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샵 방문기 #1
지구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지는 시대,
친환경 소비와 가치 소비가 하나의 트렌드처럼 떠오르고 있다. 여전히 가성비를 일 순위로 두고 물건을 고르기도 하지만 요즘은 확실히 소비에 대한 관념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어디에, 무엇에,
어떤 가치에 내 돈과 시간을 쓸 것이냐?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과 소비 관념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가치 소비에 대한 수요가 늘어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샵'은 친환경적 삶의 실천을 도와주는 다리 역할을 해준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베러얼스 제로웨이스트샵>을 소개해보려 한다.
www.instagram.com/better_earth_zerowaste/
베러얼스는 사당역 근처 홈플러스 지하 1층에 입점한 제로웨이스트샵이다. '대형 마트 안에 제로웨이스트샵이 있다고?! 특이하네?'라는 생각이 따라온다.
왜?
지금까지 찾아가 본 제로웨이스트샵들은 대체로 어느 골목 상가 2층쯤에 위치해있고, 제각각의 고유한 색깔이 눈에 띄는-힙한- 공간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로웨이스트샵이 대형마트 안에 있다니 진짜?
홈플러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바로 보이는 베러얼스! 욕실 용품부터 주방용품, 생활용품, 리필 스테이션, 비건 식품까지 꽉꽉-! 알차게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보통 제로웨이스트샵에서는 버렸을 때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땅에서 썩을 수 있는 친환경 소재로 제작된 물건, 오랫동안 재사용할 수 있는 물건, 플라스틱을 대체한 재질로 만들어진 물건 등을 판다. 베러얼스 역시 다양한 친환경 제품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이러니 하단 생각이 드는 것은, 단지 힙한 골목 어느 곳에 위치하지 않아서라기보단 효율성과 가성비를 내세우는 대형 마트 안에 이런 공간이 움트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참 의미 있다.
베러얼스는 제로웨이스트 지향 상품들과 함께 네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히말라얀 터치의 상품들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베러얼스는 말했듯, 대형 마트 안에 입점해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사장님께서는, SNS를 통해 알아보거나 검색해서 알음알음 찾아가야만 하는 타 샵들보다 어르신들이나 마트를 이용하는 다양한 고객층들에게 접근성이 높다고 하셨다. 그렇게 찾아오시고 관심을 주시는 어르신들이 이용을 해보고선 다시 방문해서 아들 딸들을 위해 재구매를 하신다고. 베러얼스를 통해 대형 마트라는 익숙한 공간 안에서의 가치 소비가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게 된다. 하여 이곳은 장소적 의미가 남다르다.
서울시의 '제로마켓'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곳 대형마트 안에 자리 잡게 된 베러얼스. 최근에는 마트에서 공간을 조금 더 내어주어 착한 먹거리 코너도 꾸리게 되었다고. 짝짝짝!
서울시 내 총 일곱 군데의 '제로마켓'이 대형 유통매장에 입점했으나 현재는 두 곳만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중 한 곳이 베러얼스다. 가치소비, 친환경 소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사업체가 운영을 지속하기에 어려운 점이 적지 않았을 터. 또, 장소적 특성이 더 다양한 소비자층을 만나게도 해주지만 그 나름의 고충도 있는데, 마트 손님 사정에 따라 샵의 손님 사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 역시 환경 관련 단체에 몸 담으며, 왜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일은 돈이 안 될까? 하는 현실적인 질문에 정말 처절하게 부딪힐 때가 적지 않다.
희소식이 있다면, 베러얼스가 성동구의 새로운 거처에도 입점을 준비 중이라는 것.
녹록지 않을 테지만 꾸준히 의미 있는 일을 이어가는 움직임들이 주변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힘을 받고 다음 발걸음을 디뎌볼 용기가 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길 바란다. 가치 있는, 환경을 고민하는 소비가 조금은 더 대중적이고 당연한 지향점이 되길 소망하게 된다. (사실 나는 이런 지향점이 정상에 가깝다고 믿는 편향적인 사람이다.)
파이팅입니다. 진심으로.
나는 오늘 이곳에서, 필요했던 대나무 칫솔과 냄비 받침 그리고 귀여운 키링을 하나 데려왔다. 소비를 하기에 앞서 나에게 묻는다. 정말 필요한가? 오래 쓸 수 있는가? 진짜 가지고 싶은가? 이런 질문들은 생필품을 살 때면 어렵지 않게 답을 내릴 수 있지만 키링처럼 없어도 그만인 물건을 살 땐 좀 곤란해진다. 이런 것까지 일일이 고민하며 소비해야 하나? 현타가 올 때도.
그렇지만 진짜, 가치 있는 소비는 내가 뭔갈 사고 싶다는 욕구 자체를 부정하고 필요와 불필요를 냉철히 재단하는 것이라기보다 내 안에 떠오르는 소비 욕구를 들여다보고 내 욕구를 의미 있게 존중해주는 과정이 아닐까? 나는 귀엽거나 아름다운 것에 마음을 자주 빼앗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조금 더 사회적으로 이로운 가치를 가진 물건이라면 기꺼이 소비하고 싶다. 이런 물건들은 필수품이 아닌 것 같아도, 실은 필수품이다. 마음의 밭을 풍요롭게 해 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