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강력한
지그시 눈을 감았다. 엄마의 밥을 먹고 싶었다. 속눈썹 사이사이로 눈물이 배겨 나왔다. 눈을 떴다. 배가 고픈 퇴근길이었다. 알고 있었다. 오늘은 무엇을 먹어도 헛헛한 저녁을 보낼 것임을. 무엇이 그리운 것일까? 엊그제 엄마 얼굴을 보았는데 말이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생각났다. 거기서 어린(혹은 젊은) 주인공은 집에서 차려준 파스타를 게걸스럽게 먹는다. 온 입가에 다 묻혀가면서. 시간이 흐르고, 어느 예술가의 연인이 된 그는 이제 상대를 위해 애써 파스타를 만들어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언젠가 주어진 사랑을 당연하게 독식했던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어딘가 쓸쓸하고 고달파보인다.
며칠 전 엄마와 헤어질 때, 엄마가 기차 좌석에 앉는 것을 보고 돌아서 기차에서 나올 때, 기차 출입문의 단을 밟고 내려갈 때, 그때 나의 두발이 바깥으로 내디뎌질 때.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이 밀려왔다. 비로소 다시 온전히 혼자인 삶으로 되돌아갈 때면 방금까지 함께였던 상대는 영영 허울이 되어버린 듯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여전히 나는 파스타를 게걸스레 먹는 표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위해 애써 저녁을 차리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차린 식탁은 엄마의 밥과 달랐고 또 내가 삼킨 파스타는 자주 나를 탈이 나게 했다. 도무지, 사랑이란 게 뭘까. 영영 작별할 듯 돌아설 때 밀려드는 짙은 쓸쓸함만큼의 사랑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인생은 영화처럼 시각적 상징이 명확히 드러나는 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있는 대부분의 세상사는 반드시 권선징악이나 사필귀정의 결말에 도달하지 않는다. 세상의 사랑도 꼬여있긴 마찬가지.
눈을 꼭 감았다 뜨며 그리웠던 것은 엄마의 밥. 그러니까 마치 영화처럼, 내 기억 속에서 시각적(혹은 미각적)으로 상징화되어 버린 어떤 커다란 사랑이었다. 그러나 다시 눈 뜬 세상엔 그런 단순하고 강력한 것은 없다. 닳아버리면 끝이 나는 연약하고 조각난 사랑만이 난무한다. 마치 편리하고 맛깔나지만 부담스런 배달비에 먹고나면 쓰레기가 한 무더기 쌓여 현타 오는 배달 밥상 같다.
그렇지만 나는 또다시 지지부진하게 살고 지독하게 외롭다가 멍청하게 즐거워하고 사랑한다고 속고 속이며 달아졌다가 믿었다가 결국 어느 퇴근길, 또 눈을 감고 무언가를 그리워할 테다.
엄마의 밥이 떠오르겠지. 고프다, 배가. 필요하다, 조금 더 오래가는, 밥 같은 사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