 가진 원대한 목표는 바로,

  베이징에서의 성공을 위해 대학생이던 젠칭은 '게임개발자'라는 꿈을 키워가고 있었고, 샤오샤오는 베이징 남자와의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샤오샤오는 번번이 남자들에게 배신을 당하며 결국 길거리에 나앉게 되고, 갈 곳 없는 그녀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은 친구 젠칭의 곁이었다.


  그렇게 각박한 도시생활에 서로에게 유일한 위안이자 의지가 돼주었던 두 사람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이전과는 달리 <'함께' 베이징에서 출세하기>라는 변화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티끌 모아 티끌'밖에 되지 않는 팍팍한 삶에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한다.


  도시에서의 꿈을 접고 귀향해 안정적인 삶을 꾸려가는 친구들을 보며 불안과 자격지심을 느껴가던 젠칭은 패기와 희망 대신 '패배의식'과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되고, 자신을 대하는 태도까지 변해버린 젠칭의 모습에 지친 샤오샤오는 결국 그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샤오샤오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후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젠칭은 다시 그녀를 되찾기 위해 그가 처음 꿈꾸었던 '게임 개발'에 사활을 걸었고, 그 결과 게임 개발자로서 큰 성공을 거두어 <베이징에서 출세하기>의 꿈을 드디어 이루게 된다.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삶을 살 수 있게 된 젠칭은 기대와 희망에 들떠 샤오샤오를 찾아가지만 이미 많은 것이 변해버린 두 사람의 모습에 샤오샤오는 결국 한 번 더 그를 떠나게 된다.


  훗날 두 사람은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을 경계로 비행기 안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고, 서로 옛이야기를 나누며 '초라했지만 함께여서 빛났던' 두 사람의 청춘을 웃으며 회상한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한 그리움, 안타까움, 사랑이 남아있던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놓쳤음'에 눈물을 보이며 지난날을 후회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미 가정을 이룬 '젠칭'과 여전히 가난 속에서 외롭게 홀로 살아가는 '샤오샤오'. 두 사람은 그때 미처 제대로 나누지 못한 작별인사를 하며 서로의 가슴속 사랑을 묻어둔 채 진짜 '이별'을 맞이한다.  


초라했지만 반짝였던 그러나 되돌아갈 수 없는 '먼 옛날의 우리'   


  처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던 서로를 아낌없이 사랑해 준 두 사람이 서로를 잃고, 끝내 뒤돌아서 이별해야 했던 그 상황이 너무나도 슬펐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더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 영화가 이토록 강렬한 울림을 주었던 이유가 다른데 있음을 알았다. 이 영화에서 '젠칭'과 '샤오샤오'는 내게 단순히 남녀 관계를 떠나  '현재의 나'와 '과거의 너'의 이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초라했지만 희망으로 빛나던 두 사람의 20대는 서로가 전부였고 그랬기에 젠칭과 샤오샤오에게 서로는 '靑春'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제대로 된 작별인사로 떠나보내는 것이 최선임을 알기에 서로가 더욱 애틋하고 아련했으며, 추억보다는 "후회"가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30대가 되어 많은 것들이 변해버린 나 역시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보잘것없었기에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시간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고 그러다 보니 지금에 도착해 있었다. 그렇게나 원했던 안정된 삶, 경제적 여유 같은 것들을 얻고 나니 그제야 미처 돌보아 주지 못했던 아껴주지 못했던 '과거의 내'가 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두 사람이 그랬듯 지나간 시간의 나와 제대로 된 작별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왠지 그래야지만 먼 훗날의 나와도 제대로 된 안녕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두 사람이 함께였던 시간만이 화려한 색으로 빛나고, 헤어진 이후의 모든 시간들이 무채색이었던 젠칭과 샤오샤오처럼….'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초라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꿈 많고 빛났던 청춘의 나에게 편지 같은 일기를 썼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

再见[짜이찌엔, 잘 가 고마웠어.]


영화 <먼 훗날 우리>속 명대사




젠칭이 개발한 게임은 '이언'이 '켈리'를 찾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끝내 켈리를 찾지 못하면 이언의 세상은 온통 '무채색'으로 변해버리고,
수많은 유저들의 "미안해(对不起)"라는 메시지가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다.
켈리를 다시 찾게 되면 무채색이었던 마을이 다시 색을 되찾게 되고 이런 글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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