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인 40대가 혼자 패키지 투어로 여행을 다니는 이야기다. 가볍고 읽기 편하다. 게다가 패키지다. 여행기에 으레 따라붙는 (괴롭지만 무용담 같은) 고행도, 당황하는 순간도 자기성찰도 미사여구도 없다. 지극히 사실적인 여행기인지 모른다. 현대의 여행. 적당한 준비와 예측가능한 동선 속에서 사소하게 놀라고 적응하는 일.
화장실 고충을 토로한 단락이 있다. 휴게소의 화장실을 먼저 이용하려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뛰어간다든가, ‘크리스마스 마켓 자유시간 2시간’ 중 30분을 화장실 가는 시간으로 비우고 적절한 시간을 맞추려 한다든가(늦게 가서 집합시간에 늦지 않게, 일찍 가서 요의를 느끼지 않게). 여행에서 화장실, 돈, 쇼핑 같은 일들과 얽힌 망설임과 고민은 꽤 많은 시간을 차지하지만 여행기에선 대부분 소거된다. 너무 사소해서일까.
몽생미셸 말고 삼바축제 말고 오로라 말고, 타인의 작은 순간들을 본다. 몽생미셸, 삼바축제, 오로라 이면엔 화장실과 컵라면과 레스토랑 합석이 있는 법이지. 그런 궤적을 따라가다보면 내 엉망인 궤적을 너무 원망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이상한 위안을 받는다. 이름붙일 말이 없는 이 감정을 생각한다. 존재만으로 온기이자 구원인, 우리의 사적인 순간들.
마스다 미리(2017)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
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