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도 설렘도 없이
사진사는 대뜸 내게 물 위에 누워보라 했다.
증명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말이다. 나를 물가로 데려가서는 그렇게 지시했다. 물가에 다가섰는데, 바다인지 호수인지, 강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쪽 발을 슬며시 담그는데 거북이가 근처까지 다가왔다. '오우, 신기해. 근데 쟤가 나 물면 어쩌지?' 작은 걱정이 짧게 지나갔다. 나는 그대로 하늘을 바라보며 물 위로 몸을 던지며 덤벙 누웠다.
몸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몸에 힘을 쭉 빼고 있으면 자연스레 물 위로 떠오를 테니 잠자코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몸은 점점 더 깊이... 깊이... 가라앉았다. '왜 안 떠오르지?' 의아하면서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 그저 온몸의 힘을 될 수 있는 대로 쭈욱 뺐다. 하염없이 가라앉는 몸. 신기한 것은 숨이 막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속에서 나는 아주 편안히 호흡했다. 마치 물고기가 된 것처럼.
그렇게 언제까지고 깊이 가라앉을 것만 같았는데, 물속 한 편에서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내 몸은 그 물살을 따라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어떻게 되는 거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별도리 없이 물에 몸을 맡겼다. 내 몸에 뭔가 닿았다. 툭 닿았다가 멀어졌다 다시 닿기를 반복했다. 살며시 주변을 살펴보니 고래가 있었다.
고래의 헤엄이 소용돌이를 일으켰던 것이다. 나는 고래의 헤엄에 휩쓸려 움직이고 있었다. '계속 옆에 있어도 될까? 고래에 올라타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던 찰나 꿈에서 깼다.
꿈속의 나는 어떤 두려움도 설렘도 없었다. 몸에 힘을 빼니 떠오르지 않고 깊이 가라앉았다. 그것이 그저 편안했다. 어느 치우친 감정도 불러오지 않았다. 깨고 나서 한참 동안 꿈을 붙잡고 더듬었다.
힘을 뺀다는 것은, 애쓰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이를 수 있는 것일까?
어쩜 이르렀으면 하는 간절한 모습을 꿈으로 경험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동안 일과 관계 속에서 잔뜩 힘을 주느라 실로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어버린 나는 이제 힘 빼는 연습을 해보려 다짐했다. 안 그러고선 기절하고야 말 것 같아서. 근데 그거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어떤 두려움도, 설렘도 없는 마음. 꿈속에서 어렴풋이 매만져본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굳건한 평안과 고요. 그 순간에 다시 이르고 싶다.
그저 이제 관성을 내려놓자고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