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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Jan 22. 2024

나는 나쁜 친구일까?

-고교동창과의 만남이 즐겁지가 않습니다.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감성에 젖어 과거 여행으로 떠나는 것도 모자라 연락 끊고 살던 옛날 친구에게 용기 내어 연락도 해보게 되는 날 말이다. 이런 용기가 작년 9월 나에게 생겨났지만, 그때의 용기를 후회한다.


  대학생 때, 전공인 중국어 공부를 위해 북경으로 어학연수를 간 적이 있다.

 다음 메일로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작년 9월 지금은 아예 연락이 끊긴 고교동창 한 녀석과 주고받았던 메일이 눈에 들어왔고, 문득 보고 싶어 져 메일을 보내봤다.

 지금도 다음 메일을 사용하고 있을진 모르지만 운에 맡겨 보기로 했고, 메일 내용 맨 끝엔 휴대폰 번호를 남겼다.


  하루이틀이 지났던가?

모르는 번호로부터 문자가 왔다. "야! 나야! 너 정말 오랜만이다!" 라면서.

내가 메일 보냈던 그 고교 동창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바로 전화해 반갑다 잘 지내냐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1시간 통화했고, 바로 약속을 잡았다.


 "나 사람 만나는 거 3년 만이야. 허리가 좋지 않아 2시간 정도만 앉아 있을 수 있는데 괜찮겠어?"

 친구는 안타깝게도 2019년 자동차 5중 추돌 사고로 허리가 완전 아작 나 일상생활이 불가한 몸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1년 반동안 옴짝달싹 못하고 병원 침대에만 누워있으며 우울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다 작년 초부터 재활치료하며 조금씩 바깥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때마침 운 좋게 내가 연락해 온 것이라고 했다.


 동네 근처 스타벅스에서 20년 만에 만난 고교동창은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나를 맞이했다.

움직임이 둔하고 뻣뻣한 친구를 보고 있자니 정말 이 아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싶었다. 

어쩔 수 없이 어렵게 입사한 좋은 직장도 그만두고 대구로 내려와 산 송장처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채로 지내는 게 힘들다던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힘들어했던 것들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넌 그래도 움직일 수 있잖아. 난 허리 병신이라 할 수 있는 게 없어."

 "허리 병신이 뭘 하겠어? 야~ 나에 비하면 넌 진짜 행복한 거야."

 "바빠서 좋겠다. 난 뭐, 집에서 천장 보고 있거나 엄마랑 싸우는 게 다야."

 "네가 나만큼 아파봤어? 나만큼 아파 봐. 하루에 열두 번은 죽고 싶다니까. 죽지 못해 산다."


 내가 겪은 일들은 그 친구에겐 행복에 겨운 소리였고, 부러운 것이었다. 

어쨌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정상인의 몸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며 본인을 '허리 병신'이라며 자신을 까내리고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모든 얘기의 흐름이 "그래도 행복한 거야, 부럽다야."로 마무리되는 게 처음 한두 번은 나쁘진 않았다. 

못된 생각이지만, '그래, 난 자유롭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수는 있잖아.'라며 어느 날은 자신감 뿜뿜 했고, 자존감이 올라갔다. 나보다 못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며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는 잔인한 말이 와닿았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매사 부정적이고 나를 부러워하기만 하는 친구가 조금씩 부담되기 시작했다.

 "야, 저 아줌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뒤집어쓰고 나왔네, 봐봐. 나처럼 병신 돼 봐라,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하나도 없어져."

 명품으로 치장한 그 아줌마 귀에까지 들릴 큰 목소리로 험담하며 자신을 비하했다.

 "다 들리겠다. 조용히 말해~"

 "들리라면 들으라지. 병신 되고 나서부터는 무서운 것도 없다."


 "너는 이게 먹는 거냐? 팍팍 좀 먹어. 왜 이렇게 적게 먹어?"

 "요즘 소화가 안 돼서 그래, 예전엔 치킨 한 마리도 혼자 다 먹어 치웠어."

 "그래, 허리 병신보다는 소화에 문제 있는 게 낫지. 네가 이렇게 안 먹으니까 회사 일도 못 견딘 거야."


 "번아웃 때문에 퇴사했다며, 무슨 또 취직을 하겠다고 그래~ 그냥 이렇게 나랑 놀자."

 "돈을 벌어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쉬고 있을 순 없어. 힘들다고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난 하고 싶어도 허리 병신이라 아무것도 못해. 부럽네."


 '아픈 자기밖에 보이지 않아 무례해진 건가? 원래 이런 아이였던가?'
그녀를 만나면 만날수록 그 시절 교실에서 환하게 웃던 그녀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친구의 상황이었더라도 저랬을 것이라며, 아니 저것보다 더 했을 수도 있을 거라며 이해하려했고 배려했지만, 내가 먼저 만나자고 연락해 놓곤 이제와서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아져 버렸다.

 매일 "일어났어? 오늘날이 흐려서 허리가 아파 우울해."라는 식의 모닝콜 인사도 귀찮았다.

 "언제 볼래? 난 허리 병신이라 시간 많아. 친구도 너밖에 없어."라는 그녀의 갈구도 부담스러웠다.

 

 티키타카


서로 대화가 잘 통해서 대화 내내 즐거움과 공감이 끊이지 않을 때 쓰는 단어이다.

친구를 부러워했다가, 친구가 나를 부러워했다가, 친구에게 위로가 필요했다가, 친구로부터 위로를 받다가,

우중충한 현재 우리 상황을 실컷 비난하고 비하했다가, 그럼에도 긍정적인 우리의 미래를 기대하며 으쌰으쌰서로를 북돋아주는,

그렇게 주고받는  다음 약속을 기약하는 사이가 되는 것 아닌가?

이런 내 생각이 맞다 싶다가도, 내 마음 편한 것만 하려 하는 이기적이고 나쁜 친구인 건 아닌지 문득 '나라는 인간'에 회의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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