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유정 Oct 02. 2021

인생에도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나의 스물일곱에게_01


#1도의_중요성

고달팠던 취준 시절을 무사히 넘기고 어느덧 2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배우고 상사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꽤 만족스러운 사회초년생 시절을 보내고 있다. 차곡차곡 월급을 모아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했고,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스스로에게 사줄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도 생겼다. 이 정도면 나름 1인분은 하고 사는 것 같다.


그런데 가끔 거울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새삼스레 이 모든 게 허무하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의 내가 무수히 꿈꿨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실은 어릴 적부터 대학생 때까지 약 15년 동안 변함없이 키워온 꿈은 따로 있는데, 지금 내 직업은 그 꿈과 거리가 멀다. 하나의 꿈을 목표로 차곡차곡 능력을 키우면 반드시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인생에는 생각보다 변수가 많고, 성공은 노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려서 기운이 쭉 빠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분명 내가 설정한 도착지는 여기가 아닌데. 나의 어떤 행동과 선택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날 이 자리에 데려다놓은 걸까? 지금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선택한 순간순간들이 가리키는 곳이 결국 내 오랜 꿈이 아니었다는 게 조금은 충격적이다. '선택'이라는 거, 참 무서운 거구나. 마치 각도가 단 1도만 틀어져도 길게 보면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인생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선택의_의미

그런 의미에서 내 20대 후반, 사회초년생인 지금 쌓는 커리어는 참 중요할 것 같다. 앞으로 내 10년, 20년 사회생활을 사실상 결정지을 테니 말이다. 콘텐츠 기획자로 시작한 이상 내가 갑자기 개발자가 되거나 기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초년생에게는 (젊어서인지) 선택의 기회가 자주 찾아온다는 거다. 최근 내게도 정말 많은 선택지가 찾아왔다. 이를테면 부서를 옮길 기회, 회사를 옮길 기회, 직무를 바꿀 기회 같은 거 말이다. 선택권이 생긴 것에 감사했지만 너무 무서웠다. 이 선택지가 뜻하는 게 뭔지 이제는 아니까. 나는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릴지도 모를 갈림길 앞에서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매번 시원한 선택을 하지 못했다.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주변의 눈치를 살폈고,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내 인생을 다 망쳐버릴까 봐 벌벌 떨었다. 그렇게 시간에 쫓겨 등 떠밀리듯이 내린 선택은 못 미더웠다. 이럴 때마다 난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좀 더 자신감을 가졌더라면, 선택지가 생길 때마다 꿈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을 했을 텐데. 그럼 꿈을 내려놓고 현실과 타협하는 일도 없었을 거고, 지금처럼 선택 하나 제대로 못 해서 바보같이 굴 일도 없었을 텐데 싶어서.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최선'을 선택하지 못하고 '차악'을 선택하는 내가 너무 멋지지 않아서 속상했다.


꿈을 내려놓은 뒤로 도착지가 어디가 될지 전혀 모르겠지만 눈앞에 주어진 일들은 참 열심히 했다. 멈추는 게 두려워 무작정 달렸다. 근데 어쩐지 도착지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길을 정한 거 같다가도 갈림길 앞에서 머뭇대고, 확신했다가도 이 길이 맞는지 또 의문이 든다. 언제쯤 나한테 맞는 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길이란 게 있기는 있는 걸까? 이럴 때마다 인생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갈림길 앞에서 가장 편하고 빠른 경로가 어딘지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다른 친구들은 다 본인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척척 해내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나는 빙빙 돌아가는 기분이 들까.



#어떤_어른

최근 학교 방송국에서 PD로 활동했던 친구 K가 금융 회사에 '취뽀'했다. 학교 스튜디오에서 매일 밤을 새우던 K가 펀드 매니저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고 보니 질릴 대로 질려서 절대 방송국 일은 안 한다던 J는 다큐멘터리 방송 작가가 됐다. 그리고 누구보다 잘 해내고 있다. 꿈도 바뀌고 인생도 달라졌지만 내 친구들은 내가 보기에도 정말 잘 살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애초에 꿈은 하나일 필요가 없고, 또 오랫동안 키워온 꿈이라고 해서 그게 절대적인 답인 것도 아닌데….


친구들의 인생을 보면서 내 인생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도 조금씩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생각해보면 시간을 되돌려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나는 또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그리고 설령 하나의 꿈만 보고 계속 달렸다고 하더라도 그거대로 후회했을 거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선 후회가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과거의 내 선택들을 후회하며 나를 원망했다가, 다시 시간을 돌려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서 이해했다가. 이 짓을 반복하다 보니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물론 나를 원하는 자리로 데려가 줄 좋은 선택이 분명 있겠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 과거의 나는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거고,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내가 걷는 길, 내가 선택한 길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뿐이라는 결론. 종착점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과 그곳까지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는 걸 이해하고, 그저 앞으로 더 좋은 선택지들이 오도록 열심히 준비하며 기다릴밖에.


지금도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앞으로  애써야   같다. 갈림길을 만났을 , 이번의 선택이  인생을 얼마나 바꿔놓을지 두려워 겁먹는 대신 달라질 앞날을 기대할  아는 어른이 되려면 말이다. 갑자기 도착지가 사라졌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방황하지 않는 어른. 다음은 어디를 새로운 도착지로 설정하면 좋을지 여유 있게 고민할  아는 어른. 그리고 앞으로  선택에 따라 바뀌는  인생을 즐길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  삶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니까.




양유정

그림 지안 (instagram@inside_gsu)



<나의 스물일곱에게> 시리즈 다시 읽기

프롤로그 : 얼렁뚱땅 서른이 될 순 없으니까
01 : 인생에도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02 : 변하는 내 모습이 맘에 들어
03 : 내 결혼 생활은 이런 모습이기를
04 : 정리하지 못한 방, 정돈되지 않는 삶

05 : 누가 뭐래도 진심을 다할 거예요

매거진의 이전글 얼렁뚱땅 서른이 될 순 없으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