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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i May 19. 2020

심장이 말했다 4.

독단적이고 변변찮은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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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저희는 공여자 가족 분들의 정신적 지지나, 다양한 방면의 서포트를 해요. 특히 김연숙 씨는 주변에 혈육이라 할 만한 분이 없어서 더욱 신경이 쓰였죠. 전 코디네이터로서 필요 이상으로 그분을 챙겨드렸어요. 다행히 김연숙 씨는 이후의 삶을 천천히 잘 받아들였어요. 공여자 가족들이 겪고는 하는 우울증 증세도 없이 말이에요. 그런 김연숙 씨가 이상해진 건-”


“잠깐, 잠깐만요! 공여자는 뭐고 코디네이터는 뭡니까? 사회복지과에서 나오신 분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피의자 김연숙 씨는 꾸준히 우울증 약을 복용해왔습니다. 우울증 환자였다 고요.”


“복지사요? 저는 B양의 장기기증으로 한국 장기기증원에서 김연숙 씨에게 붙여준 코디네이터예요. 그리고 김연숙 씨는 우울증 약을 복용한 적이 없어요, 적어도 제가 아는 한 말이죠. 전 그분이 약을 먹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기증자 가족들을 위한 캠프나 1박 2일 강연 모임 같은 데에 참석할 때도 말이죠.”


‘차도로 밀진 않았지만 우울증 약의 부작용을 이용해 죽인 거라면....? 우울증 약이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다....’


인택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코디네이터는 꼬깃한 편지를 건네며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건강하던 김연숙 씨가 이상해진 건 이 편지를 읽고 나서부터였어요. 장기기증은 기본적으로 수여자와 공여자가 만날 수 없도록 하는 게 원칙이지만, 익명으로 감사편지를 보내는 경우에는 기관을 통해 전해주기도 하거든요.”


인택은 정신을 부여잡고 건넨 편지를 훑어보였다. 일반적인 감사편지였다. 특이한 점은 없어 보였다.


“저희 딴에는 좋은 마음으로 전한 건데, 이게 그분의 감정을 건드렸던 것 같아요. 따님이 돌아가시고 1년쯤 되는 시점이었고, 그동안 크게 힘들어하지도 않으셔서 그런 반응이 나올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말 그대로 폭주를 했거든요. 수여자를 만나야겠다면서 기증한 장기를 도로 내놓으라고, 내 딸을 돌려놓으라고 욕을 하셨죠...”


그때 인택의 휴대폰이 울렸다. 제형이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인택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마저 받았다.


“어, 그래 ip 추적 결과 나왔니?”

"그건 아직인데, 피해자 휴대폰에서 대화 내역과 통화기록을 복구했답니다. 근데..."

“근데?”


"대화중에 피의자 김연숙과 사망한 김응철이 서로 대화를 나눈 카톡방이 있어요. 사이도 꽤 우호적...?으로 보이고요. 범행 장소도 애초에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더라고요. 만나기 몇 분 전 통화한 기록이 있고요."

“뭐?!”

"잠시만요, 몇 개만 복사해서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확인되시나요?"

“어 잠깐만.”


인택은 메시지를 열어 복구된 대화 내용을 확인했다. 김응철은 피의자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다 이해한다. 이렇게라도 연락이 닿아 다행이다. 항상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덕분에 새 삶을 살고 있다.’ 등 주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고, 피의자 김연숙은 주로 ‘네’와 '그렇군요'와 같이 단답으로 응하고 있었다.


인택은 관자놀이를 누른 채 다른 손으로 화면을 올렸다. 대화 내용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자신이 읽지 않고 넘겨버린, 그전에 제형이 보낸 문자에서 스크롤이 멈췄다.


[정확한 사인 나옴. 심정지로 인한 쇼크사. 두부 손상은 사망 전 생긴 것이나, 기절만 했지 사망한 상태가 아니었음. 한마디로 김응철 심장을 산채로 적출한 셈.... ㅎㄷㄷ...]


‘적출’ 그 강렬한 단어가 인택의 뇌를 번뜩이며 가로질렀다. 적출, 장기기증, 공여자와 수여자, 새 삶... 중구난방 공통점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정보와 증언들이 그 단어를 둘러싸고 하나씩 정렬되고 있었다.


인택은 자리로 돌아와, 코디네이터가 가져온 감사편지를 다시 훑었다. 빼곡한 글에 한 구절이 점점 커지더니, 인택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따님의 심장으로 새 삶을 얻었습니다.]



‘피해자 김응철이 B양의 심장을 기증받은 수여자라면..?’


그렇다면 모든 우연과 의문이 해결되었다. B양이 사망한 시점과 김응철이 병을 회복한 시점이 비슷한 것, 피의자 김연숙 씨가 딸이 죽고 일 년이 지난 시점에서 폭주한 것, 김응철의 심장만을 도려낸 것. 하지만 어떻게 이 편지만으로 김응철인 것을 알았을까? 또 어떻게 그의 연락처를 알고 만날 수 있었을까?


“형사님...?”

“아, 죄송합니다. 저 코디네이터님, 김연숙 씨가 이 편지를 받고 다른 말은 안 하던가요?”


“아뇨, 수여자를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며 저를 욕하고 저주할 뿐이었어요. 아, 그런데 가끔 수여자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하긴 했어요. 그 악마가 기어코 자신의 딸을 죽인 거라며... 그래서 정신병원에 입원의뢰를 한 거였어요. 망상 증세가 심해지는 것 같았거든요..”


“혹시 김연숙 씨가 수여자의 연락처를 알 수 있을 만한 방법은 없었을까요?”

“저희 기관을 통해선 절대로 알 수 없어요. 그건 법으로 정해진 거라...”

"협조 감사합니다. 제가 이만 서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서요. 혹시 편지는 증거물로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그럼요, 저한텐 트라우마 같은 거라 없으면 더 좋은 걸요."




경찰서에 돌아오니 그 사이 특종 냄새를 맡았는지, 사건사고 전문 기자들이 하이에나처럼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선배님! 뭐 좀 알아내셨어요?”

“피해자 심장만 도려내 유기했다는 게 이미 언론 귀에 들어간 거야?”


인택이 제형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제형도 그런 인택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그럴 리가요. 아직 유기 장소도 못 찾았는데, 다들 쉬쉬하고 있죠.”

“근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기자들 수가 평소의 두 배인데?”

“가해자가 여자잖아요.”

“미친. 들어가서 심문할 준비나 하자.”

“안 계신동안 제가 해보려고 했는데, 그 여자 일절 입을 안 열어요. 강남 다녀온 온 보람은 있었어요?”

“어. 아직까진 추측이긴 한데 대충 감은 온다. 한두 가지 빼고.”

“그게 뭔데요?”

“나중에, 나중에 말해줄게. 먼저 가있을 테니까 피의자 심문실로 데려와 줘라.”

“아이 참, 입을 안 연다니까요?!”

“손가락은 부러졌냐? 종이랑 펜 가져와.”


심문 실에서 기다리는 인택의 다리 한쪽이 달달달 떨렸다. 분명 들어오기 전까지는 확신에 차있었는데, 막상 진실을 대면하려니 심장이 두근댔다. 곧 제형이 멍한 얼굴의 피의자 데리고 심문실로 들어섰다. 인택은 옆에 앉으려는 제형에게 나가보라며 손짓했다.


인택은 녹음기를 켜고 피의자를 보았다. 여전히 멍한 눈빛은 심연 속을 가라앉는 듯했다.


“**월 *일 **시 2차 심문조서 질의 시작합니다.”


인택은 피의자인 김연숙의 이름과 주소 등을 확인했고,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피의자가 모든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시했다.”


인택은 잠깐 말을 쉬었다 피의자에게 말했다.


“김연숙 씨. 제가 지금 누굴 만나고 왔는지 아세요? 한국 장기기증원 코디네이터를 만나고 왔습니다. 따님의 장기기증을 담당했던.”


미동도 없던 피의자의 얼굴이 움찔하더니 이윽고 심연 속에 가라 앉아있던 살기가, 검은 동공을 비집고 나와 인택을 노려보았다.


“제가 지금부터 할 얘기는 약 7여 년 전에 있었던 사건과 피해자였던 한 여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난 김연숙 씨도 그 이야기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내 이야기를 듣고 더 할 말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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