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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Oct 07. 2023

이방인의 마음

역마살을 타고난 자의 #부산살이 단상

동네 울타리를 제 힘으로 넘어본 적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따금씩 베란다에서 엄마가 운동장을 뛰놀던 나를 찾아보겠다고 내려다보면, 나 역시 옥상에서 다섯 칸 아래 있던 17층에서 나를 찾는 엄마가 보였다. 그때 나는 키가 아주 작았으므로 또래에 비해 보폭이 꽤 좁았을 텐데도 작은 발걸음으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가 그 시절 생활반경의 전부였다. 조금 자라 학원을 다닐 때에도 동네를 절대 벗어나지 않았다. 가끔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거나, 다른 동네에 있는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어린 나에게 홀로 동네 밖을 벗어난다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자 공포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떠한 객기가 생겨, 사실은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지만, 난생처음으로 동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완벽한 이방인으로서 첫걸음이었다.




처음 홀로 됨을 느꼈던 순간은 아마도 등하굣길이었을 거다. 나고 자란 동네는 손 뻗으면 학교가 있고 조금 걸으면 떡볶이집을 지나 학원이 있었다. 등하굣길마다 친구 따라 조금 걸으면 금세 집에 도착하곤 했고, 그때마다 집에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방인이 된 도시에서 나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야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대부분 혼자였기에 많은 시간 혼자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집에서 멍하니 앉아 맛없는 식빵 따위를 오물거리며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떠날 땐 몰랐는데 그 바다가 그리울 때가 있다


조금 커서 새로운 도시에 비로소 적응했을 때에는 어쩐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적응력 하나는 끝내주는 타입이라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적응했지만 그럴수록 외로움은 깊어져갔다. 공허함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뿌리가 없어서였다. 땅 위의 내 삶은 제법 줄기가 굵어지고 때때로 꽃을 맺는 듯 보였으나 뿌리가 없어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물길 따라 떠내려갔다. 매일같이 하염없이 두어 시간 정처 없이 걸어 다니며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뿌리가 없는 나는 평생 이방인으로 살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다시 나고 자란 동네로 돌아왔다.


근 10년 만이었다.




고향에 돌아온 나는 드디어 아주 조금 뿌리를 내릴 수 있었는데 역마살의 저주인지 뭔지 이따금 터전을 바꾸어야 했다. 고향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부산으로. 발걸음 닿는 곳마다 타인의 눈에는 그저 부러운 행보였을지 모르지만 나는 매 순간 이방인이 되어 맨땅에 버려지는 느낌이었다.


주말 밤의 부산역은 너무도 외로운 곳이었다


이 시리즈를 '팔자에도 없는 부산살이'라고 칭하긴 했지만 사실 외로움과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 부산살이를 팔자로 만들 만큼 부산하게 지내왔다. 그 결과 지난  년 여의 시간 동안 부산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타지에서 부산에 돌아오는 날에는 아무도 없는 부산역과 터미널이 너무도 어색해서 이 도시가 싫었다. 누구보다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공허한 순간이 불쑥불쑥 떠오르다가 가라앉다가를 반복했다.


서울에서 해운대는 어찌나 먼 곳인지ㅋㅋ


감정이 널뛰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그럴 때마다 그 하루 나를 거쳐간 생각과 감정을 차분히 복기해 보곤 했는데 돌아보면 평범한 하루였다. 매 순간 행복할 수도, 그러나 불행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나는 이렇게 평범한 하루 속에서 생각 많은 나 자신을 지탄하며 생각하지 말자,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도 말자, 그냥 눈을 뜨면 몸을 움직이고 어두워지면 눈을 감자, 그렇게 단순하게 생활하는 연습을 매일 반복하고자 했다.




일상을 루틴화하면 생각이 조금은 단순해졌다. 서울살이에 비해 말도 안 되는 시간에 여유로이 일어나 아주 간소하게 준비(샤워, 머리 말리기, 5분가량 후다닥 화장)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전날 싸둔 도시락가방과 운동가방 챙기기는 필수. 아침 기분에 따라 노래 몇 곡 돌려 듣다 보면 일터에 도착했고 그렇게 아침해가 다시 저물어갈 즈음 퇴근했다. 8평 집에 돌아가면 또다시 공허해지니깐 바로 헬스장으로 향했다. 월화수목금. 최대한 헬스장에 매일 도장 찍듯 얼굴을 비추고 시간을 보냈다. 젖은 머리로 집에 돌아오면 대부분 9시가 넘었고, 때에 따라 더 일찍 도착하는 날들도 있었다. 지친 몸 지친 마음으로 도시락을 준비하다 보면 다리에 힘이 툭 풀리는 지점까지 힘을 긁어 쓴 느낌이 나는데 그때 조금 바닥에 앉아서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씻고 누웠다. 매일 정해진 쳇바퀴지만 나름 촘촘한 한 바퀴라 하루를 꼬박 살아내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은 게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바닥으로 하염없이 꺼지는 느낌이 드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이제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를 다 치워버려 주변은 더할 나위 없이 (거의) 깨끗하지만, 그래서 홀가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무언가라도 움켜쥐고 싶은 마음이 스쳐갔다. 아마도 나는 이 지긋지긋한 이방인 살이를 거부할 수 없는 팔자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온 맘 다해 이방인임을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토록 불안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편 이방인인 도시에서 이방인임을 못 견뎌하면서도, 아무도 내가 나인지 모르는 완벽한 이방인인 이 공간이 요즘 제일 편하게 느껴지는 건 무슨 얄궂음일까.


사람의 마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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