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연애도 초딩처럼 엄청 유치하다.
-그럼에도 함께하는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 좀 부여하지 마."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내가 듣기 싫다고 한 말은 농담으로라도 안 하면 안 돼?"
"매번 같은 걸로 화내는 거 힘들지도 않아?"
"화내는 게 마냥 내 성격문제야? 내가 싫다는 건 안 하려고 노력해 주면 안 돼?"
"어, 안 돼. 너 놀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
똑같은 이유, 똑같은 말다툼, 이 말다툼의 끝은 당시의 분노게이지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어이없고 진 빠져 대화를 끝내버리든지 아니면 더 큰 싸움으로 확장시켜 버리든지.
처음부터 무작정 화부터 내진 않는다.
"어휴, 올해 무농사 풍년이신가 봐요. 아주 그냥 실하네, 실해."
"오빠, 그만해. 다리 굵은 거 나도 알아. 나도 속상하니까 그만해."
"어휴, 어릴 때 야구하셨어요? 아님 육상? 종아리 근육이 어휴 그냥."
"그만하라고 했어. 나 기분 나빠지려 해."
"굵은 걸 굵다고 사실을 말하는데 왜 화가 나?"
"내가 듣기 싫다고!! 싫다고 하면 안 하면 되잖아!! 뚱뚱한 사람한테 돼지라고 놀리면 안 되는 거 몰라? 왜냐고? 진짜 상처받으니까!! 나도 다리 굵은 거 콤플렉스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왜 매번 놀려대? 상처받게? 재밌어? 재밌냐고!!"
"아니... 나는... 그냥 사실을 말한 건데..."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말했듯 사실이라 사실을 얘기했을 뿐이라며 결단코 지 잘못은 없다는 J다.
이런 종류의 사소한 말다툼이 대형 싸움으로 번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J는 내가 유난히 예민해 모든 말에 의미를 부여한다 하고, 나는 큰걸 바라지 않으니 싫다고 말한 행동만이라도 자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받아치지만 늘 돌아오는 대답은,
"재밌는데 어떻게 해? 못 참겠단 말이야. 미안해, 이렇게 밖에 생겨먹지 못한 놈이라..."
"넌 재밌지만, 난 싫다고."
또다시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될 뿐이다.
"나 초등 2학년 때, 우리 반에 지원이라는 남자애가 있었어. 걔는 늘 나한테만 짓궂은 장난을 쳐댔어. 이를테면 예상치 못한 공간에 숨어 있다가 놀라게 하거나, 뒤에서 밀거나, 쎄게 내 손을 잡아당기거나, 귀에 대고 고함치거나 등등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했어."
"지원? 남자 맞아? 여자이름 같네."
"한 날은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울면서 엄마한테 얘길 했고, 마침 참관수업에 왔다가 담임선생님과 대화하던 중에 엄마가 지원이 얘길 선생님한테 했나 봐. 내가 너무 힘들어한다고. 그래서 선생님이 지원이랑 한 번 얘기해 보겠다고 하셨대."
"그래서?"
"지원이와 얘기를 끝낸 선생님이 다음 날 나를 부르셨어, 사실은 지원이가 나를 많이 좋아한대. 그래서 괴롭혔다고 비밀을 털어놓더래. 그 어린 나이에도 그 말이 어찌나 어이없던지... 아직도 기억나."
"거 봐, 좋아하는 이성을 괴롭히고 싶어 하는 건 남자의 본능이야. 나이불문 본능이라고!"
하... 그 뜻이 아닌데, 또다시 얘기가 원점으로 돌아가버렸다.
그저 '본능'이 만병통치약인 듯,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포기되지도 않는, 절대 권력과도 같은 것인 양 J는 늘 본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정색한다.
초등 2학년의 지원이 같은 아들딸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된 어른 남자 J는 어김없이 오늘도 나는 싫은, 본인만 재밌는 농담과 놀림을 해댄다.
오늘은 잘 넘겼지만, 나도 내가 언제 터질지 모르겠다.
우린 언제까지 싸울 거리도 되지 않을 '그의 본능'과 '나의 예민성'으로 이렇게 싸워댈까?
끝은 있을까?
철이 들지 않은 것일까?
그럼에도 우린 왜 함께 있으려 하지?
사랑? 러브? 그런 걸로 포장하기 싫은데... 다른 정확한 이유가 있을 텐데...
오늘도 골똘히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지만, 답을 찾지는 못했다.
남자와 여자는
마흔이거나 마흔을 넘어도
여전히 유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