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단적이고 변변찮은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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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그 또래 아이들과 같이 밝고 명랑했죠. 하지만 세상은 그 아이만큼 맑고 티 없는, 그런 정직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순수함을 이용해 한 남자가 자신의 야욕을 채웠으니까요. 게다가 남자는 강간에 대한 무죄를 선고 받고 풀려났습니다. 이 판결 후 피해 학생의 아버지는 충격과 죄책감을 자살을 하죠.
물론 피해학생의 어머니 역시 후유증이 컸습니다. 우울증으로 약을 복종해야했지만 이를 주변에 숨겼겠죠. 아이가 불안해할 수 있으니까. 어머니는 아이를 보듬으며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혹여나 범인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불안에 떨면서 말이죠. 그런데 당시 모녀가 모르던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범인이었던 남자는 무죄판결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쓰러져,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져야했거든요.
그렇게 5년이 지난 어느날, 아이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맙니다. 사실상 자살이었죠. 보호자였던 어머니는 딸의 장기기증을 결정합니다. 그렇게 어머니 또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치유하며 살아가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흘렀을까 한 장기기증 수여자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그녀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 편지가 오래전 자신의 딸을 강간했던 범인임을 알게됩니다. 그녀는 죽은 자신의 딸의 심장이 그 놈의 몸속에 있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하지만 주변에선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죠.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됩니다. 입원 기간동안-”
똑똑똑-.
문을 열고 들어온 제형은 무거운 분위기에 눈치를 보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왜?”
“그 ip추적 결과 나왔는데, 지금 전화상으로 본인 확인했고 아직 연결되어 있거든요. 잠깐 통화해보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날 서로 출석하시면-”
“아냐, 내가 갈게. 잠깐이면 돼. 물어볼게 있어서.”
인택은 피의자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 말하고는 제형과 함께 심문실을 나갔다. 제형의 자신의 책상 위에 대기 중인 수화기를 들어 인택에게 건넸다.
“네, 조인택 형사입니다. 닉네임 **본인 맞으시죠?”
“저는 정말 어쩔 수 가 없었어요!! 형사님!”
수화기 너머 흥분한 목소리에, 인택은 그가 뭐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자 진정하시고, 저희가 선생님 아이피 추적을 하게 된 건 다름이 아니라 그 7년 전 있었던-”
“그래요! 오래 전에 쓴 글 가지고 그런 미친 아줌마가 협박을 할지 누가 알았겠어요?”
“협박이요? 저기 선생님, 조금 천천히 말씀해주시겠어요?”
“얼마 전에 제가 가입한 커뮤니티 사이트로 쪽지가 왔어요. 7년전 그 사건 글 보고 연락드린다고. 자기가 드라마 작가인데 그런 쪽 글을 쓰고 있고, 범인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은데 통화로 인터뷰만 할 수 없냐고요.”
“처음엔 거절했는데, 그 사건 정보가 부족해서 여러 사람에게 인터뷰를 하고 있다고 했어요. 이번 기회에 사건이 재조명 받으면 좋지 않겠냐고, 글을 보니 범인이 제대로 처벌 받지 못해서 화나셨던 것 같은데 좋은 일 하는 거라고... 자꾸 회유를 하는 바람에....”
“그래서 김응철의 의료기록과 개인정보를 누설한 겁니까? 여기보니... **병원 의무기록실로 나와있네요?”
인택이 제형이 가지고온 추적결과서를 읊으며 말했다.
“누설이라기 보단... 전화로 얘기하다가 저도 모르게... 그냥 작년에 심장이식 성공해서 퇴원했다는 것 만 얘기했는데... 갑자기 김응철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하는거에요! 처음엔 당연히 거절했죠. 그랬더니 갑자기 돌변해서는 이거 의료기록 누설한거 아니냐고, 자기가 신고할 수 있다고 당장 전화번호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아차싶었죠."
"전화를 끊어버리니까 이번엔 문자로 ‘병원에서 일하는거 같은데 통화내용 모두 녹음했다’면서, 신고해서 너 직장에서 잘리게 할 수 있다면서 온갖 협박을 하니까... 저도 무서워서... 주소말고 전화번호만 알려줬어요. 글도 바로 내렸는데... 아, 아! 잠시만요. 그 여자 김응철이 이미 수술한 것에 대해선 알고 있었어요!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이미-”
“본인이 7년 전 쓴 글을 내려놓고 제작년에 쓰신 글을 잊어버리신 것 같네요. 수술해서 쾌차했다는 글 쓰셨습니다. 저나 김연숙씨나 그 글보고 연락한 것 같군요.”
“아....! 쓰고 바로 묻힌 글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살해계획을 모르고 계셨다면 살인 방조죄나 공동정범 등으로는 적용되지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수사는 받으셔야 하니 출석요구하면 서로 와주셔야 합니다. 개인정보 밎 의료기록 누설도 조사받으셔야 하고.”
“네?!!! 살인 방조죄요? 잠시만요, 형사님!”
인택은 제형에게 수화기를 넘기고 남은 설명을 부탁했다. 바지런히 심문실로 돌아온 인택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마저 하려 했다.
“자, 계속 해볼까요?”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인택을 보지 않았다. 대신 빼곡한 종이 한 장을 인택에게 내밀었다. 분노와 함께 꾹꾹 눌러 담은 글씨는 단박에 그녀의 진심을 대변했다. 인택은 당황하면서도 녹음을 위해 피의자의 행동을 말로 서술했다.
“어... 피의자 김연숙씨가 자술서를 건넸고, 지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내 딸은... 7년 전에 이미 죽었습니다.”
인택은 첫줄부터 목이 턱 막혀왔지만 급히 감정을 추슬렀다.
“나는 내 딸의 껍데기를 붙들고 살았습니다. 시간이 가면... 어쩌면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피해자였던 내 딸에게 더욱 가혹했습니다. 난 내 딸을 그 악마로부터 그리고 사람들의 손가락질로 보호해야만 했습니다. 아이는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고, 저는 아이에게 더해지는 그 어떠한 구설수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약은 우울증을 연기하며 내가 처방받았어요.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연기를 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해요. 약은 아이의 우울감은 완화시켰지만 우발적인 자해나 자살충동을 들게했어요. 수없는 자살시도는 언젠가부터 일상이 되었고 그날의 교통사고는 그저 그 일상의 날들 중 하루였을 뿐입니다.
난 내 딸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보고 자랐으면 했어요. 비록 하나의 몸에서, 나의 곁에서, 보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도 말예요. 그래서 장기기증에 동의했습니다. 그게 그 아이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될 줄 모르고. 나에게 얼마나 큰 죄가 될 줄 모르고. 난 그 악마가 법원에 낸 탄원서를 백번이고 천번이고 읽었어요. 똑똑하신 판사님께서 읽고 무죄아 하셨다 하니 나도 읽었어요,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놈의 필체를 알아보지 못하고, 내 딸의 심장을 영원히 그 놈의 몸 속에 갇히게 할 뻔 했으니까요.”
인택의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요동쳤다. 인택은 휘몰아치는 진실의 흙더미에 턱끝까지 파묻히고 있었다. 인택은 숨을 고르며 물 한 모금을 마셨고, 다시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 놈을 죽이는 환시를 여러번 보았습니다. 기쁨에 환호를 지르다가도 깨어나면 병원이었습니다. 모두 가짜였어요. 그럴 때마다 내 딸아이의 절규와 애원, 원망소리가 환청으로 가득 메웠습니다. 두 손을 빌어 용서를 구했지만 다시 눈을 뜨면 모두 수포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들어야 끝이 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난 보통의 사람이 되기로 했어요. 그래야 병원서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불가능하다 말하지 마세요. 자식을 잃은 부모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난 병원을 나오자마자 놈을 수소문 했고, 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했어요. 놈은 내가 생명의 은인이라며 연락처를 어떻게 얻었는지는 의심도 않고, 만나자는 제안을 냅다 수락했어요. 새 삶을 준 것에 감사인사를 하고싶다나... 그렇게 그놈을 만났고, 내 딸을 놈의 몸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살해 동기는 간단합니다. 그놈은 새 삶을 살 자격이 없어요. 내 딸이 그리고 나와 내 남편이 용서하지 않았으니까.”
인택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질문을 하며 종이와 펜을 다시 밀어주었다.
“심장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부분을 꼭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사체유기는 형량이 가중될 요소가-”
산발의 머리칼 사이로 푹 잠긴,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내 딸의 몸이니 내 딸이 원하는 대로 해줬는데...”
인택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말을 더 이끌어보려 했다.
“자세하게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묻은 장소라 던지-”
그런 인택의 말을 막고 그녀가 말했다.
“심장을 딱 보는데 너무... 너무 예쁜 거 있죠...?”
수갑에 결박된 두 손은 당장이라도 펄떡이는 심장을 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절 보자마자 빨리 여기서 꺼내달라고 하는 거에요. 거긴 너무 어둡고 무섭다며,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
“그래서 어디에...?”
인택의 물음에 그녀가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인택을 똑바로 보았다. 인택은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엄마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고... 내가 열달 간 품어서 낳은 아이에요.”
그녀가 임신부가 된 것 마냥, 자신의 배를 정성스레 쓰다듬었다. 그리고 말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어요. 내 아이... 여기에.”
그 말을 끝으로 웃는 그녀의 환한 미소에는, 핏기가 어려있었다. 치아 사이사이 낀 핏물은 그녀가 삼켰을 아이의 심장이 얼마나 검붉게 빛났을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