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그 사람 책상 위에 면봉통 있다며. 그걸 쾅 내려쳐, 응? 사람들 다 쳐다보게 완전 쾅! 그리고 다 보이게 흩뿌리면서 '씨발 나 안 해!!!' 하곤 무서운 표정으로 저벅저벅 나오는 거야, 알았지? 나올 때 면봉 밟고 미끄러지면 갑자기 장르 변경되니까 조심하고, 응?”
누나 가슴에 삼천 원쯤은 있고,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사직서 하나쯤은 있을 터. 전날 밤 퇴근길에 사직서를 쓰며 왔을 것 같은 아침이면 우리는 서로에게 암호처럼 말을 걸었다. ‘'씨발 나 안 해' 알지?’
스트레스의 입장에서 보면 회사는 거의 디즈니랜드다. 상사나 부하와의 갈등, 동료와의 신경전, 타 부서와의 알력 다툼 등 조직 내 다양한 관계가 롤러코스터를 태우니 닥터 스트레스 씨는 얼마나 신이 날까. 성과에 대한 압박이나 격무의 위협 같은 클리셰부터 예상치 못한 사고들까지 다채로운 퍼레이드가 연일 벌어지는 곳이 회사다. 그럼에도 내 얘기 들어주는 한 사람, 찰나일지라도 스스로 인정하는 보람찬 순간들 덕에 견디며 살아간다. 그 어떤 스트레스보다 위험한 것은 얼마나 어떻게 힘들든 결코 내려놓을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잡아먹히는 것일 테다. 숨이 잘 안 쉬어질 만큼 힘이 드는데 물러서도 벼랑인 것만 같아 그대로 타들어가 본 사람은 안다. 그렇기에 아니라고, 언제라도 그만둬도 괜찮다고, 물러서든 벗어나든 땅은 계속된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다소 거칠게 함축된 다섯 글자 응원. 그 말에 힘입어 견디다 보니 붙들려 있는 시간이 길어진 건 아이러니지만.
그러던 지난봄. 언성을 높이고 면봉통을 던지는 대신 사직서 여러 장을 가슴에 쟁이던 그가 마침내 사표를 제출했다.
반년 전 이미 사의를 내비쳤다 반려 당한 이력이 있고 이번에도 꽤 시간이 걸리고 있었지만, 또다시 번복할 가능성을 타진하기엔 그의 의지가 확고했다. 그리곤 자꾸 산티아고 순례길 영상을 감상하는 그. 벗어나든 물러 서든 땅은 계속된다는 마음의 응원이 산티아고 쪽을 가리켰던 걸까.
힘들면 그만두라던 큰소리는 당연히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직이 아닌 퇴직의 날이 조만간 도래한다는 진실을 직시하고 나니, 내 마음에는 심란 주의보가 시끄럽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출근할 때마다 침대 속에 누워서 세상 편안한 표정으로 인사하면, 하... 어떻게 감당하지? 혼자 여기저기 장기로 여행 다니면, 어휴 부러워서 어떡하지???’
감당 못할 일이라는 불안이 더해지자 조급함이 따라붙었다. 사는 게 뭔지, 일은 재미있는지, 돈은 왜 버는지 빠르게 자문한 나는 태초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 같은 답을 향해 내달렸다. 그렇게 나의 퇴사 날짜는 그의 퇴사 일보다 이른 시점으로 확정됐다. 내가 먹여 살릴 테니 걱정 말라던 큰소리는 그저 ‘걱정 말라’는 말로 조금 작아졌지만, 여행을 떠나자고 떠들어 젖히는 소리로 능청스레 덮을 수 있었다. 마흔하나, 마흔넷. 우리의 작당모의가 시작된 것이다.
퇴사 의사를 밝힌 후 곧장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한국인들이-아마도 날씨가 좋아서- 가장 많이 찾는다는 봄가을에 맞춰 알아보던 중 8월 초에 출발하는 가성비 끝내주는 티켓이 눈에 들어왔다. 한여름밤 에어컨 없는 숙소에서 자야 할 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커플 백.수.단 선배님 되었으니 돈이 시키는 대로 따르리 따르리렷다, 할 수밖에. 비행기 티켓을 끊었으니 여행 준비의 80%는 완수한 셈이다.
여행은 준비하는 그때가 가장 재미있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아니다. 가서 부딪히며 알아가는 정보와 감각을 그때그때 반영할 게 분명하고, 결국 계획해 봐야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우리다. 어차피 완벽한 준비란 없으니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만 하는 편이랄까. (실상은 그저 게으름...) 장기 여행일수록 비행기표와 도착해 처음 2~3일 묵을 숙소 정도를 예약하면 끝이다.
하지만 배낭 하나에 모든 것을 넣고 한 달간 800km 가까이를 걷는다고 생각하니 세상 천하태평한 인간들에게도 준비하는 시늉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크게 와닿지는 않지만 산티아고를 걷고 난 후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아니 가기도 전에 이렇게 사람을 바꾼단 말인가? 다 던져버리고 떠나는 여행이 그저 신나 호들갑을 떨다가 얼결에 준비란 것까지 하게 됐다 치더라도, 산티아고가 특별한 길이란 인상은 초반부터 확실했다. 그럼 거저 얻은 명성이겠냐는 콧방귀 한 방에 시속 200km로 달리는 슈퍼카 옆에 떨어진 휴지 조각처럼 날아가 버린, 확실히 기세에 밀리고 있는 우리였다.
그와 함께 유튜브로 산티아고 순례길 영상을 공부하며 꼭 챙겨야 할 물품을 추리고 추렸다. 문제는 후기를 볼수록 교집합으로 수렴하지 않고 서로 다른 선택에 만족해하는 경우였다. 신발과 스틱이 특히나 갈렸다. 평지로 쭉 뻗은 길이 아니고 산과 들, 아스팔트부터 진창까지 다양하니 단단하게 잡아줄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사람. 어차피 숙소 도착 이후에 신을 신발은 필수로 필요한데 걷는 내내 배낭에 넣고 다니면 무겁고, 무거운 게 최대의 적이니 시원하게 처음부터 샌들 같은 가벼운 신발 하나로 잘 신었다는 사람. 스틱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는 사람과 거의 안 쓰고 짐만 됐다는 사람.
요약하면 기능과 무게 사이의 치열한 다툼인데 양쪽의 논리가 모두 그럴듯해서 몇 번이나 결정을 뒤바꿨는지 모른다. 결국 신발은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와 숙소 도착 후 신을 샌들을 가져가고, 스틱은 프랑스길 시작점인 생장에 도착해 구입하는 것으로 낙점했다. 결과적으로 이에 대해선 아주 만족했는데, 막상 걸어보니 다른 후기에서 왜 그렇게 의견이 엇갈렸던 건지 알 것 같았다. 기능과 무게만을 고려할 게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판단 요소를 추가해야 하는데 이것은 순례길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풀어놓도록 하겠다. (^ㅡ^)
산티아고 순례길은 3대 기독교 성지 중 하나이고(다른 둘은 예루살렘과 로마다), 세계 7대니 10대니 하지만 막상 열어보면 주장하는 목록이 제각각인 리스트 열에 아홉은 포함되어 있는 유명 트레킹 코스다. 무려 1천 년이 넘은 여행 상품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오직 종교적 의미만 있었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서기 1,000년이라는 새천년을 처음 맞이하며 두려움에 크게 들썩였다고 한다. 곧 최후의 심판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은 천국을 향한 소망과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참회하겠다는 의지로 승화되는데, 그 결정체가 바로 순례였다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자 길이 닦이고, 상권이 생기고, 더 큰 마을이 형성되는 건 자연스러운 생리였을 것이다. 선순환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였으리라. 개중엔 순례를 겸하여 혹은 핑계 삼아 여행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집 떠나 시간을 들여 멀리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이왕이면 일석이조를 바라는 사람 마음은 천년 전이라고 다를 바가 없는 거다.
스페인 북서부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수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자 가장 먼저 순교한 성(saint) 야고보(iago-유럽식 표기)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이다. 중세에는 각자 집에서부터 출발해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걸어가는 것이 정통이었다고 하나, 결국 어느 구간쯤에선 만나지면서 몇몇 유명한 코스들이 생겨난다. 전 세계에서 오는 지금은 네 개 코스가 제일 유명한데 프랑스길, 북쪽길, 포르투길, 은의길이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순례자의 약 70%가 선택한다는 프랑스길을 걷기로 했다.
프랑스길은 프랑스 서남부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한다. 보통은 바욘이라는 서남부 작은 도시까지 각자 알아서 간 후 바욘에서 기차를 타고 생장까지 가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한국에서 출발할 경우 파리나 마드리드로 티켓을 끊고 다시 이동하는 게 가장 흔한 듯하다. 우리의 저렴이 효자 티켓은 프랑크푸르트 인-아웃으로, 우리는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면 바로 쾰른으로 넘어가 짧은 여행을 즐기고 바욘에는 비행기로 이동하기로 했다. 바욘 직항 저가항공이 다니는 건 독일에서 쾰른이 유일해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마침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로 약 1시간 거리인 건 운이 좋았다. 비용과 시간(곧 체력)을 경제적으로 운용하는 게 매우 중요한 백수이자 중년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으니까.
인아웃 비행기 티켓, 쾰른의 숙소, 쾰른에서 바욘 가는 비행기표, 바욘에 밤에 도착해 하루 묵을 숙소까지 예약했으니 그 어느 때보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출국 길에 올랐다. 한 가지,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사정이 어찌 될지 몰라 도착해 공항에서 쾰른 가는 기차표를 안 샀더니 활황기 때 비트코인 가격을 보는 건가 헷갈릴 정도로 가격이 치솟는 걸 목격한 것만 빼면 말이다. 독일의 기차표는 일찍 살 수록 많게는 80%까지도 저렴하단 걸 전혀 몰랐다. 정보 검색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지 않다 보니 간혹 이런 일이 발생하지만 좋게 말해 천하태평하고 솔직히 말해 게으른 천성 때문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감내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