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케빈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지훈씨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누나의 일에 대해서는 긴 시간에 걸친 사건의 과정들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지현씨에게 뭔가 일이 생겼던 2021년경 한국에서부터, 2023년 8월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와 이야기 나누며 내가 먼저 놀랐던 것은, 지현씨가 미국에 간 이유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때였다. 이 목사의 설명과 전혀 달랐다. 지현씨 엄마 윤 권사가 이씨 가족에게 고민을 토로하고 부부가 그들을 초청한 것이 아니었다.
지현씨를 한국으로 부르기 위한 모든 일을 꾸미고 실행한 것은 첫째 이민우였다.
이민우는 그해 초부터 지현씨를 집요하게 미국으로 유인했다. 아래는 지현씨가 연락을 잘 받지 않자 이민우가 윤 권사에게 보낸 메시지다.
하나님이 전달하라는 말씀이 있어서 바로 전화를 했는데 누나가 아예 문자를 안 봅니다
(누나가 힘든 이유는) 누나가 미국에서 저랑 같이 조직을 운영해야 해서 하나님이 누나 길을 한국에서는 다 막아놔서 그래요. 원래 1월에 왔어야 합니다. 누나의 비전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이루어질 겁니다.
누나가 제 제자로서 반드시 저를 만나고 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모두를 사랑해서 또 기회를 주시는 것이니 누나를 꼭 보내세요.
이민우가 발신한 텍스트나 간증 영상 등 이민우의 언행을 분석한 범죄심리학자들은 그가 신을 빙자한 점에 주목했다.
케빈에게 이야기할 때도 이민우는 자신이 날씨를 바꾸고 병을 고치는 권능이 있으며 방언을 통해 신과 직접 대화하는 존재라는 점을 내세운다.
윤 권사나 지현씨에게 말할 때도 자신이 하나님한테 들은 말이 있는데 지현씨가 반드시 미국에 와야 한다, 내 말을 안 듣는 것은 곧 신의 말을 거역하는 것이어서 네가 일이 안 풀리는 것이다 - 라고 주장한다.
기독교에 삶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케빈이나 지현씨, 윤 권사의 입장에서는 방언으로 하나님과 직접 소통을 한다는 사람의 말을 소홀히 넘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이런 집요한 유인 끝에 지현씨는 미국에 가게 된다. 심지어 처음에는 공석이 넉넉했던 9월행 표를 예약했으나 이민우의 재촉으로 두 달을 앞당겨 7월에 입국했다.
숨겨진 범인
그렇다면 이민우가 혼자서 이 모든 일을 꾸미고 나머지 5인을 지배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 넓지 않은 집에는 두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한 명은 이 목사였고 한 명은 이 목사의 아내, 이경희였다.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 이경희는 거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정말 이 모든 일을 몰랐을까?
지하에 오랜 지인의 딸이 와서 머물고 있는데, 사람이 죽을 정도로 맞고 비명을 지르는데 그것을 모를 수 있을까? 한여름인 8월 말에 사망했다면 9월 12일경 집에서 나가기까지 시신이 빠르게 부패했을 텐데 냄새를 맡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의심은 확신으로 이어졌지만, 미국 경찰은 사건 발생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까지 이경희를 구속하지 않았다. 이경희를 배제할 만한 근거가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마지막 퍼즐은 역시 예상했던 곳에서 발견되었다.
10월 11일, 경찰이 이경희를 구속했다.
그리고 즉시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이경희의 혐의는 살인, 불법감금, 증거인멸 등 지현씨의 죽음과 관련한 핵심적인 부분들이었다. 이경희 검거 이후 우리는 경찰과 법원 취재를 통해 마지막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축귀사역
축귀사역. 우리가 흔히 엑소시즘이나 ‘퇴마’라고 부르는 의식.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귀를 물리치는 종교적 행위를 뜻한다. 지현씨의 죽음을 파헤친 끝에서 만난 단어는 뜻밖에도 ‘축귀사역’이었다. 이는 재판 절차가 시작되며 처음 드러났다.
이경희가 구속되고 약 열흘이 지난 후 조지아주 귀넷카운티 법정. 피의자들과 증인들이 모인 가운데 예비심문(Preliminary Hearing)이 열렸다.
미국은 중범죄의 경우 기소 전에 판사가 예비심문을 열어 사건의 핵심 사실을 확인한다. 여기에서 검찰이 이끌어내는 범죄 사실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하면 판사가 기소를 기각해 버린다. 중범죄에 대해 검찰 측의 공소권 남용을 막는 장치다.
이 자리에서 검사가 사건의 책임 수사관을 증인으로 불러 묻는다.
- 수색영장 집행으로 피고인들의 핸드폰을 조사했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은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텍스트 메시지로 김지현이 그리스도의 군사가 된 과정에 대해 의논합니다. 그 메시지들 속에서 이민우는 김지현을 ‘악마(evil)’라고 표현해요. 이민우가 김지현이 악마에 사로잡혔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알려진 대로 처음 금식기도는 지현씨의 뜻이었다. 하지만 ‘누나가 자신과 함께 미국에서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는 이민우의 구상대로 지현씨는 곧 ‘그리스도의 군사들(Soldiers of Christ, SoC)’의 가입을 강요받았다.
처음 지현씨는 SoC의 취지를 디모데후서의 원칙적 해석에 따라, 좀 더 강건한 신앙의 훈련 과정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하지만 비상식적인 폭력이 이어지자 지현씨는 훈련을 그만두고자 했다. 지현씨는 명시적으로 자신은 SoC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형이 시작하는 훈련에는 끝이 없다”라고 조사 과정에서 이씨 형제의 막내는 진술했다.
이때부터 차츰 광기가 깃들기 시작한다.
지현씨가 거부하는 만큼 점차 훈련의 강도는 높아진다. 훈련이 고문에 가까운 수준으로 심각해지자 지하에 있던 지현씨가 1층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탈출은 발각되었고 이민우와 격한 몸싸움 끝에 다시 지하로 끌려내려 간다. 이민우는 여자친구 이다영과의 메신저 대화에서 이때 지현씨가 ‘나를 암살하려 시도’했다고 표현한다.
이민우는 그즈음부터 지현씨가 ‘악귀에 들렸다’고 믿었다. 어찌 보면 그의 망상에 가까운 신념 체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나님이 지현씨를 미국으로 인도했는데, 누나가 훈련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탈출까지 시도하고 자신을 공격했으니 - 이것은 누나의 몸에 깃든 악귀의 소행이라고 믿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렇게 감금된 상태에서 이 목사가 읽어준 성경 구절과 같은 행위가 가해진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청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 고린도후서 6장 4절
이민우와 일당들은 지현씨를 때리고 굶겼다. 이민우는 이미 나머지 일당들에게 신 혹은 적어도 ‘신의 목소리를 듣는 자’였다. 그것을 거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부였다. 이민우가 지현씨에게 사탄이 들렸으니 더 엄격하게 축귀사역을 해야 한다고 지도하자 모두 그것을 따랐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심지어 지현씨의 ‘훈련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해 남겼다. 항상 신앙공부를 유튜브를 통해 했던 그들이었다. 이 영상도 자신들이 ‘축귀’에 성공한 업적으로 자랑삼아 올릴 생각이었을까?
수사관들은 이 씨 형제의 폰에서 지현씨의 마지막 순간으로 보이는 영상을 찾아냈다. 심문에서 경찰은 그것을 ‘아이스쿨러 비디오(Ice Cooler Video)’라고 지칭한다.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큰 아이스박스. 얼음물이 가득 들어있다. 이민우의 지시와 일당의 감시 속에 지현씨가 얼음물로 걸어 들어간다. 이미 지속적인 고문이 가해진 상태였고, 지현씨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 보일 정도였다.
지현씨는 얼음물속에서 서서히 숨을 잃어간 것으로 보인다. 수사관은 그 영상 속의 지현씨가 호흡을 힘들어했고,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고 말한다.
종교와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잔혹한 살인이었다.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 ⑤ 부활에서 계속)
Q 파일 : 세상의 문제를 들여다본 기록을 전합니다. 이번 편은 <그것이 알고 싶다> 1372회를 돌아보며 못다한 이야기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