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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경 Sep 12. 2023

농심 고구마깡 -2

-소설가가 요양보호사가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아흔을 넘긴 이번 할머니를 끌어안으면 폭 안길 만큼 자그마했다. 

채널 순례는 9에서 시작했다. 중반을 향하여 가는 아침마당을 보면서 할머니에게 안마를 해드렸다. 잘할 줄은 모르지만 마사지도 해드렸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주물러드리고 얼굴에 팔, 다리와 발에 로션도 발라주었다. 어르신은 내가 무엇을 하든 그대로 앉아계셨다. 신부처럼 로션을 뺨, 이마, 콧등에 찍어놓고 문질러주면 어르신의 얼굴에 윤이 났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할머니 정말 미인이에요. 가끔 어르신 뺨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어르신도 사랑스러울 때가 많았다. 빈말이 아니라 아담하고 말이 없는 어르신은 정말 예뻤다.


 얼마쯤 시간이 흐르면 채널은 11번으로 옮겨갔고, 이상한 가족들을 리얼로 보여주는 꼭지를 거의 언제나 시청했다. 무섭고 이상하고 신기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가족들이 등장해서 정말 저 사연이 사실일까 의심하게 만드는 숱한 다큐를 쏟아냈다. 사람이 다양하다는 것과, 사람은 천성적으로 악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가 태반이었다. 


  나는 집에서 거의 TV를 본 적 없기 때문에 저런 이야기가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해야 할 아침에 방영된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내가 보기에는 여지없이 사생활 침해로 보이는 영역까지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침범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쉽다면 등장하는 식구들의 대부분이 (사용하는 말이나 대화내용으로 보아) 식자층과 거리가 있었다. 

  대단히 폭력적이며 직설적이며 내심을 거르지 않고 내뱉는 사람들. 늘 발톱을 세운 짐승처럼 할퀴고 싸우고 기어이 이기기 위하여 어떤 음해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 대화법에 익숙하지 않고 욕과 화와 병이 뒤섞여있는 사람들. 늘 새롭고도 놀라운 장면을 연출하는 장면을 보면서 지성과 인격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계층의 리얼 다큐를 아침마다 슬프도록 가깝게 접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십 분 안짝으로 스토리가 끝나면 SBS로 채널이 넘어갔다. 그즈음에 시작하는 토크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추워서 바깥출입을 할 수 없는 어르신 때문에 4시간 내내 집안에서 어르신을 위한 무엇인가 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나는 방과 거실의 시간을 구분하기로 했다. 방에서는 주로 안마인지 마사지인지 모를 이상한 물리치료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므로 손은 쉴 수 없지만 눈은 TV를 볼 수 있었다. 만약 방송이 없었더라면 그 시간을 보내기 참 힘들었을 것이다. TV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 너무 놀라운 광경을 보고 그 놀라움을 글로 쓰기도 했다. 


 나의 두 손은 어르신에게로, 시선은 TV로, 마음은 갖가지 상념으로 조용하지만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즈음, 어르신의 딸은 헬스를 가기 위하여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혹여 자신의 외출 인사가 나를 감시한다는 느낌을 주지나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그녀는 헬스 후 동네 아는 가게에 들러 커피를 마신 달지, 대형슈퍼에 들린 달지 하는, 매우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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