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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색 Mar 07. 2022

토요일의 예배당에서

익숙하던 것이 낯설어질 때의 슬픔

  여러 사람이 함께 웃고 떠들던 공간에 나홀로 남겨지면 그 적막은 참을 수 없도록 버겁게 차오른다. 그 커다란 빈 공간의 몹시도 고요함에 압도되어 사뭇 긴장하며 미동도 없는 사물들의 단단한 결과 선은 유독 선명해진다. 이토록 넓었던가? 이토록 차가웠던가? 풍경이 좀체 친숙하게 다가오지를 않는다. 나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 타인처럼 느껴지고, 이 공간에서 가장 낯선 것이 나인 것만 같고, 이방인이 되면 이런 기분일까 싶은 적적한 감정에 휩싸인다.

  칠 줄도 모르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도, 레, 미, 한음씩 눌러본다. 다시금 낮은 도부터, 미, 솔, 또 다시 높은 도부터, 라, 파, 미, 도, 시, 라, 차례로 되짚는다. 맑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한층 처연한 분위기를 만든다. 때문에 조금 더 울적하게 마음을 내리 누르는 분위기로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현실에서 현실적인 고민, 먹고자 하는 것, 입고자 하는 것, 온갖 집안일, 근 미래 계획 따위로 마음의 호수가 바짝 메말라 가고 있다. 감상적이고, 감성적이고, 쓸데없이 이유 모를 슬픈 기분에 젖어들면 이 모든 단지 현재에만 충실한 고민, 좁은 울타리 안에 스스로 갇힌 것처럼 시달리는 불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라지 않는 행복, 원하지 않는 소망, 꾼 적도 없는 꿈의 그 막연한 즐거움에 잠시 나를 던져두고 싶었을 따름이다. 한 번도 들은 적도, 본 적도, 겪은 적도 없는 어떤 상황이 왜인지 모르게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알던 것이 낯설어지는 순간이면 비슷한 먹먹함이 찾아온다. 낯설지만 알 것 같은 것, 알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비슷한 감정을 자아낸다. 꿈속에서의 즐겁고 애틋했던 추억을, 영영 찾을 수 없고 찾지 못할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고 그리워할 때 심장 아래 어딘가가 아릿하게 아픈 듯, 감정이 통증으로 발현되는 현상을 경험한다. 생생한 망상만으로도 정말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고, 그런 사람을 만났던 것 같아 아득히도 멀어진 그것들이 보고 싶어진다.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오히려 내 기억에만 존재한다는 이유로 더욱 애달파진다.

  찬 바람이 심하게 부는 토요일 오후였다. 체기를 안고 예배당 마당을 한 시간 가량 빗자루로 쓸며 갖은 생각에 빠져 솔잎을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아무리 가지런히 쓸어넘기려 해도 저항이 심한 탓에 머릿속은 얽히고 설켜 곤두박질칠 태세였다. 인내심을 가지고 바람과 싸워, 울퉁불퉁한 아스팔트와 싸워, 뾰족해서 구멍마다 박히는 솔잎과 싸우고, 비질하기에는 영 시원찮은 빗자루와 싸워 마당을 말끔하게 치웠다.

  햇살이 부옇게 번진 예배당을 뒤로 하고 말간 하늘 아래 정처 없이 부는 바람을 피해 길을 떠났다. 토요일의 예배당은 모처럼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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