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Q 파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원 Jul 06. 2024

불타는 공장, 사라진 사람들


시간이 흘러 여기 올라와있는 글들을 보았을 때, 그 시절 한국 사회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짧게라도 적어두고 넘어가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던 사건..


경기도 화성 아리셀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 현장


2024년 6월 24일 오전 10시경, 경기 화성시 ‘아리셀’이라는 리튬 배터리 공장에서 불이 났다. <시사인>의 기사에 따르면, 공장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당시 “건물 한동 굵기의 화염”을 보았고 “전쟁이 난 것처럼 하늘에 시커면 연기가 가득찼다”고 한다. 이 사고로 23명이 죽고 8명이 다쳤다. 사건 직후 기사에 따르면 다친 사람 중 2명은 중상으로 위독하기에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튬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에너지의 빠른 입/출이 가능하다. 그런 특성으로 인해 잠재적 폭탄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루기 어렵고 위험성이 높다. 특히 아리셀이 만드는 리튬 배터리는 군납용으로 무조건 100% 완충 고에너지 상태로 보관했다고 한다. <시사인>이 인터뷰한 배터리 재활용 업자는 “불나는 게 무섭고 너무 위험해서 이제는 리튬 배터리를 취급하지 않는다”며 습도, 온도, 충격에 의해 쉽게 자연발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폭탄’과도 같은
물질을 다루었지만...


이 사건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화재가 발생한 아리셀 3동 공장 2층은 화성 소방서에서 지난 3월 ‘다수 인명피해 발생 우려지역’으로 지목하고 ‘3동 제품 생산라인 급격한 연소로 인한 인명피해 우려 있음’이라는 내용의 위험 경고를 했던 곳이다. 불나기 세 달 전에 여기 이대로 두면 사람 죽겠다는 내용을 이미 다들 인지했다는 뜻이다. 그래놓고는 거의 아무런 실질적인 대비도 안 했다.



불타는 공장, 그리고 경영진의 뒤늦은 사과


둘째, 사람이 일하고 생활하는 모든 장소에는 화재 및 재난의 위험이 있으므로, 위험에 대비한 탈출 동선과 비상구를 면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불이 어디서 날지 지진으로 어디가 무너져 막힐지 모르므로, 극장 상영관처럼 앞 쪽의 문 두 곳과 뒤쪽의 문 등 여러 경로로 대피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위험물을 다루는 공장은 말할 것도 없다. 더욱 완벽하게 대피 경로를 다중으로 설계했어야 한다. 하지만 사고가 난 3동 2층 작업장에는 황당하게도 제대로 대피할 수 있는 문이 없었다. 문 하나는 짐으로 막혀있고 다른 하나는 불이 난 리튬 배터리 뒤편에 있어서 사람들이 나갈 수가 없었다. 


위험한 장소에 직접고용 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돈이 많이 든다. 위험 물질이라도 다루면 교육도 시키고 안전 장비도 지급해야 한다. 수당까지 더 줘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험한 업무만 골라 하청이나 파견에 맡기면 알아서 하라고 시킨 뒤 적은 비용만 주면 된다. 


그러다 사람이 죽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고 뒤늦게 사회는 그것을 위험의 외주화라고 불렀다. 고 김용균씨 사건에서 보듯 공기업까지 이런 방법을 활용할 정도로 한국에서는 이미 이것이 기업가를 위한 ‘비용 절약 꿀팁’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아리셀 화재사고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그나마 위험의 외주화 시절에는 내국인 노동자가 대상이라 사람이 한 명만 죽어도 기업이 여론 악화로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2024년 아리셀에서는 더 값싼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쓰고 위험에 대비하는데 충분한 지출을 하지 않았다. 이것을 이제 위험의 이주화라고 표현한다.



화성 아리셀 화재사고 합동 분향소


시 한번 이 숫자를 적어둔다. 이 사고로 23명이 죽었다. 18명은 외국인이다. 


험하거나 더러워서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곳에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외국인이 들어온다. 한국 인구는 급격히 줄기에 산업을 유지하려면 앞으로 이주노동자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없으면 제조 공장이나 농업은 망한다. 그들은 한국 경제의 생산 기반이 유지되도록 가장 밑바닥에서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그런 사람들이 죽어서도 한국인들로부터 조롱당하고 혐오하는 말을 듣는다. 이런 역사상 최악의 화학공장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사고 일주일 만에 사람들의 기억과 언급에서 사라지는 중이기도 하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가족들 건사하고자 먼 길 떠났다가 죽어서 돌아온 아들, 딸, 엄마, 아빠들... 그들의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대신 사과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나 그럴 자격이 없기에 이런 글을 쓴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노는 물을 빚으로 살 수 있다면 ② 해방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