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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Jan 12. 2024

다정) 퇴사한 지 2년, 팀장님이 또 연락해 왔다.

-고맙습니다. 팀장님.

 작년 6월, 퇴사한 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노무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온 적이 있다.

사무실 층만 올라가면 궁금증을 해결해 줄 동료들이 수두룩 빽빽인데 굳이 연락 안 한 1년도 넘은 퇴사자에게 전화한 처음엔 의아했었다.

 

 궁금증이 해결됐음에도 전화 끊을 생각을 하지 않던 팀장님과 소소한 옛날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화한 이유를 것만 같았다.

 

팀장님은 사람이 고팠던 게 아닐까?

때론 내편이, 때론 쓴소리를 그 와중에 시답지 않은 농담까지 곁들일, '환상의 티키타카'를 주고받을 동료 사람 말이다.



 2024년 새해의 첫 하루가 지나간 1월 2일, 그 팀장님이 또 생뚱맞게 연락이 왔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 인연이 참 신기하다.



 2024년은 우야든동 잘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2주 안에 다 읽지도 못할 만큼 항금 책을 빌려 나오는 길이었다.

 도서관 근처 빽다방 픽업 오더를 신청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는데, 낯선 듯 낯익은 이름이 톡 하고 튀어 올라왔다.


 노무팀장님의 카톡이었다.



 뭐 궁금한 생기셔서 새해 인사를 핑계 삼아 연락이 오셨나 보다 생각했다.

저번에도 쓴 적 있지만 참 함께 일할 땐 그렇게 '아몰랑, 네가 알아서 해.'로 일관하며 사람 속을 뒤집던 상사였는데, 이상하게 퇴사한 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서 드문드문 연락 오는 팀장님이 밉지가 않다.


 어라? 이번엔 팀장님이 아쉬워서 나에게 연락한 것이 아니었다?


 팀장님은 내가 이번 주에 면접 볼 예정임을 알고 계셨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순간 멍해져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던 찰나 팀장님의 말이 이어졌다.

 

예정된 회사에서 팀장님께 전화가 왔단다.



노무 팀장님의 에 놀란 나는 고단새 J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요새도 퇴사한 이전 직장에 전화해서 업무 스타일이나 경력 기술서에 적힌 경력을 확인하는 회사가 있어?"

 당사자인 나도 또 떨어질까 겁이 나 주변에 알리지 않고(J 제외) 비밀스럽게 면접 준비하고 있었는데, 100% 합격시켜 줄 것도 아니면서 왜 퇴사한 지 2년이나 된 전 직장에까지 전화해 내 면접을 소문을 낸 것인지 면접 볼 회사가 원망스러워 J에게 하소연했다.


 "네 경력이 마음에 들어서 99% 합격시킬 심산으로 전화한 거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해."

 울그락불그락 얼굴까지 빨개지며 언성 높이는 나를 J가 진정시켰다.


J와 짧은 통화를 마치고, 노무팀장님과 카톡을 이어갔다.

팀장님은 얘기 잘해 뒀으니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고 해 주셨다.


'찌잉'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정말 퇴사할 거야?"라며 짐 싸고 나가는 마지막 출근일에도 나의 퇴사를 믿지 않아 하시던 팀장님이, 이젠 아무 상관없는 나를 좋게 평가해 주고, 나의 합격을 기원해 주는 진심이 느껴져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함에 뭉클해졌다.


 좋게 얘기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좋은 결과 가지고 다시 연락드리겠다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정말 합격하면 감사한 마음 담아 연락드릴 심산으로 면접 준비에 만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났나 싶었는데, 다시 팀장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네, 식사 맛있게 하고요.


'찌잉'

 한 번도 나한테 "식사 맛있게 해라, 집에 조심히 들어가라"라는 말을 해 준 적 없던 팀장님이었다.

오히려 늘 내가 "식사 맛있게 하세요.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라는 말을 했었고, 그런 인사에 "너도."라는 짧디 짧은 답 대신 읽씹으로 일관하셨던 팀장님이었다.

 그런 팀장님이 나보고 식사를 맛있게 하라니...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사가 팀장님이야말로 회사에서 맛있는 점심을 드시고 계신지 걱정이 들어 가슴이 먹먹했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인연으로 다시 엮일지 모르니 너무 날 세우지 마라.


 엄마는 늘 나에게 끝맺음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론적으론 알겠는데, 힘들어 죽을 거 같아 나오는 마당에 내가 하하 호호 웃으며 나와야 되냐는 고약한 심보로  직장을 나왔다.

 회사 떠나면 또 볼 사람들도 아니라며 덕 볼 일도 없다며 장담하며 말이다.

 어쩌면 나의 내면만 신경 쓰느라 내 뒷모습이 아름답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퇴사한 지 2년이나 지난 지금 팀장님으로부터 덕 볼 일이 생겼고 다행히 팀장님이 덕을 베풀어 주셨다.

 2년 동안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제 그저 옆집 아저씨, 옆집 아가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 우리 사이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팀장님에게 나는...  꽤 괜찮은 부하 직원이었다고 생각해도 될까?


 



 

03화 퇴사한 지 1년, 팀장님이 전화를 끊지 않는다.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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