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담는 글쓰기 교실 - 첫 번째 과제 <오늘의 기쁨 찾기>
상황은 좋아졌다. 이직하고 한 달 차에 접어들어서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전 직장에서 탈출하다시피 나왔던 내 심정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해도 그다지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못내 서글프기도 하다. 그래도 어쨌든 살아서 나올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크나큰 중압감을 주던 곳을 뛰쳐나온 것만으로도 한결 자유를 되찾은 기분이다. 그러나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로 무작정 그만 둔 일이라 또 다른 난관이 있긴 마찬가지였다. 직장을 구해야 사람 구실도 하고 사람대접도 받는 거라 으레 알아서 구직하는 동안도 마음이 괴로웠다. 맨발로 돌밭을 걷는 듯이 불편하고 성가시고 울적했다. 더 큰 문제는 어떤 회사를 들어가든 전 직장만 같을까 봐 도무지 어느 회사에도 들어갈 마음이 들지가 않는다는 거였다. 주말도, 출근 전도, 퇴근도, 점심시간도, 연차도, 공휴일도, 명절도, 어느 때고 맘 놓고 쉴 수 없던 직장에서 맡은 일도 많아 퇴사를 통보하고 인수인계를 하는 한 달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런 상태라서 보통의 각오로는 이직도 쉽지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지쳤고 병이 나서 결국은 1년이란 시간을 공으로 보냈다. 그렇게 쉬는 동안도 재충전의 시간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매일 우울한 나날이었다. 무엇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고자 일부러 만든 1년이 아니었기에, 그저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막연한 결정이었기에 아무 계획도 없이 보낸 하루하루는 한가롭기만 그저 한가로웠고, 권태로웠고, 지루했고, 짬만 나면 눈물 흘리기 딱 좋은 일상이었다.
벌써 서른 중반의 나이에 무엇 하나 이룬 것도, 모은 것도 없는 내가 한심하고 보잘것없다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혀있었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만 사는 것 같고 그런 사람만 사람답게 사는 것 같고, 말년에는 서울역 어느 한 귀퉁이에서 여생을 보낼 것만 같다는 극단적인 불안이 자주 치밀어 올랐다. 첫째 언니가 결혼하고 둘째인 내가 이제 제일 큰언니, 큰누나가 되어서는 인생을 허비하고 있으니 동생들도 속으로는 나를 얼마나 괄시할까 하는 생각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1년간에 그나마 재미를 느낀 건 동생들과 함께 자취하는 집에서 꾸리는 살림이었다. 평소 일머리가 좋고 정리정돈을 잘하는 편이라 집안 살림에 소질이 있었다. 의욕적으로 야무지게 살림을 꾸리지는 않았어도 나름의 루틴을 정해 우리들이 쾌적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만큼은 했다. 때마다 치우고 닦고, 식사를 준비하고, 옷을 빨고 개고, 서랍이 비는 날이 없도록 가지런히 넣어두었다. 계절마다 이불을 바꿔주고 적당한 날에 이부자리를 빨아주고 생필품이 떨어지기 전에 채워주고,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놓고 식탁에 모여 앉으면 바깥 일로 고된 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지 않은 내 하소연도 해가면서 날에 날을 더해갔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것은 지나간 시간일 것이다. 슬픈 영화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즐거운 영화를 보면 신경에 날이 서고 듣는 음악은 전부 비참한 기분만 자극하던 1년도 고작 종이 한 장으로 압축이 된다. 우습게도 이미 지나간 것들은 아련한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때 찾지 못했던 그날들의 의미가 새롭게 되살아난다. 동생들은 날 괄시한 적 없었고, 세상은 언제나 똑같은 모양으로 흘러갔고, 엄마는 가만히 나의 다음 선택을 기다려주었다. 또 나는 한심한 사람인 적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우울증에 안 걸릴 인간도 극히 드물었다. 그때의 내가 찾지 못한 기쁨을 오늘의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날이 왔다.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었다. 오늘 내가 깨닫지 못하더라도 기쁨이 없는 건 아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