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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바다 Aug 01. 2018

스승은 네 안에 있어


다행이다
너를 가르치지 않아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어떤 마땅한 계기나 자극을 외부에서 공급받지 못한 채로, 그냥 내가 끌어올리는 글이나 생각들은 무가치한 것들 아닐까 나도 모르게 생각했었다. 무언가 모방할 레퍼런스가 없이 내 감각만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위험하고 유치한 행위라고 느꼈다. 그래서 새로운 책을 읽어대고 유튜브에서 이런저런 영상 작품들을 찾아보고 닮으려고 애썼다. 사람이든 경험이든 새로운 자극을 집어넣어야만 나 역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강박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우연히 잊고 있던 자그마한 진리를 다시 떠올렸다. 뜻밖에도 좀 얕잡아보던 어느 방송 프로그램을 보다가. 여기에 등장한 어느 나이 지긋한 예술가의 얘기를 듣고서였다. 놀라운 재능을 보이는 아홉 살 꼬마 화가가 예술가를 찾아가 앞으로 어떻게 연습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좋은 화가가 될 수 있는지 묻는다. 아이의 그림을 살펴보고 그간 어떻게 연습을 해왔는지 들어본 예술가는 뜻밖에도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행이다, 너희 부모가 너를 가르치지 않아서. 


"나는 30년간 학교에서 미술 교육을 시키고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 고민의 핵심은, 자꾸 가르친다는 거예요. (...) 지금은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네가 하고 싶은 것, 네 생각, 네가 표현하고 싶은 것, 그것을 하면 돼. 스승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행위 그 속에 스승이 있어."


 

홍대 미대 학장을 지내고 은퇴한, 도예 예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 어르신이 수십 년간 창작자로 살면서, 예술가를 꿈꾸는 수많은 창작자들의 명멸을 지켜본 소감을 그 몇 줄에 담아 말했다. 스승은 외부의 정형화된 가르침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네 안에 있으니, 너는 그저 네가 표현하고 싶은 것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그랬던 내가
스승이었다


아마 내가 영상이든 글이든 뭔가를 창작하는 사람의 길로 들어선 이유는 그런 행위에서 내가 오래전부터 재미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갈수록 드는 생각은, 재능이란, 어떤 영역의 생산을 일이 아니라 재미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 영역을 찾을 수 있다면 거기에 자신의 재능이 있다. 재미를 느껴서 자꾸 반복하고 훈련하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탁월한 깊이를 만든다. 그때가 돼서야 사람들은 "너는 그 일에 재능이 있구나"라고 알아챈다.


다만 이런 반복적인 창작의 과정에서 문제는 비슷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인정받길 원하다가 저도 모르게 타인과 비슷해지고 만다. 다름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한국 같은) 사회일수록 창작자가 잉태될 때 갖고 있던 다름들을 더욱 맨질맨질하게 갈아버린다. 그러다 곱게 '다듬어진' 창작자는 (운이 좋으면) 비슷비슷한 것들을 변주해가며 먹고살 수는 있겠지만, 창작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채로 생계형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꼬마 화가에게 70살이 넘은 예술가가 남겨준 말은 다듬어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해야 할 연습은, 나를 억압하지 않고, 나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찾아 자극을 불어넣고, 작은 힘으로라도 그것을 자꾸 표현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쓰고 말하고 찍고 만들면서 내 깊은 어딘가에서 보내는 어렴풋한 신호를 잡아내는 연습을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여 년 전 내가 만든 다큐를 학교의 허름한 상영관에서 틀었을 때, 그들이 웃다가 울다가 하는 모습을 보고 대단한 희열을 느꼈었다. 유튜브가 없을 때라 손쉬운 레퍼런스도 없었고 아직 채 다듬어지지 않은 기술은 어설펐지만, 시도만큼은 다른 이들이 해내지 못했던 일이었다. 스승은 그랬던 내 안에도 있었다.





방송에 출연한 분은 도예작가 신상호. (1947~)

한국 도예의 거장, 도예 미술의 선구자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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