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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Dec 29. 2023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애도하며

잔혹한 우리 시대를 돌이켜보다


나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로 <커피 프린스>를 꼽는다. 그중 최애 캐릭터는 이선균 배우가 맡은 최한성이었다. 그를 통해 나도 뜨겁고 멋진 삶을 사는 어른이 되어야 겠다고 꿈을 꿨다. 그런데 어제, 나의 청춘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정말 무서운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세상에는 국가의 사법제도를 벗어난 사설 법정이 여기저기에 산재해있다. 사건의 진위여부와는 관계 없이 임의로 유뮤죄를 판결하고 비난이라는 처벌을 시작한다. 사리분별 있어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운 댓글도 눈에 많이 띄었다. “일단 나는 중립 기어 박는다” 이는 사법제도의 판결을 기다리되 죄가 있을 경우 비난을 시작하겠다는 의미였다. 언제든 비난이 준비된 시대인 것이다.


우리 시대의 사설 법정에는 반드시 누군가를 세워놔야 하는 것일까. 시대는 사법제도의 유무죄 판결과 양형,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고싶어 한다. 어쩌면 이건 정의라는 탈을 쓴 잔혹한 엔터테이먼트인지도 모른다.


언론과 SNS에서도 무서운 일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법정에서 증거로만 활용되어야 할 사생활은 물론이고, 사건과 관계 없는 사생활마저 무분별하게 공개, 유포되고 있다. 사생활의 파편들로 온갖 가정들이 양산되고 이는 예리한 화살이 되어 당사자에게 날아간다.


잔혹한 시대의 사설 법정에서 과연 누가 버텨낼 수 있을까. 인간은 평판의 동물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 많은 자본가와 지식인들이 인민재판을 당했다. 그들은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혹독한 자아비판을 당했고, 많은 이들이 재판 끝에 ‘텅 빈 인간’이 되거나 자살을 택했다. 사설 법정에서 이미 인격을 살해당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대는 죄의 혐의가 있는 누군가의 정당한 책임과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시대는 그저 교양의 탈을 쓰고 정의라는 이름의 잔혹한 엔터테이먼트를 원할 뿐이다.


시대의 일원이라는 것에 일말의 책임이 느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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