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알라 Feb 13. 2024

면접관이 되어보니 나도 '경력 지원자'가 좋더라.

-와플가게의 인력난 해결.

 우리 와플 가게에는 매니저가 두 명 있다. 아니, 있었다.

한 명은 사장이 몇 번 경고했음에도 계속해서 가게로 놀러 온 친구들에게 공짜로 와플을 나눠주었다. 결국 보다 못한 사장은 '해고'라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명은 아르바이트 근무일정을 계획하는 일도 하던 매니저였는데, 대타를 요청하는 아르바이트 생들이 많았는지 스트레스받아했다. 결국 그만두겠다는 문자와 함께 바람처럼 그녀가 사라지고 말았다.


 매니저 두 명, 목/금 마감 시간대 아르바이트 생까지 총 세 명의 직원을 구해야 했다.

경기도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장인 동생은 면접 봐줄 매니저가 없으니 나에게 대신 면접을 봐달라 했다. 잠시 망설이는데, 동생이 회심의 마디를 날렸다.


-면접 봐주면 이번 달 시급은 더 쳐줄게.

-조아써! 진행시켜!!




 정말 최근 3주는 면접 보랴 추가 근무하랴 몸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근무해서 일에 능숙했던 매니저 둘이 한꺼번에 빠지니 가게도 어수선했다.

원래는 2시 퇴근인데 5시~ 6시에 퇴근하는 날이 늘었고, 나약한 몸뚱이로 번도 앉지 못하고 종종 거리며 다녔더니 집에만 오면 삭신이 쑤셨다.

종합비타민을 아무리 때려 넣어도, 홍삼을 아침마다 챙겨 먹어도 그저 정말 너무 피곤했다.


 방학이라 그런지 매니저 구인에 지원한 지원자들의 나이는 20살~21살이 99%였다. 이력서 상 '업무 경력'란이 비워진 지원자가 대다수였고, 방학기간에만 잠시 돈 벌 곳을 찾고 있는 듯했다.


-지원자가 많지 않네. 일단은 뽑아놓고 교육을 시키는 수밖에 없을 같아. 그럼 수고해.

 매일 면접 예정된 3~4개의 이력서를 동생이 보내 왔다.




 매니저를 뽑는다곤 했지만, 지원자들의 대부분은 매니저로 근무한 경력이 없었다.

비슷한 업종인 카페에서 근무한 경력도 없는 지원자들에겐 뭘 물어봐야 할지 난감했다.

손이 빠르냐고 물으면 빠르다고 하겠지.

성격이 어떠냐고 물으면 좋다고 하겠지.

최대한 장기근무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 지금은 그러겠다고 하겠지.

아르바이트 경험없는 지원자들에겐 뻔한 질문에 뻔한 대답을 들을 뿐이었다.



 한 명의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지원자와 경험이 전무한 지원자 한 명의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면접 본 지원자 중 도저히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땐 시간 약속을 제대로 지켰는지로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해 왔다.

 두 지원자 모두 약속한 면접 시간보다 10분씩 일찍 와서 동점으로 시작.


배스킨라빈스에서 10개월 근무한 경력이 있던 경력 지원자는 면접에서도 여유가 넘쳤다.

떨리지 않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그간의 경력을 어필했다. 손님이 몰리는 오후 시간대에 혼자 근무했는데, 한 번도 "왜 이렇게 늦냐?"라는 고객들의 원성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듣고 있는데 흡족해서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무엇보다 10개월이라는 경력이 서로 합만 잘 맞는다면 우리 가게에서도 10개월은 버텨 주겠구나 싶어 믿음이 갔다.


음료와 와플을 만들어야 해서 바쁠 땐 정말 정신없는데, 잘 해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배스킨라빈스에서도 음료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케이크까지 모두 판매해 봤기에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고 했다.

본인의 경험을 예시로 들며 강점을 어필하는 지원자에게 어찌 마음이 쏠리지 않을 수 있으랴.


흡족한 면접을 마치고 다음 면접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 없다는 지원자의 눈은 설렘과 긴장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축제 준비에 적극적으로 임할 정도로 친구들을 잘 통솔했습니다. 동아리 총무도 해 봐서 무엇이든 꼼꼼하게 잘 해낼 수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와닿지 않았다. 

이력서에 비어있는 경력사항을 멍하니 바라보며 다음 무슨 질문을 하며 면접시간을 때워야 하나 생각하는 내가 불현듯 속물처럼 느껴졌다.


"1월~3월이 성수기라 가게가 많이 바빠요. 그래서 일이 힘들 거예요."

괜히 시작 전에 겁부터 주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 그래도 열심히 잘할 수 있습니다."

"정말 아르바이트 경험이 한 번도 없으세요?"

"네! 그래서 아르바이트 한번 해보고 싶어요. 꼭 뽑아주세요."

해보고 싶다라...... 아르바이트에 대한 환상과 열정 가득한 이 지원자의 말에 갑자기 거리감이 확 생겼다.



 어느 글에서 읽은 적 있다. 회사에서 경력직만 뽑아대면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 경력을 쌓을 수 있냐는 신입생들의 하소연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르는 신입사원의 경력을 쌓아주기엔, 우리 가게엔 지금 온통 지친 사람들 투성이었다.

성수기인 1월~3월, 잠깐의 여유도 없이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모두들.

게다가 갑자기 빠져버린 두 매니저의 공백을 채우느라 본인 근무일 외에도 추가 근무를 하고 있는 모두들.

아직 1인 분의 몫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새로 들어온 동료들을 대신해 더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모두들.

"안녕하세요"라며 밝게 인사하며 출근했던 아이들이 마치 퇴근 시간대인 듯한 몰골로 피곤에 쩔어 출근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경력 없는 지원자를 뽑는 건 꽤 어려운 결정이었다.


 결국 배스킨라빈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지원자를 뽑았다.

이 경력 지원자는 몇 시간 만에 업무에 적응했고, 아직 와플 만드는 건 익숙지 않아 했지만 기타 다른 일들은 뚝딱뚝딱 알아서 잘 해냈다.

모두가 지친 이 상황에 '알아서 척척'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나의 숨통도, 기존 아르바이트 생의 숨통도 어느 정도 트였다. 이젠 일하면서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문득문득 곱게 화장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던, 설렘과 긴장으로 눈이 반짝반짝 빛나던 그 신입 지원자가 생각났다.

부디 지금은 어디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을 쌓아 가고 있어 주기를, 이기적인 마음으로 빌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좌이체 완료 확인을 손님으로부터 강요받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