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저에게 너무 막말을 해요. 엄마가 요즘 바쁜건 알겠는데..."
"무슨 말을 하셨는데?"
"너는 죽을때 개처럼 죽을거다..."
"뭐?..."
그런 막말을 들었던대로 종이에 써보게 했다.
'고아원에 보내버릴거다. 정신과에 입원시킬거다. 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가 쓴 글을 보고 몸과 머리가 얼어붙는 듯 했다. 한참동안 말을 못했다.
"넌 그런 이야기 들었을때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이 들었어?"
"처음엔 속상했는데 자주 듣다보니 이젠 좀 익숙해요."
"그렇구나...익숙해졌다고 해도 니 마음이 아직도 속상하니까 나한테 말하러 온거 아냐?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듣고 엄마를 이해하려고 하지마. 엄마가 얼마가 바빴든지 간에 엄마가 무조건 잘못하신거야.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들었더라도 너는 니 존재 자체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고 충분히 가치있는 존재야."
이 아이는 학기 초부터 나에게 종종 엄마얘기를 했었다. 그 엄마는 나보다 나이가 어렸고 우즈베키스탄에서 그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넘어와 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다문화 가정의 티가 전혀 나지 않아 그 이야기를 듣고 우즈베키스탄을 검색해 본 기억이 있다. 아이의 아빠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 헤어졌고 한국에 와서 결혼한 남자는 나이가 많았고 몇 해 전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엄마는 한국말도 서툴렀는에 아이와 단둘이 외국 땅에서 살아가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즈베키스탄보다 한국생활이 더 나을 거란 기대감을 안고 넘어오셨을텐데..
그 엄마는 한국에서 욕설을 먼저 배웠고 그 힘듦을 아이에게 쏟아 붓는 듯했다. 아이는 초등학교때부터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고 도벽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생활 역시 도벽으로 인해 친구들과 멀어졌고 원만했던 교우관계는 없었다. 우울증 약 때문이라는 이유로 잠이 안깨서 학교에 종종 지각을 하거나 학교 다니는게 의미없다면서 종종 조퇴를 해왔다.
이 아이가 1년 동안 나를 참 많이 성장시켰다. 마음이 힘들고 학교를 자꾸 뛰쳐나가려는 아이를 붙들고 있으면서 '어떻게 이 아이를 도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미술치료 공부를 시작하게 하였고 책을 붙들고 답을 구하게 하였다.
이제 그 아이의 엄마를 붙들고 이야기 해보려 한다.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충조평판이 아닌 존재 그 자체에 주목하는 공감
아이를 임신했을때의 이야기부터 꺼내본다. 역시나 원치 않았던 임신이었다. 할머니는 몸이 불편하여 누워계셨고 엄마는 할머니를 돌봐드려야했고 돈을 벌 사람은 이 아이의 엄마 밖에 없었다. 임신하고 아이를 낳으면 돈을 벌 사람이 없었다. 그 아이의 엄마와 그 아이의 아빠는 아이를 지우려고 했지만 할머니가 그 아이를 지켰다. 그렇게 지켜진 아이는 태어나면서 엄마의 한 쪽 눈을 앗아갔고 할머니 손에 크면서 돈 벌기 바쁜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유치원때부터 다른 사람의 물건에 손을 댔고 거짓말을 했고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몸에 손찌검을 했다.
"아이가 이쁜 짓을 해야 이뻐하죠. 내 눈도 잃어 가며 괜히 낳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집에 손님 오면 손님 가방에 손 대고, 내 돈에도 손대고. 거짓말 하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자기 먹은거 그대~로 놓고 씻지도 않고 냄새 나고 방에 들어가면 옷은 쌓여있고 서랍 안에서 귤껍질 나오고 초콜릿 껍질 나오고. 하루 종일 휴대폰만 쳐다보고. 욕 안하면 어떻게 살아요!"
나에게 속의 울화를 토해낸다. .'어머니, 아이에게 욕설과 막말을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하려고 엄마와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 엄마의 힘듦이 이해되기에 차마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어머니, 어떻게 그렇게 사세요!..." 그 아이보다 그 엄마가 더 걱정이 되었다. 삶이 참 퍽퍽하고 위태롭게 느껴졌다. 엄마는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만 버텨보려고 한다고 한다.
마음은 언제나 옳다
감정이 옳다고 행동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존재가 부정당한 아이. 그 아이가 온전히 성장하여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엄마는 저에게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준 적이 없어요. 고맙다는 말도요." 아이는 엄마의 사랑이 고팠다.
"엄마가 망상이 있는 것 같아요. 정신과 약을 안먹어요. 일하는게 뭐가 힘들다고 집에 와서 짜증내요."
"00야, 너도 그랬었잖아. 친구들이 꼽 준다고 힘들어할때 너도 환각도 보이고 환청도 들린다고 그랬었잖아. 너 그때 얼마나 힘들었었니... 엄마도 그때의 너처럼 지금 많이 힘드신가봐. 엄마도 너랑 똑같이 말씀하셨어. 니가 정신과 약을 안 먹는다고. 엄마와 너는 서로 똑같은 말을 하고 있어. 너 학교에 있는거 힘들어했었잖아. 그때 엄마는 학교 다니는게 뭐가 힘드냐고 하셨었지. 너는 힘들면 위클래스 선생님이나 나한테 말을 하고 도움을 받지만 엄마는 누구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니. 엄마는 온전히 혼자 감당해내셔야되. 엄마 너무 힘드셔..."
어제 나랑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엄마가 힘들게 일하시고 들어오셨는데 집에 깨끗한걸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으실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 퇴근하고 들어오기 전까지 거실 청소를 해 놓기로. 이게 서로의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는 작은 표현이 되지 않을까?...
어제 00의 집안에 서로 따뜻한 마음과 온기가 돌았기를 바라면서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