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차 한 대 값의 팔찌.

-지우고 싶은 과거가 담긴 팔찌를 다시 찼습니다.

by 코알라

주말에 동생네가 놀러 왔다.

한창 블링블링하고 핑크핑크한 것을 좋아할 6살의 조카가 할머니 집에서 제일 궁금하고 관심 가는 곳은

바로 '고모 화장대'이다.


"고모, 미용실 놀이하자."

마음껏 고모의 액세서리와 화장품을 만지기 위해

조카 녀석은 늘 고모에게 미용실 놀이를 제안한다.


"원장 선생님, 머리 예쁘게 말아주세요."

"손님, 예약하셨어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저 작고 귀여운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멘트가 날아올 때마다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고모, 이거 갖고 놀아도 돼?"

보물을 발견한 듯 파우치 하나를 들고 조카가 다가왔다.

열어보니 그동안 잊고 살았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10년 전에 선물 받은 머리띠와 팔찌가 들어있었다.


"머리띠 마음에 들면 가져가도 돼."

"정말? 진짜지?"

검은색 띠에 500원 동전만 한 진주가 박힌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예쁜 머리띠를 조카에게 주었다.


뭐가 또 있나 싶어 뒤적이다 핑크색 원석으로 만든 곰돌이 모양의 팔찌를 발견했다.

'어? 이건... 지금 하고 다니고 싶은데?'

사준 사람이 떠올라 쳐다도 보기 싫었는데, 다시 이 팔찌가 차고 싶어졌다.




10년 전, 한창 회사 업무들에 치여 스트레스받던 때였다.

취미를 가지면 스트레스가 해소될까 싶어 고르고 고르다,

아름다운 천 조각들로 만들어진 인형과 벽걸이 이불이 가득한 퀼트가게를 발견했다.


동화 속에나 존재할 것 같은, 삭막한 현실과는 거리감 있는 이 퀼트가게가 좋았다.

퀼트 선생님도 작품들만큼이나 신비로웠고 친절했다.

홀린 듯 수강신청을 하고 매주 주말 온종일 퀼트가게에서 살다시피 하며 퀼트를 배웠다.


개인약속이나 경조사로 주말 퀼트 수업에 참석하지 못하는 날이 생길 때마다,

선생님은 "온 마음을 다 해도 될까 말까인데,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되겠니? 간절하지 않구나."라며,

나를 다그쳤고, 간절하게 보이지 않는 게 싫었던 나는 몸이 아파도 꾸역꾸역 퀼트가게로 향했다.


2년 정도 지나자 갈수록 퀼트를 배우는 게 부담되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핀쿠션 재료값은 29만 9천 원, 작은 곰돌이 인형 하나를 만드는 덴 60만 원이 필요했다.

가로세로 60cm 정도의 벽걸이 이불이 만들고 싶어 물어보니 200만 원에 카드 결제 시 부가세 별도라 했다.


선생님은 가격을 물어놓고 재료를 사지 않거나, 본인이 추천한 퀼트 재료를 사지 않으면 괜히 짜증 냈다.

"어릴 때 엄마가 몸을 팔아서라도 나보고 돈 벌어오라 했어, 네가 내 삶을 알아? ㅆㅂ"

손으론 저리 예쁜 퀼트 작품들을 만들면서, 입에선 어찌 저런 말들을 쏟아낼까 의아하면서 가끔 무서웠다.


선생님의 권유로 생각에도 없던 일본 퀼트협회 자격증 수업도 듣게 되었다.

자격증 수업 수강료와 재료 구입, 취미 활동을 위한 작품 재료 구입으로 카드값은 불어났다.

지긋지긋한 회사를 그만두고 나도 선생님처럼 퀼트 가게를 열고 싶은 꿈이 생겨 이 악물고 버텼다.




"생일이지? 생일 축하해."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명품 머리띠를 선물 받았다. 사실 어울리지 않아서 일평생 머리띠를 해본 적이 없다.

예쁘고 비싼 선물을 받아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선생님의 생일에 나도 그만큼 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연인이라도 된 듯, 생일을 가벼이 챙기면 불같이 화를 냈다.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야. 안 그래? 이게 딱 지금 내 심정이다."

상대방의 의견 따윈 중요치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멋에 취해 있는 사람이었다.


'누가 비싼 선물 사달래? 퀼트 재료값이나 좀 싸게 해 주지.'

이 세계가 얼마나 좁은지 아냐며, 밑 보이면 바로 소문이 쫙 난다는 협박 아닌 협박도

본인도 퀼트 배울 때 이 정도 돈은 썼다며, 값어치 있는 일엔 고통이 따른다는 개똥 같은 소리도 견뎠다.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회사를 얼른 그만두고, 나도 내가 만든 예쁜 퀼트 작품들이 가득한 퀼트 가게를 만들고 싶단 꿈.

지나다니다 마음에 드는 콘셉트의 가게를 발견하면 '나중에 저렇게 가게 꾸며야지.' 하며 사진도 찍어두었다.


작품에 홀려 수강신청했던 수강생들이, "사이코 같다."며 하나둘 떠났다.

선생님은 수입원이 줄어들자 나를 집중공략하기 시작했다.

아직 다 갚지 못한 카드값이 산더미인데, 나는 또 바보같이 300만 원을 긁었다.


모아 둔 적금을 깬 지는 이미 오래다. 카드론이라는 것도 처음 써봤다.

또 생전 처음으로 친구에게 남동생에게 돈을 빌렸다. 그래도 매달 카드값에 허덕였다.

텅 비어버린 통장과 늘어난 빚을 보며, 점점 내 꿈과는 멀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중형차 한 대는 사고도 남을 돈을 쓰고, 손도 대지 못한 각종 퀼트 패키지가 방 안에 가득해지자

'그 선생 호구 물었네.'라며 퀼트를 그만두라는 엄마와 친구들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명품 머리띠 세 개와 팔찌 하나, 그렇게 4년을 버티다 퀼트를 그만뒀다.




"머리띠랑 팔찌 버린 줄 알았는데 안 버렸네?"

"그걸 왜 버려? 예뻐서 파우치에 담아놨지. 왜? 이거 누가 사준 거니?"

퀼트 선생님이 사준 생일 선물이라 말하면 덩달아 엄마도 울적해질 듯 해 친구가 사줬다 했다.


"이 팔찌 이제 보니 예쁘네? 핑크색 원석도 흔하지 않은데."

"예쁘면 하고 다녀. 근데 머리띠 하지도 않은 애한테 무슨 머리띠 선물을 이렇게 한 거냐?"

퀼트 선생님이 사준 명품이라고 말하면 "네 돈 받아서 이딴 사치나 하고."라며 엄마가 욕할 게 뻔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담긴 팔찌라 싫은데, 디자인은 예뻐서 하고 다니고 싶다."

"그럼 하고 다니면 되지."

"이 팔찌 하면 나 또 어디 호구 잡힐 일 생길까 봐, 재수 없을까 봐 못하겠어."


"물건이 뭔 죄라고, 오히려 트라우마를 이겨냈으니 복을 불러다 줄 거다."

면접에 떨어졌다며 울고불고할 때는 시답잖은 농담으로 열 뻗치게 하더니,

J 씨가 생각지 못한 순간에 생각지 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꼴 보기 싫더니, J 씨의 말을 듣자마자 핑크색 곰돌이가 복덩이로 보였다.

용기가 생겼다.

그래, 이건 팔찌일 뿐이야.





P.S

조카와 미용실 놀이를 하다 우연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여전히 예쁘기는 한 명품 머리띠와 팔찌를 보며 역시 명품은 시간이 지나도 값어치를 하네 싶다가도, 바보 같던 지난 내 모습이 떠올라 속상해졌습니다.


회사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한 가지에 몰두하며 행복하고 싶어 취미로 시작했다 꿈까지 꾸게 해 준 퀼트였는데, 글에는 다 담지 못할 상처와 아픔이 있던 4년이라는 시간이었습니다. 퀼트 선생님과의 연을 끊어내고 카드값과 카드론, 지인들에게 빌린 돈을 다 갚고 '적금'이라는 것을 시작하기까지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었습니다. 2년이란 시간 동안 '퇴사'는 절대 할 수 없게 만들어 준 퀼트에게 조금 고맙기도 하네요.


그때의 저를 생각하면 아직도 한심합니다. 한심해서 부끄럽지만, 마음에 담아두고 상처로 남겨두기보다는 글로 적어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아프고 눈물 나는 일도, 지금의 나에겐 이렇게 글의 소재가 되어 준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혼자서도 무엇이든 뚝딱뚝딱 잘 해내고 싶은데, 요즘 들어 J 씨의 한마디에 울기도 웃기도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점점 J 씨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겠죠?

J 씨에게도 제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있어도 정말로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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