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 페일 에일, 영국 최고의 맥주였다가 사라지다
1등석 여자는
술도 못 마신다고 생각했어요?
'타이타닉' 같은 명작은 언제나 우리 가슴속에 따뜻한 무언가를 남게 한다. 사랑의 농도는 만난 시간에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라거나, 사실 생긴 게 저 디카프리오라면 누구라도 평생 기억하겠다는 현실이나, 3등석에 있는 저놈의 맥주는 무엇이기에 1등석 승객인 로즈도 맛있게 마실 수 있을까라는 궁금함 같은 거 말이다.
하지만 저것이 카스나 테라일리도 없고, 색깔이 어두워 흑맥주(포터)인지 에일인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어?
저 뒤에 있는 아저씨가 들었던 로고! 빨간색 삼각형 로고를 발견하게 되었다. 저것은 어디에서 본 맥주다.
바로 바스(Bass)였다. 빨간 삼각형이 상징인 맥주다. 피카소의 그림에도, 마네의 그림에도 이 맥주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맥주... 타이타닉처럼 망하지 않았나?
오늘 마시즘의 맥주 이야기. 타이타닉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했고, 또 타이타닉처럼 사라진(?) 비운의 맥주 '바스'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가 깊은 술을 만든 사람을 알고 싶다면, 대충 술이름을 읊으면 된다. 바스 맥주를 만든 사람 역시 '윌리엄 바스(William Bass)'라는 인물이다. 그는 맨체스터와 런던을 오가며 운송사업을 하였다. 그의 주요 품목은 바로 맥주, 가 아닌 '모자'였다.
그런데 그의 나이 60살에 양조장을 하나 구입하게 된다. 1777년 나중에 맥주의 도시로 불리게 되는 '버튼 온 트렌트'에 만든 '바스(Bass)'였다. 당시 영국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나라였으니까, 맥주를 좋아하는 영국사람들을 위해 우리도 맥주를 만든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바스 맥주는 밝은 갈색의 '페일 에일(pale Ale)'이었다. 하지만 영국에서 유행하는 맥주는 검은색의 '포터(Porter)'라는 맥주였다. 영국 내에서 인기를 얻기는 힘들었지만 기회는 있었다.
바로 영국 너머에! 바스 맥주는 러시아로, 북미로, 인도로 간다! 어차피 거기도 다 영국 제국이잖아!
해외 진출을 목표로 만든 바스는 1784년 러시아로, 1799년 북미지역으로 수출하며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 판매된 최초의 해외맥주도 '바스 맥주'였다. 심지어 한국의 첫 맥주 자료인 1871년 수입맥주를 한 아름 앉고 있는 김진성님의 사진에도 이 맥주가 등장한다.
수출용 맥주였던 바스 맥주는 영국 본토 내에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바스 맥주를 만들던 '버튼 온 트렌트(Burton-on-Trent)'의 밝은 IPA맥주가 영국의 인기 맥주로 자리 잡았다. 이 지역만의 물 맛이 맥주에 독특한 맛을 만들어주었다며 버튼 온 트렌트는 맥주 하면 떠오르는 도시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맥주들 중 바스 맥주통에 있는 삼각형 문양으로 구분했다. 1830년대 후반부터 사용한 이 삼각형은 바스 맥주의 상징이었다. 이후 1876년 1월 1일 영국 최초의 상표등록을 위해 전날 직원을 출동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덕분에 바스맥주의 붉은 삼각형은 영국 최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런데... 더 이상 맥주를 만들지 않겠다고?
윌리엄 바스가 맥주양조장을 인수한 지 200년, 바스 맥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가 되었다. '타이타닉호'에 실린 맥주라는 타이틀은 바스가 얼마나 인지도 있는 맥주인지를 말해준다. 비록 사고로 500상자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스는 영국에서 가장 많은 펍(맥주집)을 소유한 회사가 되었다. 무려 7,190개의 펍이 있었다. 또한 호텔 사업을 시작해 영국과 유럽에 많은 호텔들을 소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잘 나가던 일이 걸림돌이 되었다.
바로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의 등장이었다. 1989년 마가렛 대처는 대형 맥주회사들의 독점을 막기 위해 정책을 발표했다. 가장 주요한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2,000개 이상의 펍을 소유한 양조업체는 초과분의 절반을 매각해야 한다.'
이는 영국 내의 소규모 맥주 양조업체들에게 단비 같은 이야기였지만, 바스맥주에게는 재앙이었다. 결국 이로 인해 영국의 대형 양조업체들은 펍을 매각해야 했다. 그리고 바스맥주는 맥주사업을 접고, 호텔사업에 집중하기로 한다. 2000년 6월 바스맥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회사 '인터브루(현 AB인베브)'에 맥주사업을 매각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바스맥주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2018년 영국에 '바스 맥주'를 재출시하겠다는 뉴스가 떴다. 영국 내의 에일시장을 다시 한번 살리기 위해 상징적인 맥주를 낸 것이다. 하지만 반응은 이전과 같지 못했다. 맥주 애호가들이라면 반가워할만한 소식이지만 더 이상 버튼 온 트렌트의 맥주가 아니었다.
단지 이름과 삼각형을 가져왔을 뿐 이전과는 내용도, 진정성도 다른 바스 맥주는 이를 기다리는 팬들과 전문가들의 외면을 받았다. 모두가 그리워하지만, 그래서 돌아왔다고 하지만 더 옛날이 그리워진 맥주가 되어버린 것이다.
바스맥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호화롭고 거대한 맥주 산업도 갑자기 침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 번 침몰한 맥주는 다시 대중들의 곁에 온전히 돌아올 수 없다는 것. 마지막으로 맥주에 대한 추억은 오랫동안 기억된다는 타이타닉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 참고문헌
Beer Through the Ages, trystanhoward, Pressbooks
7 Bass pale ale, Beer Through the Ages, trystanhoward
AB InBev to bring Bass Pale Ale back, Nicholas Robinson, Morningadvertiser, 2018.11.9
The Early History of Bass, IAN WEBSTER, THE BEERTONIAN, 2019.12.17
Who Owns What In The UK Brewing Scene?, THE CARLING TEAM, 2020
상투 틀고 끌어안은 맥주병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허윤희, 조선일보, 2021.05.17
The Story of Bass - The Rise & Demise of a Brewing Great, Paul Bailey, Paul’s Beer & Travel 2022.4.22
타이타닉과 사라진 비운의 맥주, 바스 페일 에일, 윤한샘, 오마이뉴스, 2023.4.1
Bass Premium Pale Ale 4.4%, 살찐돼지, 2023. 6. 8
Bass Brewery Logo History, BrandCrowd. 202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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