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연애도 서로의 취향을 바꿀 수 있구나.

-닮아가고 싶지 않은데 닮 아가 버린다.

by 코알라

그녀가 변했다.


"절대 비켜주지 마."

하... 또 시작이다.

소식(小食) 하자 해놓고 또 배 터지게 저녁 식사를 끝낸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공원으로 향했다.

오른쪽엔 자전거 도로가 왼쪽엔 산책로가 있는 이 공원을 즐겨 이용하지만, J가 지금처럼 이해할 수 없는 옹고집을 부릴 때마다 살찌고 말걸 그랬다 싶다.


"좀 비켜주면 어떻다고 그래."

"안 돼, 질 수 없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덩치 큰 네 명의 남자가 산책길을 다 차지하고 걸어오고 있다.

한창 신나게 떠드느라 맞은편에서 우리가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듯 둘둘 혹은 하나셋으로 해체할 마음 따윈 없어 보였다.


산책로 끝자리에서 걷고 있는 J에겐 자전거 도로로 삐져나가면서까지 그들에게 공간을 양보할 만큼의 아량은 현재 없다. 내가 아무리 밀쳐내도 꿈쩍도 안 한다. 이럴 때 보면 진짜 힘이 세다.


결국 부딪히기 직전에 화들짝 놀란 무리 중의 한 명이 뒤로 쓱 빠져주며 공간을 내어준다.

생긴 공간 틈으로 몸의 방향을 세로로 틀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충돌 없이 마무리가 되었지만 속에서 부글부글 끊어 오른다.


"왜 그렇게 매사에 양보란 게 없어?"


"산책로가 이렇게 좁은데 네 명이서 나란히 걸어오는 게 양심이 없는 거야 아니면 내가 양심이 없는 거야? 사람 오는지 확인하면서 걸어야지. 지들 땅이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비켜주고 말면 될 것을."


"좋은 게 좋은 거라서 너한테 좋은 적 있어? 맨날 어디 가서 호구당하고 나한테만 큰소리치면서."


"거기서 왜 또 호구 얘기가 나와?"


사소한 것에도 승부 근성이 들끊는 J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맨날 우리만 눈치 보며 살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J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서로면서 죽어라 같이 산책 나가선 기승전 호구 얘기로 매일 말다툼을 해댔던 시절이 있었다.



맞은편에서 썸 타는 듯 꽁냥꽁냥한 분위기의 남녀 한쌍이 걸어오고 있다.

들뜬 듯 쉼 없이 얘기하는 남자와 수줍은 듯 입을 가리며 호호호 웃는 여자를 보니 예전의 나 같아서 부럽다가 지금의 나와는 거리가 멀어 샘이 났다.

그래, 인정한다. 질투가 났던 것 같다.


이 산책로에서 한 발짝도 비켜나고 싶지 않았다.

대장군처럼 위풍당당 중앙으로 걸어오는 나를 피해 썸 타던 남녀가 견우와 직녀처럼 끝과 끝으로 떨어졌다.

나잇값 못하고 마흔 춘기를 겪고 있는 나 때문에 하하 호호하며 재미나게 이어가던 대화도 잠시 끊겼다.


"훗, 봤어? 방금?"

"뭘?"

"먼저 양보하지 말라며, 이번엔 비켜주지 않고 중앙으로 당당히 걸었어. 잘했지?"

"... 놀부심보 같은데?"

"언제는 양보만 한다고 나보고 호구라며! 어느 장단에 춤춰야 되는 거냐!"


별생각 없이 걷던 산책로에서 절대 양보란 없다는 J를 서서히 닮아간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질투가 아니라 닮아간 거다.




그가 변했다.


주기적으로 대학 동아리 친구를 만나러 가는 J가 추석연휴 전 토요일 집들이에 다녀왔다.


"뭐 먹었어?"

"족발이랑 치킨, 회 시켜 먹었어."

"오~ 맛있었겠다."

"근데 있잖아, 내가 입맛이 변했더라고. 친구들이 말해줘서 알았어."

"뭐가 변했는데?"


치킨과 함께 1.5리터 콜라가 왔단다.

얼음 없이 콜라만 컵에 부어 꿀떡꿀떡 마시는 집주인 친구에게 물었단다.


"얼음 없어?"

"웬 얼음?"

"탄산엔 얼음이지, 그래야 시원하잖아."

"야! 네가 언제부터 콜라에 얼음 넣어 먹었다고. 그냥 마셔 인마."

친구들의 대답에 큰 바위가 머리에 떨어진 듯 한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엥?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그게 왜?"

"친구 말처럼 '그래, 나 원래 얼음 없이 콜라 먹던 놈이었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타고난 얼죽아에 얼음 없는 탄산음료엔 입도 안대는 너랑 있다 보니 입맛이 변한 거였더라고!"

"아... 그래?"

"아 그래? 아 그래~?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널 만나고 난 변했어! 나를 잃어버렸다고."

"... 그럼 원래의 너를 다시 찾아. 이제부턴 콜라에 얼음 넣어 먹지 마."

"그게 안된다고 이젠!! 흑흑, 나를 잃었어. 너 때문이야!"


호들갑 떨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자존감 센 J의 입장에선 이유 모를 서글픔이 몰려오나 보다.


"오빠, 잃은 게 아니라 닮아간 거야. 좋게 생각해."


위로 따위 필요 없는 일이지만 입이 심심해 툭 건넨 위로였다.

"됐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여튼 안 맞아 안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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