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담는 글쓰기 교실 - 두 번째 과제 <수잔 보일에게 느끼는 감동>
어느 한 사람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마치 원을 그리듯 도달한 종점에는 나 역시 나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있었다. 나에게만은 선입견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나이를 먹는 동안 선입견이라는 말의 의미마저도 선입견에 뒤덮인 상태였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무언가를 명확히 보기 위해서 ‘있는 그대로’라는 말을 반드시 앞에 붙이곤 한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 보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세상만사 모든 일에 연습 없이 되는 일이 없는가 보았다. 작년부터 자주 들먹이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엔 인과관계가 있고, 개연성이 있어. 개연성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한창 인기를 끌던 영국의 TV쇼 <브리티시 탤런트>에서 반전의 주인공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수잔 보일의 영상은 보는 나로 미소 짓게 했다. 그러나 끝 맛은 어쩐지 씁쓸했다. 수잔이 가진 재능이 그 사람의 외모에 가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그토록 경악할 만한, 박수와 환호를 받을 만한 대단한 반전이 되고 말았다는 데서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건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수잔은 시종일관 당당했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짐작해야 했다. 단순 수잔의 외모가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 있는 태도마저 비웃음거리로 삼아선 안 되었다. 또 심지어 수잔에게 그다지 훌륭한 재능이 실제론 없었다 해도 본인이 스스로를 사랑해서 가지고 있는 충만한 자신감을 아무도 조롱해선 안 되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귀한 게 사람이었다.
사실상 반전의 실체는 선입견이었다. 못생기고 인기 없는 사람은 봐줄 구석이 없을 거라는 선입견. 대체로 반전은 그런 데서 나타난다. 유튜브에서도 흔한 소재로 쓰이는 게 바로 반전인데, 가난한 행색을 한 사나이가 식당 입구에서 웨이터에게 쫓겨난 뒤, 곧바로 억대 스포츠카를 타고 명품 옷을 걸친 채 재등장한다. 그제야 웨이터는 극진하게 남자를 손님 대접하는데 남자는 무자비했던 웨이터를 곤란한 상황에 빠트린다. 방금 당신이 내쫓았던 거지가 바로 자신이었다고 밝히면서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얼마나 노골적이고 적나라한가를 배우는 요즈음이다. 좋은 배경이나 직업이, 대단한 학벌이, 훌륭한 외모가, 상당한 재력이, 덕목이나 교양보다 우위에 있다. 이런 현실보다 더 나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나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속물 중의 속물이라는 사실이다. 외적인 조건이 훨씬 나은 사람은 대하기가 어려우면서도 비슷하거나 더 부족한 사람은 두 다리 쭉 뻗고 누워도 될 만큼 편안해하는 두 얼굴의 소유자였다. 나의 실체를 깨닫고부터 조금씩 선입견을 버리려는 연습을 한다. 저 사람이 가진 것에 머리를 조아리지 말자, 없는 사람 앞에서 목을 뻣뻣하게 들지 말자.
무엇보다 선입견은 나 역시 그 굴레에서 무사할 수 없었기에 꼭 고쳐야만 했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존중해야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기비하라는 건 끝없는 갱과 같아서 아무리 떨어져도 나락의 끝에 닿지 못했다.
수잔이 보여준 게 바로 그거였다. ‘당신들이 날 보고 비웃어도 나는 날 사랑해. 나는 존재 자체로 존중 받을 가치가 있는 그런 사람이야. 그러니 얼마든지 날 보고 마음껏 웃어 봐. 난 날 위해 더 크게 웃어줄 거야!’
자신을 사랑하는 수잔, 나를 미워하는 나, 그 헤아릴 수 없는 간극이 오늘도 조금씩 좁혀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