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배우는 사람들
콜록콜록.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거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미진 씨.
음악은 김동률의 ‘감사’ 가흘러나오고 있었다. 요즘은 3주에 걸쳐 꽃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꽃잎 하나하나 수놓듯이 온 정성을 다해 그려보고 있다.
“이 시간이 너무 좋아요”
그들에게 이 시간은, 그림이란 무슨 의미일까.
지금 운영하는 카페에서 남편은 주로 커피와 술을 담당하고, 나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작은 그림 클래스를 열고 있다.
수업을 할 때는 나만 가지고 있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먼저 말해주거나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곤 웬만하면 나이나 직업 등을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나이나 직업을 알게 되면 가지게 되는 일종의 편견 같은 것을 개인적으로 꺼려하기 때문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시간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고, 사회적 껍데기를 잠시 벗어던진 그저 ‘나’ 로써의 시간을 가지기 바라서 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 년이 넘게 함께 수업을 해도 이름과 연락처만 알 뿐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
그들이 그림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의외로 여러 가지 가 있다. 그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평범한 이유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들이다. 예쁜 그림을 그리고, 그 결과물로 만족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이유. 그들에겐 바쁘게만 돌아가는 일상에 쉼표가 필요하다. 나를 위한 오롯한 시간이 필요하다.
일 년이 넘게 함께 수업 한 학생분이 그런 이야길 했다.
“직장에선 내가 끊임없이 소비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나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그 일에 필요한 일종의 기계가 되는 느낌 이예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 보면 순수하게 내가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아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딘가에서 내 능력이 소비되는 건 필연적인지 모른다.
소비 끝에 찾아오는 공허함 또한 필연적이다.
우린 그 남은 공백을 꽃잎 하나하나를 그려가며 채워가고 있다.
전소영_sowha
그림그리는 사람.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 합정동에서 남편과 함께 세번째 카페를 운영하며 작은 그림 클래스를 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지만 늘 자연을 동경하고 그리워합니다.
시골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꿈입니다.
MAIL / iris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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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N S TAGRAM / @artist_sow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