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색 Apr 25. 2023

쉬운 일

  선은 단순하고 악은 복잡하다. 선한 것은 직관적이고 악한 것은 난해하다. 이 점을 잘 알면 세상을 알고 이해하기가 매우 쉬워진다.

  그러니까 누군가와의 관계가 복잡해졌다면 거기에는 수많은 이기심이 얽혀있어서일 것이다. 만약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라면 복잡해질 일은 전혀 없다. 배려마저도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한다면 제대로 된 배려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삶은 늘 복잡한 것이다. 자기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이 매 순간 부딪히고 부대끼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무 해석에 어려울 것도, 난해할 것도 없음에도 사람은 자기 죄성(악한 본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될 많은 일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설득이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타인도 자기 유익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서로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을 합리화하며 이런저런 말들로 에둘러서 아니라 하고, 남 생각 꽤 하는 척하고, 이기적임에도 좋은 사람으로 남기를 원하기에, 쉬운 일도 어려워지는 일이 다반사이다. 어린이를 애송이 취급하고 어른은 닳고 닳았다고 여기는 그 이유를 어른이 되고서는 잘 알게 되었다. 어린이는 노골적이고 수가 얕아서 쉽게 자기 속을 내보이지만 어른은 속에 능구렁이가 가득 차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말하지 않고도 취하는 법에 도가 튼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건 다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겠고, 그렇지만 나는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는 존재들로 가득하다.

  만약 난해한 문제에 직면했다면 원인을 파악하기에 앞서 우선 '인간이란 악하다'라는 전제를 두면 훨씬 이해가 쉽다. 매일같이 온갖 쓰레기를 버리고 살지만 우리 집 앞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오는 건 반대를 하는 게 인간이다. 아주 친한 친구가 한 남자를 좋아하면서 속으로만 품고 있는 걸 눈치채고서도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고 말하며 선수 치는 게 사람이다. 결혼을 하고서도 바람을 피우고 두 사람을 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사람이다. 동성 간 성관계로 엠폭스가 전염된다는 기사에 동성애자를 비난하면서 양성애자가 퍼뜨릴 전염병이 염려된다고 댓글을 달지만 부부가 아닌 사이에서 이 사람이 저 사람과 저 사람이 이 사람과 문란하게 성관계를 하고 병을 전염시키는 본질적인 문제는 생각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왜 청소년에게 피임을 가르치는 걸까? 자립 준비가 되지 않은 청년, 청소년이 살인이나 다름없는 태아 낙태를 쉽게 생각하고 가정과 결혼의 가치와 무게를 떨어뜨리는 사회 변화를 야기시키는 데 왜 동조하는 걸까? 사람은 왜 자기 필요와 유익을 위해서라면 가장 단순하고 옳은 선을 망각한 채 불구덩이에 뛰어들며 합리화를 하여 멸망을 자초하는 것일까? 왜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들까? 사람은 사람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아이는 아이답게, 아빠는 아빠답고, 엄마는 엄마답고, 학교는 학교답고, 공무원은 공무원답고, 이 모든 질서 정연하고 단순하고 올곧은 사회를 깨부수고, 없었던 가치관을 가지고 와서 물은 아래에서 위로 흐를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한 개념은 각자의 취향과 사고방식을 존중해줘야 하는 거라고 억지주장을 펼치는 것일까? 왜 정립하기 쉬웠던 일들을 전부 헤집어 엎고서 불신과 질병과 양극화와 분쟁을 가져오는 것일까?

  언젠가 한 친구가 집단에 속한 개인이 감당해야 할 할당량을 '1인분'이라 표현하며 '1인분'을 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부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심한 글을 보여주었다. 이 문제가 전혀 난해할 것이 없음에도 난해하게 여긴 데에는 또다시 인간의 합리화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타고난 죄성이 있기에 게으르고 나태하고 자기 몫을 타인에게 떠넘기고 자기 몸이 편하기를 바란다. 신체에 장애가 없는 사람이 여럿 모여서 같은 업무를 배정받아서 하게 되면 개중에는 일을 뛰어나게 잘 처리하는 사람이 있고 다소 일 처리가 둔한 사람이 함께 있다. 일을 뛰어나게 잘 처리하는 사람은 더 많은 업무와 더 많은 수당을 지급받는다. 만약 수당을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면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은 빨리 일을 끝낸 만큼 충분히 여가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러나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에게 수당도 더 주지 않는 조건으로 업무를 더 많이 주고 둔한 사람은 일을 적게 준다면 사용자가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폐단이다. 이런 상황의 부당함을 고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여기서 바른 처사는 부당함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다. 수당이나 휴식시간을 주는 것으로. 그런데 부당함을 호소했더니 해소는커녕 여기에 일을 더 얹어줄 테니 일을 더 해달라는 식으로 융통성을 요구한다면, 역시나 사용자가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유익만을 고려하여 근로자의 노동력을 갈취해 가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합리화는 할 것이 없다. 그렇지만 더더욱 이 문제가 난해하지 않은 이유는, 그리스도인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주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살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가 돈을 못 벌지라도 근로자의 형편을 먼저 고려해야 하고, 근로자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주의 뜻하신 바를 생각하며 남보다 더 많은 수고와 희생이나 고난도 기쁘게 당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 친구의 한때의 고민은 뭐랄까, 한 줄짜리 고민을 너무 멀리 돌아갔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매사 살아가면서 수많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곤 했다. 그 문제들이 어려웠던 이유는 하나같이 내 유익을 끌어낼 방도를 찾기가 힘들어서였다. 내 몸이 좀 힘들고 피곤하거나, 내 마음이 슬프고 아플 것 같은 선택은 피하고 싶었다. 물론 내 몸이 좀 힘들면 대신에 타인이 덜 힘들 수 있었다. 또 내 마음이 슬프고 아픈 대신에 타인은 기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늘 나 자신이 중요했다. 그래서 매사 일이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토록 쉬운 해결방법을 내버려 두고 나는 늘 어려운 길을 택했다. 내게 피해가 가지 않는 길을 찾기란 참 어렵고 복잡했다. 요즘은 회사 상황이 또 짱구를 굴리게 한다. 팀장급의 상사들이 대거 퇴사를 하고 나를 포함한 2년 차 신입사원들이 다수 남아서 10년 차 경력직원들이 해온 업무 이상의 것을 앞으로 소화해야 한다. 회사는 성과급이나 재택근무 등 우리가 좋아할 만한 조건을 제시하다가 상황이 바뀌면 조건을 갈아치웠다. 나는 이미 회사에 충분히 많이 양보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더 이상은 어렵다는 마음이 들어 회사에게 갑질하는 태도가 저절로 생겨났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란 인간의 간사함이 느껴졌다. 상황이 바뀌니 다른 부서의 팀장이 때때로 아직 사원인 나의 일처리를 미숙하게 여겨 따져 묻는 것도 전에는 아주 깜짝 놀라고 죄송스러웠는데 이제는 그냥 덤덤했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감정과 태도는 그래서 참 역겹다.

  나는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이 밑바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참 역겨운 존재이고 그만큼 너무도 불쌍하고 가련하다. 물론 사람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놀랍고 사랑스러운지도 알고 있다. 생각지 못한 배려와 호의에 놀라고 감동한 적도 있고, 이해가 도무지 되지 않는 인간의 죄성으로 인한 난해함도 많이 보았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은 살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데란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껏 말했듯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드니까, 타인을 위한다면 살기 쉬울 텐데, 아무도 지하철에서 이미 내리고 있는 사람 등을 힘껏 밀며 넘어뜨리지 않을 텐데, 업무를 잘 처리하는 한 사람에게만 일을 몰아주지 않을 텐데, 퇴근 시간 이후에 남아서 일을 하고 수당을 받으면 공짜 노동을 하지 않을 텐데, 밤길이 무섭지 않을 텐데, 이처럼 매일매일을 살아내는 것마저 버겁지는 않을 텐데.

  삶이 어렵고 힘들어서 쉽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적도 있었다. 지금은 다른 방도를 찾았다. 내가 그렇게 사는 것이다. 어렵지 않게, 쉽게, 나를 내려놓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오늘도 반성할 일이 많지만, 또 잘한 일도 많았다. 회사의 조건 변경에 대항하는 태도는 별로였고, 새로 온 신입사원과 새로 올 신입사원을 위해 필요한 물품을 챙겨주고 신경 써준 건 잘했다. 매일 성경 한 장을 읽고, 기독교 서적을 한 챕터 읽고,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드리고 보내온 하루를 복기하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며칠 뒤에 업무 관련 시험이 있어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학생 때나 지금이나 공부하려고 앉으면 딴짓이 참 잘 된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시험을 잘 본다는 단순한 진리를 또다시 어렵게 돌아가는구나. 쉽게 살아야 한다, 단순하고 쉽게.

매거진의 이전글 과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