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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Oct 08. 2023

안녕 오랜만이야

지나간 인연에 대하여

사회로 내던져지기 전 마지막으로 맺은 인연들이 있다. 지금도 철딱서니 없지만 그때 나는 정말 날 것 그 자체였다. 전공과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고 도전해 본다며 무작정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분야에 문을 두드려야 하는데 문을 두드릴 방법조차 몰랐다. 정말이지 갈피를 못 잡던 시기였다. 난생처음 '스터디모임'이라는 걸 듣고서 가입을 받아주는 모임에 다 연락을 돌려 한 스터디모임에 찾아갔다.


그 스터디모임에 갔던 첫날을 기억한다. 생전 처음 가본 모 대학교의 연구실. 그때 나는 카키색 펑퍼짐한 요가바지와 푹 파진 쥐색 브이넥 티셔츠를 입고 거기에 무려 책가방까지 들쳐매고서 누가 봐도 요즘 유행이 무엇인지 1도 모르겠다는 차림새로 처음 보는 캠퍼스의 알지도 못하는 건물을 찾아 오르막 내리막을 헤치며 겨우 도착했다. 나는 그야말로 행색도 다르고 사태파악도 안 되는 이방인 그 자체였다.


내가 대면으로 만난 스터디모임은 그 모임이 마지막이었으니 비교할 순 없겠지만 그 모임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사람들이 착했다. 그들의 눈에도 나는 매우 독특한 존재였을텐데 첫날 내 차림새를 두고두고 놀리면서도 그들은 취준에 찌든 또래들에 비해 매우 착하고 순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A부터 Z까지 다 알려주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고 엄마 잃은 오리새끼처럼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같이 공부하기도 하고 놀기도 했다.


A는 그중에서도 한참 동안 나와 인연을 이어오게 되었다. 그 사람은 마음이 약하고 착했다. 나의 적응과 성장을 전적으로 도와주었던 이도 그 사람이다. 습자지 같은 나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공부해야 해, 이걸 봐두면 좋아, 이런 경험은 도움이 되지, 하는 정보들을 아낌없이 주었다. 그런저런 경험들이 도움이 되었는지 정신 차리고 보니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이 되었는데 그래도 A와의 연락은 간간이 이어갔다.


A는 서울살이를 좋아했다. 나야 먹고살아야 되니 이사를 했지만 A는 계약직을 이어가면서도 서울살이를 고집했다. 서울이 왜 좋냐는 말에 정말이지 전형적인 대답,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으니깐, 을 늘어놓는 A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로선 A의 서울생활이 반가웠다. 친구 하나 없는 각박한 그곳에서 A는 내 유일한 사적 친분이었달까.


A가 좋았던 이유는 많지만 하나 특별한 건 취향이었다. 개성이 뚜렷하지만 이 세상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던 나는 생각해 보면 매우 히피 같은 사람이었는데, A는 유행이 뭔지도 알았고 그럼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었다. 또 A의 포용력도 좋았다. 그 사람은 내가 첫날 입고 왔던 요가바지를 두고두고 리면서도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달리 나를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A는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좋아해서 전국에 기나는 카페를 꿰뚫고 있었고 그렇게 나에게 맛있는 커피를 찾을 수 있는 경험을 함께 해주었다.


A가 좋으면서도 안타까운 이유는, 자꾸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사는 것 같았다. 뭐라도 도전해보았으면 해서 내가 아는 선에서 이런저런 훈수를 두는 날에 A는 어김없이 눈물을 보였다. 하다못해 운전면허라도 땄으면 좋겠다고 말한 날이 있었다. 그때도 A는 울었던 것 같은데 그런 날이 있고선 미안함 때문에 며칠 뒤 A가 좋아하던 카페에 찾아가서 쓸데없는 시시콜콜을 늘어놓았다. 서울 도심을 1시간 가로질러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 역시 이런저런 변화를 통해 앞으로든 뒤로든 움직이고 있을 때, 어느 날 A는 연락을 끊었다. 아무런 다툼도 충돌도 없었기에 A에게 큰일이 있나 걱정해서 안부연락을 남겼던 것 같다. 하지만 답변은 없었다. 사실 기억조차 안 난다. 그렇게 A가 멀어졌다. 나로선 A가 멀어진 것이 꽤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오랫동안 고민해 보았다. 내 충고가 너무 매서웠을까, 아님 내 시시콜콜 이야기가 너무 지겨웠을까, 아니면 내 존재가 상처가 되었을까. 이런저런 고민 끝에 A에 대한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그 사람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정이 많아서 어렵게 어렵게 받아들인 이별이었다. 때마침 내가 정말 좋아하던 사람 역시 떠나보내고 하염없이 그리워하던 터라 그때 나는 많이 무너졌고 힘들게 더디게 회복했다. 그때 나는 뒷모습은 절대 불러 세우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이미 과거에도 이유가 있건 없건 떠나가는 인연들을 되돌리고자 출혈이 심했지만, A가 떠났을 때 인연은 오고 가는 것이라 어찌할 수 없다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A를 마주친 곳은 뜻밖에 부산이었다. A는 여전히 문화생활을 좋아해 매년 쫓아다니는 행사가 몇 있었고 그중 하나에서 마주쳤다. 부쩍 나빠지는 시력에 안경을 새로 맞춰 쓰고 나간 첫날이라 A를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밝고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좋아하는 행사에 들뜬 얼굴로 여기저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쩐지 날 본 것만 같기도 하도 못 본 것 같기도 했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A가 놓은 인연을 나 역시 더 이상 붙잡고 싶은 마음 손톱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한때 연락이 두절되어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한동안 걱정하였는데, 그건 아니었음을 눈으로 확인했기에 그거면 되었다.


떠나간 인연에 대해 생각하는 날에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진다. 왜 인연은 한결같이 이어지지 못할까, 왜 사람과의 관계는 냉장고 속 과일처럼 결국 상하고 시들어버리고 말까. 누군가 인연은 화분과도 같아서 과하게 물을 주어서도 안되고 애정을 쏟아부어서도 안되고 그저 필요한 만큼의 관심만을 주어야 된다고 했던 게 생각이 난다. 마음속 텃밭 한 귀퉁이에 심었던 식물들이 자라나고 시들고 죽고 또 태어난다. 귀하지 않았던 화분은 단 한 개도 없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거듭될수록 시드는 화분을 살리기가 조금은 벅찬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득 내 땅이 비옥하지 않아서 죽어갔던 화분에게 미안해진다.

 

키우던 선인장 매력이가 쑥쑥 크다가 어느날 화분을 떨어뜨려 간신히 살려두었습니다ㅠㅠ 매력이라도 다시 쑥쑥 자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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