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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l 22. 2024

극단적 정치 테러의 배경


총알 하나가 미국 대선 후보이자 전직 대통령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약 135m 거리에서 발사했음을 생각하면 범인의 심장 박동이나 건물의 미세한 진동만으로도 총알의 위치가 끔찍하게 바뀔 수 있었다. 범인의 차량에서는 사제 폭발물까지 발견되었다고 한다. 즉시 사살되지 않았다면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정치 테러 사건으로 기록될 뻔했다.


지지하는 정치인은 아니지만 트럼프에 대한 총격 사건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인에 대한 극단적인 테러가 최근 몇 년 사이 아시아, 유럽, 미국, 남미 등 전 세계에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일본 아베 전 총리가 전직 자위대원이 쏜 총에 맞아 죽었고, 같은 해 아르헨티나에서 전 대통령(현직 부통령)에 대한 총격 시도가 있었다. 그해 10월 미국에서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집에 칼을 든 괴한이 침입해 남편이 큰 부상을 당했다. 이듬해에는 일본에서 현직 기시다 총리에 대한 폭발물 테러가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총선 때 이재명, 배현진 의원에게 흉기 공격이 있었다.


이밖에도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전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테러가 벌어지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정치테러는 왜 늘어나고 있을까? 어떤 사회적 경보 신호가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Q파일에서 정리해보고자 하는 질문들이다.


미드저니로 그린 삽화


민주주의 사회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일은 늘 있어왔다.


샤츠슈나이더는 갈등이 민주주의의 핵심 동력이라고 말했다. 이익 집단들이 갈등하고 부딪히다 보니 잠재된 사회적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며, 그로 인해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 정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고 본 것이다.


또한 논란이 되는 이슈가 생기면 사람들이 평소에 몰랐던 문제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갈등이 정치 참여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갈등이 정치 참여와 대화를 이끌어내고 정책까지 이어지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정확하고 잘 정리된 사실이 제공되어야 한다. 질 좋은 시멘트로 건물을 지어야 살기 좋은 튼튼한 건물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예전에는 TV나 신문 같은 미디어가 공론장에 사실을 공급하는 역할을 꽤 열심히 했다.


받아보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다들 욕먹지 않기 위한 선은 지키고자 노력했고, 누군가 사실을 왜곡하더라도 다수가 경쟁하며 사실을 취재해서 보도하면 공론장에 풀린 썩은 물은 곧 정화됐다.


사실이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실이 사라지고 있다.


트럼프가 총을 맞은 직후 X를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에는 “미국의 주요 미디어가 트럼프 암살 시도를 은폐하려고 한다”는 음모론이 빠르게 확산됐다.


내막은 이렇다.



CNN이나 워싱턴포스트는 사건 직후 1보에서 <트럼프가 혼란스러운 현장에서 호위를 받으며 퇴장했다(Trump Escorted Away After Loud Noises)> 정도의 중립적인 헤드라인을 뽑았다.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유명인들은 이 헤드라인을 캡처해 이것이 주류 미디어가 트럼프 암살시도를 축소하고 거짓말을 한다는 근거로 이용했다. 암살 시도가 확실한데 그냥 적당히 퇴장했다는 식으로, 트럼프에 대한 주목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축소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 알고리즘은 이런 자극적인 음모글을 좋아한다.


글에 반응이 몰리면 알고리즘은 그 글이 사실이든 말든 순식간에 퍼뜨린다. 그래야 사람들이 플랫폼에 더 오래 머물면서 이것저것 클릭하고 광고도 보기 때문이다. 내용 자체가 거짓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일론 머스크와 그 추종자들이 퍼뜨린 위의 헤드라인도 그렇게 순식간에 '주류 미디어의 거짓말'로 널리 퍼져나갔다.



한번 생각해 보자. CNN이나 워싱턴포스트는 왜 첫 헤드라인을 건조하게 뽑았을까?


신뢰받는 언론사들은 중요한 사건일수록 오보를 내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한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자들을 투입해 집중적인 팩트 체크를 한다. (그러지 않은 대표적인 예가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다.)


그런 취재를 거쳐 범인의 존재와 범행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자 두 언론사는 제목을 즉시 정정했다. 하지만 더 정확한 팩트 전달을 위한 잠깐의 지연은 진실을 은폐하는 시도로 둔갑해 버렸다.


참고 : 위 과정을 논의하고 정리한 워싱턴 포스트 기사 : "트럼프 총격 사건에서 사실 확인을 위한 언론의 기다림은 어떻게 백래시를 불러왔는가?"


마주침의 실종


진실과 사실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처음은 아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주류 미디어는 없는 일화까지 꾸며내서 대통령 찬양을 했다. 하지만 그때 사람들은 땡전뉴스만 보면서도 진실이 뭔지 알았다.


완벽한 언론 통제에도 불구하고 1980년 광주학살의 진실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각성시켰고, 1987년 6월 항쟁은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고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미디어가 엉망이어도 사람들은 스스로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며 균형을 찾아낼 수 있다.


같이 만나서 이야기하면 여러 사람들이 보고 들은 바와 상식에 비춰 올바른 정보가 선택되고, 공급이 제한적이어도 팩트는 마치 생명을 가진 듯 사람들의 연결망을 타고 퍼져나간다.



지만 이제 사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대화와 토론이 일어나는 사람들의 마주침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람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예전에는 어쨌든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의 사회적 성격 때문에 온갖 종류의 사람들은 일터에서 어우러졌다. 불과 10~20년 전까지 공장이나 회사, 농촌에서는 적어도 그랬다.


하지만 지식 노동이나 플랫폼 산업이 경제의 뼈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타인과 마주칠 기회가 줄어들었다.


제조업 생산은 로봇이 대체하고 플랫폼 노동에서는 각자의 이동수단을 타고 일한다. 쿠팡 창고에서는 여럿이 일하지만 협력할 필요가 없다. 모니터로 하달되는 지시에 따라 각자의 일을 할 뿐이다. 심지어 요즘 빠르게 성장하는 AI 학습용 데이터 레이블링 업체의 노동자 수십만 명은 전 세계 각 대륙에서 자기 집 컴퓨터로 일한다.



거울의 방


자연이나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현대 도시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롭다. 항상 무언가와 연결되어있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제 타인과 다이렉트로 연결되면 인간 특유의 ‘다름’이 부담스럽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와 다른 생각, 나에 대한 부정을 피하고 싶어 한다.


구글, 메타 등 빅테크는 그런 본능을 연구하고 수익화한다. 빅테크가 만들어내는 수익모델의 일관된 방향은 (1) 항상 연결된 느낌을 주고 (2) 그 연결된 세계에서 타인의 이견이나 부정적인 느낌을 없애며 (3) 도파민을 즉시 자극하는 놀거리를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플랫폼에서 자기와 비슷한 것들이 주는 편안함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사람들은 자신이 유튜브나 SNS에서 타인을 많이 접한다고 생각하지만, 생각해 보면 거울의 방 속에서 자기 모습의 반사일 뿐이다.


의견의 형성 과정이란, 어렴풋한 내 입장이 나선형으로 돌면서 타인을 참조하고 좀 더 풍요로워져서 돌아오는 과정이다. 요즘에는 나선으로 갔다가 오긴 하는데 건너편에 타인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것이 서 있는 셈이다.


여럿이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혼자 있고, 타인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를 사랑할 뿐이다.


이렇게 각자 거울의 방에 머물다 보면 자신의 편견이나 고집이 뱅뱅 돌면서 망상에 가까운 수준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사람들 간의 생각의 차이도 점점 커진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유튜브 댓글에서 의견이 다른 사람을 발견하면 대부분은 속으로 욕이나 하고 말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며 전투에 가까운 적의를 터뜨리기도 한다.



정치인에게 기대할 수 있나?


그렇다면 항상 대중의 주목을 받고 영향력도 강한 정치인들이 이런 흐름을 막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민이 돈과 관심을 모아주며 선출직 권력자들을 먹고살게 해주는 건, 그들이 사회를 통합하는 공적인 노동을 할 거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 무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들 상당수는 그저 검사가 조금 더 큰 칼을 원하듯, 재벌 대기업이 문어발 확장을 하듯, 더 큰 힘과 자원을 차지하려는 동기로 나선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사회 통합이 활동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다. 승진이나 커리어 확장의 사다리 끝에서 정치인이 되기를 선택한 것뿐이다.


트럼프 역시 권력을 얻기 위해 자신의 팬덤에게 거짓말을 유포하고 더 극단적인 행동을 부추겨왔다. 한국도 다를 바 없다. 국회의원이나 정당 대표들이 자기 편의 팬덤으로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다 보니 승패를 다투는 스포츠 선수처럼 상대를 물어뜯는다.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 같다.


일자리 없는 여성과 빈곤한 남성을 이간질하고 노인과 젊은이를, 좌와 우를 싸우게 만들어 자기 표를 모으는 나쁜 정치인. 어그로를 끌어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협박과 날조를 일삼는 유튜버들은 또 얼마나 늘어날지.


이미 전 세계에서 소수자를 차별하고 이민자를 내쫓자는 극우 정치인들이 의회와 정부를 접수하고 있다. 트럼프가 총격당한 후 주먹을 들고 "Fight!"라고 외치는 장면은 전 세계의 잠재적인 정치 테러리스트들에게 강렬한 심리적 자극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자극은 거울의 방에 갇힌 사람들에게 특히나 안 좋은 영향을 준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향한 적의와 망상이 활활 불타도록, 거울의 방에 마른 장작을 던져주는 셈이다.


주요 국가의 전현직 정상이나 대선 후보들이 거의 빠짐없이 테러를 당하고 있는 이상, 우리나라의 다음 대선도 위험하다고 본다.  



내가 뭘 할 수 있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인들이 만든 지도와 문헌에는 미지의 땅에 사는 기괴한 모습의 생물들이 묘사되어 있다. 자신들이 잘 모르는 땅에 사는 사람들을 미개하고 공포스럽고 적대적인 존재로 상상한 것이다.


비슷하게 요즘 사람들도 상대 쪽에 있는 사람들을 세상 상종 못할 존재라 믿고 척결을 정의라고 생각한다. 각자 올라있는 산봉우리가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으니 누가 저쪽에 괴물이 산다고 헛소문을 퍼뜨려도 확인할 길이 없다.


놀랍게도 미국인 절반 이상이 10년 내에 미국에서 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관련 기사) 남 걱정인가 싶은데 한국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러다가는 남북 분단에 이어 서울 분단 같은 것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이런 정치적 극단화의 문제도 그렇지만, 출생률 그래프나 OECD 자살률 순위처럼 이미 최악 혹은 갈수록 나빠지는 중대한 사회 현상을 보면 쉽게 무기력해진다.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세상이 나빠질 가능성은 항상 있었고, 그걸 늦추거나 되돌릴 수 있는 쓸만한 방법들도 (뭐가 통할지는 몰라도) 여럿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직 힘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만나서 의견을 교환하고, 사실에 대해 자꾸 이야기하고, 차별당하는 약자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더 기록하며, 문제에 대해 거듭 발언해야 한다.


이탄희나 박용진, 장혜영처럼 드물게 나타나는 공적인 사명감과 실력을 가진 정치인을 식별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을만한 사실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지고 극단적인 뉴스가 넘쳐나다 보니, 나 역시 마찬가지로 뭐가 중요한지 자주 놓치게 된다. 너무 정보가 많고 도파민 터지는 얘기들이 늘 밀려온다.


트럼프 총격 소식도 그 이면을 깊이 살펴보기도 전에 이미 새로운 뉴스들이 먼지처럼 그 위에 소복이 쌓였다. 아리셀에서 23명이 죽은 것도, 전주 제지공장에서 일하던 꿈 많은 19세 노동자가 죽은 것도 이미 다들 잊은 것 같다.


개중에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을 붙잡고 각인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글 서두에 던진 질문들과 관련해서 주목할 사건이나 변화가 일어나면 계속 따라가며 적어보려 한다.




Q 파일 : 세상의 문제를 들여다본 기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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