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지기 전에 세상이 아주 잠깐 '파란빛' 이 되는 시간이 있다
곧 있으면 세상이 어둑해지는 바로 직전.
일하다가 공부하다가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길거리 카페나 상점은 저녁장사를 위해 불을 켜는 시간.
밖에서 놀던 새들은 둥지를 찾아 날아갈때 그 파란빛과 노을을 등에 지고 난다.
그 파란빛의 시간은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시간이다.
내 어린시절의 정서는 할아버지댁 시골들판이다.
여름,겨울 방학이면 내내 살다시피했다.
친구들도 없었다
학교가 서울이니 시골친구들하고 어울려 놀일도 별로 없었다
내 친구는 염소였다
염소는 아침이면 나랑 논두렁을 걸어 풀이 많은 풀밭에 겨울엔 논위에 메어놓으면 눈을 헤치고 종일 풀을 뜯어먹는다.
염소는 논두렁길을 네발로 걸으면서 하이힐 신은 여인처럼 조신하게 잘 걷는다. 더 신기한 개인기는 걸으면서도 똥글똥글한 똥을 싸며 걷는거다.
염소를 메어놓고 나는 이 고즈넉하고 드넓은 논밭을 걷다가 뛰다가 노래하다가 하루를 다 보낸다.
논밭도 넓지만 하늘은 더 넓고 더 높다.
하늘을 쳐다보다가 드넓은 하늘에 마음이 아득해진다. 어디가 끝일까...
해가 지기전 아침에 메어놓은 염소를 데려온다.
많이 먹었어?
메에~
배가 똥글해졌네.
메에~
노을 봐, 참 이쁘지?
메에에~
염소도 나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 걸음에 노을빛이 비췬다.
그리고 그 파란빛. 해지기 직전의 그 빛이 나를 재촉한다.
보글보글 찌게를 끓여놓고 나를 기다리시는 할머니. 어린 나를 놀려먹기 좋아하셨던, 구루몽으로 머리를 넘기셨던 멋쟁이 할아버지.
파란빛은 나를 집으로 이끈다. 어서 어둑해지기 전에 들어가라고.
퇴근길에 가끔 집 입구에서 하늘을 본다.
그 파란빛이 노을과 만나 하늘에 그림을 그린다. 노을마져 집으로 갈때까지 파란빛은 세상을 아득하게 비췬다.
이제 쉴 시간이라고. 집으로 갈 시간이라고 논두렁에서 날 재촉하던 그때처럼.
어린 계집아이였던 나를 마치 알아보는 것처럼.
내가 나이들어 할머니가 되어도 날 알아봐주렴. 잊지말아주렴.
자기만한 염소를 끌고 논두렁걸으며 노래하던 그 아이였다는 것을.
[사진.Canada Vancouv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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