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오리 Jun 09. 2024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이나가키 에미코/엘리

  -외로울 땐 독서



 저자인 이나가키 에미코는 전 아사히 신문 기자였다. 그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개인적 차원의 탈원전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원전 참사를 지켜보면서 원자력발전소 없이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 전자레인지 등을 버렸고, 나중에는 회사도 퇴직했다. 현재는 준공된 지 오십 년 가까이 되어서 큰 물건 놓을 곳이 거의 없는 원룸 맨션에서 살고 있다.

 전기세는 한 달에 150엔, 그녀는 더위와 추위는 그냥 견디고, 집안일은 오직 몸으로 하고 있다. 가스도 끊어버려서 식사는 휴대용 가스버너로 밥을 짓고 국과 소금에 절인 야채로 해결한다. 이틀에 한 번 동네 목욕탕에 가는 것이 가장 큰 오락거리라고 했다.

 그녀는 지금 행복하다고 한다.


 창밖에서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이 집에 십 년 넘게 살면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소리였다. ‘풍류’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한자로는 風流, 말 그대로 바람의 흐름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기 시작했다.
 그렇다, 무언가를 없애면 그곳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원래 거기 있었지만, 무언가가 있음으로 해서 보이지 않았던, 혹은 보지 않으려 했던 세계가.(43쪽)


 그녀는 냉난방 기기를 다 버리고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니까.


 사람이든 물건이든, 받아들이기 힘든 상대를 받아들여야 할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그 상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
 자세히 보면, 싫다, 싸워야 할 적이다, 하고 일방적으로 단정하던 상대에게서 조금이나마 좋은 점, 괜찮은 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상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다.(98쪽)


 냉장고는 현대인들에게 꼭 있어야 할 물건이다. 이제 냉장고 없는 삶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저자는 놀랍게도 냉장고를 통해 자본주의의 폐해를 파헤쳤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을 보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이 한 번에 살 수 있는 양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냉장고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얼마든지’ 먹을거리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다 먹지 않아도 되니까. 식품업계로서 이것은 엄청난 기회였다. 사람들은 이제,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사게 되었다. 언젠가 먹을 테니까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그야 ‘언젠가’ 다 먹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언젠가’ 먹을 것들을 사들인다. 그러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에는 결국 한계가 있다. 그러니 대부분은 버려진다. ‘음식을 사고 버리는 문화’는 어쩌면 냉장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량 생산, 대량 폐기. 이것이 경제를 움직여왔다. (134~135쪽)


 냉장고는 ‘먹는 것’을 ‘살아가기 위한 중심축’이 아닌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질시켜 버렸다.
 냉장고 안에는 사고 싶다는 욕구와 먹고 싶다는 욕구가 터질 듯이 가득 차 있다. 인간의 욕망은 멈출 줄을 모르고, 한번 들어간 대부분의 음식은 두 번 다시 꺼내지지도 않은 채 생을 마감한다. 음식은 이제 더 이상 음식이 아니다.
 냉장고는 세상에 처음 나올 때에 비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다. 사람들의 욕망이 확대되어 가는 모습 그 자체이다.(136쪽)


 이 글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나도 무한정 생산하고 소비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노예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냉장고 두 대, 김치 냉장고, 냉동고까지 겸비한 집이 적지 않다. 핵가족 시대에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음식을 소비할 수 있을까. 냉동실에서 잊힌 채 방치된 식품들은 얼마나 많을까. 안 그런 집도 있겠지만 많은 가정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우리의 욕망을 정면 직시하게 했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수입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망 자체를 두려워해야 한다. 폭주하는, 더 이상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된 막연한 욕망.
 그 욕망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그 욕망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정말로 만족할 수 있을까.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일이다. 냉장고가 있다고 무작정 식료품을 채우며 결국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게 정말 내가 행복해지는 길인지, 제대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137쪽)


 요즘 세상에는 편리하고 신기한 가전제품들이 엄청나게 흘러넘치고 있다. 그것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에 가슴이 뜨끔해졌다.


 (가전제품 회사들은) 그때까지 사람들이 생각지 못했던 ‘편리함’과 ‘쾌적함’을 부지런히 만들어냈다. 아무도 ‘필요하다’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점점 필요한 것이 되어갔다. ‘더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세상에 넘쳐났고, ‘왠지 필요한 것 같은’ 생각에 사람들은 사도사도 멈출 줄을 몰랐다.
 이게 바로 ‘경제 성장’의 실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해졌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물건이 많아지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고, 그건 분명 풍요로움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도 덩달아 커지고 복잡해졌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새 모두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방에 ‘당신에겐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넘쳐난다. ‘그것만 손에 넣으면 행복해진다’고 외쳐댄다.
 우리는 지금 ‘만들어진 혼란’ 속에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231~232쪽)


 전기는 우리의 욕망을 해방시키는 장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욕망은 일단 부풀리면 폭주하는 법. 그렇게 팽창한 ‘가능성’이 어느새 삶을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들고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게 된 게 아닐까.
 지금은 어느 집이나 가전제품뿐만 아니라 온갖 물건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이제 너무 많아진 물건들을 감당할 수 없어한다.(238쪽)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만들어진 혼란’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또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다시 자본주의가 생산해 놓은 것들의 도움을 받으려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말 그대로 악순환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저자의 고백을 통해 조금은 그 해결책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신없이 사 모았던 가전제품을 모두 처분한 내가 이렇게 편해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것은 가전제품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가전제품과 함께 부풀려온 욕망’을 버렸기 때문이다. (232쪽)

 

 그동안 자본주의는 개인들의 욕망을 부풀렸고, 개인들은 그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오면서 욕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욕망을 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질주하는 욕망의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쉬울까. 기차를 계속 타고 달리든지, 정신을 차려서 뛰어내리든지,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저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충격을 받고 심플라이프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중에 퇴직까지 하고 조그만 원룸에서 자기 몸을 직접 사용하는 소박한 삶을 꾸리며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녀는 편리한 문명의 이기인 전자제품을 버리고 좀 불편하지만 몸소 일을 처리하는 삶의 방식을 택함으로써 정신적 자유로움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문제는 전자제품이 아니라 그녀의 욕망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개인의 욕망을 은밀하게 부추기고 경쟁의 대열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이런 식으로 흘러갈 때, 혼자의 힘만으로 자기 욕망을 다스리기는 쉽지 않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발명한 온갖 종류의 편리함을 거부하고, 그 욕망의 대열에서 벗어났다.


 저자의 체험기를 읽으며, 욕망이 내재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외부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휘둘릴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은 처음에 단순히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다.

전기를 많이 쓰지 않으려는 저자의 여러 시도들이 너무 엉뚱해서 웃기도 했다. 그렇지만 저자는 전자제품을 하나씩 없애면서 생기는 불편함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욕망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자유를 느꼈다고 했다. 그런 반전에 놀라며 깊게 공감했다.

 저자는, ‘행복은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버리는 데에 있다’는 것을, 상상이 아닌, 현실로 보여주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나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쓸데없는 욕망을 줄이려고 노력해 봐야겠다. 행복이 거기에 있음을 깨달았으므로.

 저자에게 따스한 응원을 보내며...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금정연 일기/북트리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