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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 Chuisle May 09. 2017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읽고


 미국의 한 언론은 페미니즘 열풍을 불러일으킨 세 명의 여성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했는데 책으로서 록산 게이, 테드 강연자로서 치마만다, 음악인으로서 비욘세를 꼽았습니다. 세 분의 노래와 책을 듣고 읽은 저는 여류작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다치에가 좋아졌습니다.


 소설에는 '가슴으로 느끼는 진실'이 드러나야 한다고 합니다. 인종, 이민자, 여성에 대한 문제를 주제의식으로 삼은 그녀의 소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를 읽고 페미니즘 소설을 관통하는 진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에 담긴 그녀의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 책은 2016년 고2였던 제 생활기록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평소 영화를 즐겨보는 저는 '벡델 테스트'에 대해 알게 되었고 1학년 국어시간에 여성이 영화와 같은 문화상품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친구들은 절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페미니즘을 여성해방운동이라고 했습니다(올바른 정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성해방운동이라니, 확실히 고등학교 2학년 남자인 제게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는 무겁고 부담스럽게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사실 페미니즘은 제게 한 가지 흥미로운 문제였을 뿐 저는 젠더를 의식조차 못하는 평범한 남학생이었으니까요. 그로부터 얼마 뒤 제가 이 책을 읽게 만든 사건이 생겼습니다.


 제가 속한 동아리의 기장은 여학생입니다. 동아리를 잘 이끌어나가는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그 학생이 기장이 되던 날이 뚜렷하게 기억납니다. 기장 선거가 끝나고 어디선가 높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기장하면 기싸움에서 밀릴텐데....." 제 꼬리표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을까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예민해진 제 신경은 여학생 기장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그저 사소한 일이었지만, 때론 사소한 일이 가장 아픈 법이니까요.


 그 일 이후로 저는 여학생이 기장인 동아리가 10%내외라는 것을, 우리 학교에서부터 젠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제를 의식하니 치마만다의 책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치마만다의 다정하고 유쾌한 목소리는 세상의 진리를 먼저 깨달은 어머니가 아이를 타이르듯 절 반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저를 '남자 페미니스트'로 부르기로, 자랑스럽게 꼬리표를 받아들이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는 '메갈리아'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장난스러운 농담이었겠지만 저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예전의 저처럼 젠더문제가 허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걸까요, 성난 여성의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저 페미니스트의 정의를 몰라서였을까요.


젠더 문제는 허구인가?

 독후감을 쓰면서 같은 동아리 동급생인 여학생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제게 기장선거 사건을 얘기해 주더군요. 갑자기 부끄러워졌습니다. 사소한 성차별 문제를 의식했다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들을 의식하는 것은 여학생들에게는 일상이었던 겁니다. 젠더 문제는 절대 허구가 아닙니다.


성난 여성의 이미지?

 분명 페미니스트는 성난 여성의 이미지와 겹칠 수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한 페미니즘 책을 읽다가 환불했었습니다. 작가의 성난 목소리가 듣기 불쾌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때는 그렇게 성난 투로 글을 쓰면 안된다고, 편협한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가 이해됩니다. 그녀는 정말 화나있었고 사회가 그녀를 화나게 만들었으니까요. 화가 난 그녀를 비난하기보단 그녀를 괴롭히는 일들을 없애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페미니즘의 정의

 아직도 한 친구가 건넨 짧은 말이 기억납니다. 이 책을 읽고 있던 제게 그 친구는 제목을 보고웃으며 "뭐, 맞는 말이긴 하지."라고 했습니다. 다른 남학생이 페미니즘을 인정해 준 것, 그 한마디는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치마만다는 페미니스트를 '남자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냥 '맞아'라는 인정, 그 짧은 한 마디가 정말 중요한 겁니다.


 페미니즘은 어렵거나 잘못된 사상이 아닙니다. 이 책은 손바닥 만 하고 스웨덴에선 성평등 교육의 교재로써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젠더 이퀄리즘의 한 부분으로써 페미니즘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목소리이고, 어머니를, 여자형제를,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쯤이서 여류작가 치마만다의 꼬리표를 떼어드려야겠네요. 저는 여류작가가 아닌 그냥 작가로서의 치마만다 은고지 아다치에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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