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축귀사역에서 이어집니다)
지현씨는 그런 가혹한 고문 속에서 8월 말 경 사망했다. 지현씨가 사망하자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가 집 안에 가득 차기 시작한다.
형제의 엄마 이경희는 지현씨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나자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케빈을 시켜 시신을 밖으로 치우도록 지시한다. 케빈은 순순히 그 말을 듣고 지현씨의 시신을 차 트렁크에 실은 뒤 이씨 가족의 집을 나온 것이다.
배후
이경희는 지현씨의 시신이 나가자 남은 멤버들을 총 지휘해서 대대적인 지하실 청소를 시작한다. 시신이 최소 열흘 이상 지하에 방치되어 있었던 만큼 냄새가 집안 곳곳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이씨 가족의 집을 수색했던 수사관은 9월 13일 아침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가 그 지하실에 들어갔을 때 커다란 노랫소리가 들렸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한국의 대중적인 예배곡이었죠. 지하실에는 표백제와 페브리즈 냄새가 진동했고 바닥이 젖어있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표백제로 뒤덮은 듯한 젖은 가구나 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곳을 조사하는 동안 환기를 시키니까 표백제 냄새가 희미해졌는데... 점점 다른 종류의 냄새가 나더군요. 그건 시신 부패 냄새였어요. (시신 냄새가 확실했나요?) 네, 제 살인사건 수사 경험에 비춰볼 때 시신이 부패할 때 나는 냄새가 확실했어요.
소년이 버린 쓰레기 봉지를 열어서 살펴보니 피가 묻어있는 페이퍼 티슈, 신체 조직이나 체액이 묻어있는 사포, 머리카락, 덕트 테이프 등 상당히 많은 것이 들어있었어요. 그런 것들은 지하실 곳곳에 더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경희는 지현씨가 사망하기까지 과정을 모두 알았고 시신 처리에 이르기까지 핵심 역할을 했다. 엄마이기 이전에 이민우가 가장 신뢰하는 신적 존재로서 SoC(그리스도의 군사들) 일당을 배후에서 지원하거나 지휘한 것이다.
이경희는 지하에 내려가지 않았다. 손발처럼 쓰는 케빈을 시켜 지현씨의 상태를 파악하고 물과 음식을 통제했다. 이 과정에서 이웃이나 쓰레기 운반업체 기사들이 지하 창문으로 지현씨를 볼까봐 신문지로 가리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 이 목사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뗀 것이다. 심지어 9월 13일 아들 셋과 조카, 예비 며느리가 잡혀가는 상황에서도 뻔뻔하게 이렇게 진술했다.
“지현이가 우리 집을 떠난 지는 한참 되었어요. 케빈이 지현이 엄마와 지현이를 같이 공항에 데려다준 걸로 알아요. 지현이가 죽었다니... 게다가 시신이 미국에서 발견되었다니 너무 충격이네요. 이미 미국을 떠났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부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케빈의 신고 때문이다. 그가 시신을 싣고 나온 다음날 아버지를 시켜 경찰에 알렸기에 범죄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왜 신고를 했을까?
앞서 이야기했듯이 케빈은 이경희와 이민우에게 완전히 심리적으로 지배당하고 있었다. 성고문에 가까운 폭력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훈련으로 받아들이고, 종국에는 지현씨의 죽음을 은폐하는 일에도 가담했다.
그랬던 케빈이 왜 신고를 했을까? 어디서 마음이 바뀐 걸까?
상식적인 사람들에게는 황당한 얘기지만, 나는 그들이 분명 지현씨의 부활을 믿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신의 권능이 있다고 믿는 자들이 치료나 훈련을 빙자해 사람을 죽여놓고, 부활을 기다리며 시신과 함께 생활하는 사건을 나는 여럿 접해왔다. 한국에서도 꾸준히 일어난다. (그것이 알고싶다 포항 부활 사건)
보통 ‘부활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는 이유는 하나다.
시간은 흐르고, 부활은 되지 않고, 시신은 썩어간다. 이웃이 냄새를 맡거나 일당 중 하나가 불현듯 정신을 차린다. 자기가 신인줄 알았던 사람이 시신을 부활시킬 거라 굳게 믿었는데, 부활이 안되면서 현실을 깨닫는다.
지현씨의 죽음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지현씨의 부활을 믿었기에 그들은 한 여름 열흘이나 되는 시간 동안 시신을 간직했을 것이다.
죽였다, 혹은 죽었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면 사망 즉시 냉동 혹은 매장을 시도했을 것이다. 미국은 CCTV가 커버하지 않는 지역도 아주 많으며 이 목사 집 주변에도 카메라는 없다. 한 달 전 지현씨가 공항으로 떠났다고 입을 맞추면 실종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복잡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살인과 암매장을 계획적으로 할 리가 없다. 지현씨가 미국에 온 것부터 신의 뜻이라 믿었으니 부활도 뜻대로 이뤄지리라 기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현씨가 부활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지현씨와 마찬가지로 고문당하면서도 그것이 ‘신의 훈련’이라 믿을 정도로 집단적 정신증에 빠져있던 케빈. 하지만 지현씨가 죽은 사건, 그리고 ‘교주’의 약속과 달리 지현씨가 부활하지 않는 사건 등을 거치며 그의 상식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하룻밤의 고민 끝에 그는 신고를 택했다.
제물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정리할 시간이다. 사건의 시작과 관련한 한 가지 의문만이 남아있다.
이민우는 조지아주 최고의 명문 대학인 에모리대에 재학 중인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왜 이런 살인 훈련을 설계해 사람을 죽였을까? SoC라는 조직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단서가 있다.
이민우는 약혼자 이다영과의 대화에서, 지현씨나 케빈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케빈은 No.4, 지현씨는 No.5였다. 그리고 지현씨 사망 즈음 그들은 조지아공대로 편입을 희망하는 어느 유학생을 끌어들이기 위해 작업 중이었는데, 그를 No.6라고 불렀다.
우리가 만난 범죄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제물의 순서로 분석한다.
교주는 자신에 대한 신도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제물이 필요하다. 특히 교주가 봤을 때 치유와 정화의 권능을 보여줄 수 있는 ‘특별히 더럽혀진 제물’이 필요하다. 사냥꾼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사나운 맹수를 잡으러 나서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우리는 이 얘기를 친구에게 들을 수 있었다. 지현씨가 한국에서 방황을 시작한 배경에는 성범죄 사건이 있었다. 범죄를 당한 뒤 믿음 생활에서 이탈하고 어머니 윤 권사와도 갈등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현씨는 도움이 절실한 범죄 피해자였지만, 그 얘기를 들은 이경희와 이민우는 눈을 번뜩이며 지현씨를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눈에는 지현씨가 더럽혀진 존재이자 자신들의 정화 능력을 보여줄 최적의 제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게 이민우는 집요하게 지현씨를 유인했고, 결국 지현씨는 새로운 기회라 믿었던 땅에서 한스러운 생을 마치게 되었다.
에필로그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지금 이경희를 포함한 SoC 조직원들은 전부 무죄를 주장하는 중이다.
이 목사의 말에 따르면, 잡혀간 이씨 형제들은 ‘이것도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며 평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미국의 감옥에 갇힌 지 열 달째다. 여전히 그들은 지현씨를 죽인 것이 아니라 악마를 상대했을 뿐이며, 폭행이 아니라 축귀사역을 했다고 믿고,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신들을 보살펴줄 거라고 생각할까?
바깥과 생각이 교환되지 않는 고립된 집단. 그들끼리 수호하며 썩어가는 고독한 믿음. 그것이야말로 인간 사회에 독을 푸는 뱀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가 바뀌고 여름.
미국에서 연락이 닿지 않았던 이다영의 어머니를 한국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딸의 수사와 재판에 혹시 모를 영향을 줄까 싶어 작년 가을 나를 피했다고 말했다.
이다영의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혼자 떠난 이다영은 자연스레 한국인 홈스테이를 찾았다. 악마의 장난처럼, 그러다 이씨 가족의 집을 거처로 삼게 된 것이다.
이다영은 차츰 이씨 가족에게 종교적으로 의지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는 연락이 드물어지면서 적대적으로 변해갔다.
이 말을 듣자니 이민우에게는 약혼자인 이다영이 ‘1번 제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다영은 유년기부터 머리 좋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 미국 전국 단위의 장학상을 수상했고 지역 사회에서도 주목하는 인재였다.
에모리대에 재학 중인 이민우, 미국 유명 대기업에 취직한 케빈도 마찬가지로 지적 능력이 우수한 사람들이었지만,
미국 생활의 고립과 외로움은 그들을 늘 정서적 허기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그 공복감에 누군가는 성경 구절을 주워 먹다 스스로 신이라 믿게 되었고, 내가 신이니 너의 허기를 채워주겠다는 검은 품에 누군가가 안겼다.
그렇게 그들은 수십 년을 미국의 감옥에서 죗값을 치르며 이번 생을 마치게 된 것이다.
어디선가 분명히 이런 일이 또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는 외롭고 누군가는 허기에 시달린다. 그들에게만 보이는 뱀이 고독한 어깨를 어루만지며 몸을 휘감는다.
이 글이 그런 분들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더 늪에 빠져들기 전에 한 번쯤 멈춰서 지금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종교적으로 표현하면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인간은 언제나 사탄이었다.
지현씨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의 평안을 기원한다.☀︎
그리스도의 군사들 총 5편을 마무리합니다.
⑤ 부활
Q 파일 : 세상의 문제를 들여다본 기록을 전합니다. 이번 편은 <그것이 알고 싶다> 1372회를 돌아보며 못다한 이야기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