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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Nov 30. 2019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매우 훌륭한 신경과학 대중서

저자 라마찬드란 박사는 인도 태생의 저명한 신경과학자로(의학박사, 철학박사),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이자 뇌-인지연구소 소장이다. 뉴스위크에서 선정한 21세기 가장 주목할 인물 100인에 선정되었다 하니 상당한 권위자로 보인다. 오랜만에 신경과학 책을 읽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기억에 남는 것은 많지 않다. 읽고 생각한 점을 정리하며 독후감을 적어본다.



1. 아직 확실하게 안다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아직 우리는 마음과 두뇌에 관한 거대 통합 이론을 제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내 대답이다"

(1장. 두뇌 속의 유령들 중)


저자는 현대 신경과학의 성취란 말하자면 걸음마 수준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물리학자 패러데이가 막대자석을 이용해 전기와 자기의 관계를 발견한 당시에 비견할 수 있다고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신경과학에 종사하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이번 세기 전반부는 역사상 전례 없는 황금기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보이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학부 시절 흠모하던 노교수님의 '21세기는 심리학, 인지과학의 황금기가 될 것이다'라던 말씀이 기억을 스쳤다. 학부생들에게는 혹할만한 떡밥이었는데, 아쉽게도 아직 그 황금기가 온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뭐 이젠 나하고 별 상관없는 일이지만...


뇌과학의 발전이 지난 세기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전 시대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며, 다시 말해 인접 학문과 기술 분야의 진보에 힘입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심리학은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설명하는 이론과 인간 피실험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측정하고 해석하는 방법론을 제공했다. 뇌영상 촬영 기법을 비롯한 생리적 반응 측정법의 진보는 뇌와 신경계의 활동 증거를 수집할 수 있게 해줬다. 컴퓨터과학은 인간의 마음 이론에 대한 시뮬레이션 연구 방법을 제공하는 한편, 인간 뉴런의 작동 방식을 모사해 인공 신경망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생물학은 동물과 인간의 마음을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통합 이론을 제시했다.


이렇게 수많은 학문들이 상호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대한 덩어리가 인지과학이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에는 이런 생각을 하며 묘한 흥분이나 설렘 같은걸 느끼기도 했더랬다...


저자가 적었듯 이 분야에는 아직 완전한 통합 이론이 없고, 연구자들마다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여러 경쟁 가설들이 상존한다. 최전선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팽팽히 맞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누구도 한 방에 속시원히 정리를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지적으로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견해와 증거들을 최대한 세세하게 전해야 하는 책무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다. 이는 스티븐 핑커의 책이 왜 두꺼울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내 나름의 뇌피셜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이 책은 백과사전 같은 텍스트 폭탄이 아니라 손쉽게 읽히는 대중서다. 자신이 맡았던 임상 사례들로부터 스토리를 이끌어내 독자의 호기심을 끌고 가는 접근법이야말로 이 책의 미덕인 것 같다. 아마 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분, 해부학 지식이 있는 분이라면 더 생생하게 와 닿았을 것 같다.


번역은 상당히 훌륭하다. 다만 번역의 퀄리티와 별개로 역시 아쉬운 건, 신경과학의 용어들 자체가 너무 요상하게 생겨먹어서 번역어도 요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십 년 전 신경심리학 수업을 들으면서 이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잃었던 가장 큰 이유는 요상한 이름들을 잔뜩 암기해야만 시험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땐 영어로 암기를 했는데 차라리 그게 외우기 속 편했다. ventral, dorsal, horizontal, lateral, frontal, pre-frontal 같은 식으로 대강 좌표를 짐작하고 hippocampus(해마), basal ganglia(기저핵) 같은 것도 그냥 영어로 외웠다. 한자보다 영어에 익숙한 세대여서 그런가, 여하간 해부학 용어들은 번역어가 영어보다 훨씬 더 난해하게 느껴진다.


한편 신경과학의 진보가 아직 걸음마 수준인 것과 같은 맥락에서, 내가 신경과학 책을 몇 권 더 읽는다고 마음과 몸의 작동 방식에 대한 훌륭한 통찰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경쟁 가설이 매우 많고, 그마저도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 훨씬 더 많으니까. 다만 과거에 비해 더 진일보한 답을 찾기 위해 연구자들이 노력하고 있고, 어떤 영역에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상당한 성취를 이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발견이 곧바로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실용적인 발견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일관되게 낙관적 견해를 보여준다. 다음은 본문 발췌.


영국의 면역학자 피터 메더워는 "과학은 해결 가능한 것의 예술"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시각에서 복수의 전문화된 영역을 발견한 것은 최소한 가까운 장래에 시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나는 그의 유명한 발언에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자 한다. 과학에서 우리는 종종 (인간의 눈에 원추체가 몇 개 있나 같은) 하찮은 질문에 정확한 답을 제공하거나, (자아는 무엇인가 같은) 중대한 질문에 모호한 답을 내놓아야 하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때로 우리는 (DNA와 유전의 상관관계 같은) 중대한 질문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발견하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된다. 시각은 신경과학에서 우리가 조만간 중대한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영역 중의 하나이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4장. 두뇌는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 중)



2. 지그문트 프로이트


한편 프로이트에 대해 저자는 매우 후한 평가를 준다. 한 세기 전 인물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사람마다 엇갈리는 듯하다.


개인적 소회는 이렇다. 프로이트는 그전까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무의식'과 '성'을 수면 위로 끌어내 공공의 담론으로 만들어낸 점에서 선구적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검증하는 방법에서는 당대 심리학자들이 추구했던 과학적 엄밀성과 동떨어진 태도로 일관한 결과, 추종자들과 함께 '정신분석학'이라는 교조적 학파를 만들어 주류 과학계에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러나 당대 경험과학의 방법론으로 검증할 수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통찰마저 모두 가치 없었다고 치부하는 건 지나친 폄하라 할 수 있다(라마찬드란은 이 대목에서 프로이트를 후하게 평가한다). 한편으로 임상심리학에서는 여전히 그 영향이 지대하며, 과학계가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서 오히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독창적인 설계도를 그려냈다. 그 설계도는 검증하지 않았(거나 못했)고, 그 자체의 신빙성과는 별개로 마음이라는 블랙박스의 인풋과 아웃풋을 얼추 설명하는 데 성공했고(얻어걸렸고), 대중은 열광했다. 후대의 평가는 복합적이다.



3. 진화심리학


저자는 과학계에서 기존의 믿음(정상)과 새로운 견해(비정상)가 충돌할 때, 새로운 견해가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잠재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적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진화심리학이 본원적으로 실험으로 검증이나 반증이 어려운 점이 한계라고 지적하면서도, 진화심리학이 아니면 달리 더 잘 설명할 수 없는 심리기제가 있으며 '웃음'이 그 예라고 적었다. 이미 많은 지적 성취를 이뤘음에도 이런 개방적이고 균형 잡힌 태도를 견지하려 노력하는 점은 정말 훌륭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과거 심리학을 공부하던 시절 나는 진화심리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른바 '표준사회과학모델

'이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당시 - 인간 본성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진술을 강요했던 분위기가 만연했던 20세기 후반 - 미국 과학계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한국 심리학계 교수님들도, 대체로 회의적인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소 거칠게 말하면, 심리학의 역사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현상을 경험과학의 세계로 끌고 들어와 관찰, 측정, 설명하려는 시도의 역사였다. 1879년 분트가 라이프치히 대학에 실험실을 차린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현상을 철학으로부터 빼내 과학으로 가져온 사건이었다. 물론 초기에는 그 관찰과 측정의 방법이라는 것이 매우 엉성하고 조악했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통제된 실험, 관찰, 측정의 방법론을 정교하게 가다듬고 인과관계에 기반한 마음 이론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강박적인 지적 전통의 후예들에게 반증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 이론이란 사변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오히려 나는 졸업 후 심리학을 몇 년 잊고 살았더니 진화심리학이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실험실에서 추구하는 과학적 엄밀성이라는 게 세상살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체화하고 나서였을까. 그냥 좀 더 일반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과거에 고수하던 기준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고 생산적이지도 않다"는 얘기다.


극단적으로 폄하해 말하자면 진화심리학의 독립변수는 자연 선택과 성 선택, 종속변수도 자연 선택과 성 선택이다. 이론 자체가 생겨먹은 바가 그럴진대, 그 진술이 검증 혹은 반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더 나은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통째로 기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일까? 인간이 동물의 연장선상이란걸 인정한다면, 생물학의 메타 이론인 진화론 외에 더 나은 대안이 있는가?


저자처럼 진화심리학의 한계와 유용성을 같이 인정하는 태도가, 합리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이 취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4. 철학자의 저항


인간의 마음을 실험실로 가져간 분트와 달리, 인식론의 세계에 붙잡아 두고자 했던 철학자들은 인간 인식의 본원성, 창발성, 현상적 경험 등을 강조하며 경험과학의 공격에 저항해왔다. 존 써얼의 중국어방 논증(1984)이 그런 시도였으며,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논한 '감각질(qualia)'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불과 수십 년 전 인류의 신경과학 지식이 일천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류의 저항은 꽤 호소력이 있었으나, 우리가 마음과 몸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쌓아감에 따라 점차 힘을 잃어간다.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고 있는걸 논리로 이해하기 전에 이미 몸으로 느낀다. 2012~3년 경 서강대에서 인지과학회 연차 학술대회를 하길래 마침 놀던 차에 구경을 갔었다. 당시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세션에서 철학과 교수님과 뉴럴넷을 전공하는 공학 교수님이 차례로 발표하시는 걸 참관했는데, 각각의 발표 내용에 대한 청중의 반응은 극적으로 갈렸다. 철학과 교수님이 준비한 카드는 30년 전 존 써얼이 내놓은 중국어방 논증이었고, 청중의 반응은 고요했다. 이어서 뉴럴넷 교수님이 당시 초기 버전이었던 구글 웨이모 영상을 보여주자 청중의 반응은 직전과 매우 대조적으로 '우와'하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철학과 교수님은 멋쩍은 표정으로 앉아계실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강한 인공지능과 약한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를 했는데, 2019년 현재 약한 인공지능은 이미 구현이 되었고, 강한 인공지능도 시간 문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어떤 철학자들은 끝까지 강한 인공지능의 '인간처럼 사고하는 컴퓨터'라는 인식론적 정의를 붙잡고 늘어지겠지만, 그닥 생산적인 태도는 아닌 듯 싶다. 기술은 그런 소박한 저항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부신 속도로 달려 나가고 있다.


이 대목에서 작년에 작고하신, 매사에 겸손하고 항상 초식동물처럼 온화한 어조로 말씀하시던 교수님께서 담담하게 '철학은 죽은 학문입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을 회고해본다.



생각을 마무리하며


핑커의 책에 비해서는 훨씬 손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신경과학을 다루는 대중서로서는 매우 훌륭한 책인 것 같다. 다만 역시 나는 문과에 심리학 전공자라 그런지, 인간 마음의 신경과학적 기전보다는 마음 그 자체에 관심이 더 가는 것 같다. 어서 진화심리학 책을 빡세게 읽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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