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 50주년 역사
목욕 후에 마시는 삼각포리는
한국인의 소울 드링크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간 공중목욕탕에서 나는 인내를 배웠다. 뜨거운 온탕과 거친 때밀이가 펼쳐지는 아수라장, 잠깐이라도 견디기 힘들었던 사우나와 냉탕의 지옥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이것 때문이었다.
바로 목욕을 하고 난 뒤에 아빠가 사주는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였다. 잽싸게 삼각포리의 꼭지를 가위로 자르고 빨대를 꽂아 마시면서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이렇게 맛있는 커피우유를 더 많이 마실 수 있는 거야?"
안타깝게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여전히 이 녀석보다 맛있는 커피 음료를 찾을 수가 없다. 마치 어린 시절 즐겨 마셨던 친구 같은 음료가 알고 보니 '이쪽 세계관 최강자'였다고 할까?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가 세상에 나온 지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녀석을 이길만한 제품은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다른 애들은 삼각팩에 담기지 않았잖아(어디 사각형이 까불어).
그렇다. 시대를 막론하고 오랫동안 사랑받은 음료들은 고유의 모양이 있다. 코카콜라의 곡선 유리병이라던지, 앤디워홀의 작품이 되기도 했던 앱솔루트 보드카의 병 디자인이 그렇다.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 역시 한 번 보면 잊힐 수 없는 디자인을 가졌다. 삼각형의 팩모양에 담긴 커피라니. 어쩌다가 이런 용기에 음료를 넣게 된 걸까?
시간을 돌려보자.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가 아는 우유는 유리병에 담겨서 판매되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우유의 맛과 영양에 반해가는 사이 우유회사들에는 문제가 생겼다.
신선한 우유를 담을 '유리병'이 잘 회수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우유를 만들려면 병을 또 만들어야 하고, 병은 무겁고, 깨지기가 쉽다 보니 우유회사들의 멘탈도 깨지기 일부직전이었다.
1972년 대한민국 우유를 대표하는 '서울우유'가 먼저 변화를 모색했다. 만들기도 쉽고, 우유의 맛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방법. 바로 '삼각팩'을 만든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 담긴 것이 '커피'가 아니라 그냥 '흰 우유'였다는 것이다. 아... 커피로 시작한 게 아니었어?
안타깝게도 서울우유의 삼각팩 변신은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몇 가지 이유를 추측하면 아래와 같다.
1. 유리병이 익숙한데 이것은 낯설게 생겼다.
2. 마시려면 가위가 꼭 필요하다.
3. 우유를 마시고 난 다음에 얻는 '유리병'도 없잖아?
하지만 이 삼각팩에 우유 대신 커피가 담기자 상황은 이렇게 변한다.
1. 유리병 우유와 다른 맛이 포장도 멋지네?
2. 가위로 잘라 마셔야 한다니 재미있다.
3. 유리병은 구할 수 없지만, 더 구하기 힘든 커피를 마실 수 있잖아!
1974년에 출시된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는 외형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완벽한 데뷔였다. 당시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커피믹스나 자판기커피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다. 상류층들만 먹는다는 귀한 커피 맛을 볼 수 있다는 매력에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는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우유를 담을 유리병의 문제는 모두 '종이팩'으로 대체가 되었다. 딱 한 가지 제품만 빼고 말이다. 바로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다. 50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이 제품을 삼각팩에 마시고 싶어 했다. 우리의 DNA가 뭔가 이 삼각형의 팩에 담긴 커피를 원한다고!
그런데 정말 궁금했다. 삼각팩에 든 커피는 왜 맛있게 느껴지는 것일까?
인터넷에는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를 두고 한 가지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바로 서울우유에서 만든 커피에는 재료가 유사하기 때문에 맛은 같다는 주장이다.
이런 말이 나오면 금세 많은 한국사람이 달려들어 '그렇지 않아! 확신하는데 삼각팩에 뭔가 더 성분을 넣은 게 분명해!'라는 의혹제기파와 '예로부터 커피는 사각이 아니라 삼각에 마셔야 한다'는 장유유서파 등의 답글이 달리게 된다. 때문에 마시즘이 한 번 그 이유를 3가지로 찾아봤다.
첫 번째, 다른 커피 제품과 비교했을 때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를 비롯한 가공유 시리즈들은 원유함량이 높아서 맛있을 수밖에 없다. 국산 원유를 75%를 넣어 깔끔한 우유맛을 강조했다. 재료가 좋으니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같은 서울우유에서 나오는 커피들의 차이를 설명할 순 없다.
두 번째는 '삼각팩' 그 자체다. 사람은 이미 맛을 보기 전에 눈으로 맛을 짐작하거나 기대한다. 다른 우유들과 달리 삼각팩 모양에 담겨있는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는 이제 유일무이한 디자인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전 국민이 이 제품을 안다. 이게 바로 '힙'이 아니던가?
세 번째는 마시는 방법이다. 처음 삼각팩이 고려되었을 때 종이펄프가 아닌 이런 포장을 선택한 것은 포장재가 가지고 있는 영향을 받지 않고 우유의 맛만을 순수하게 전달하자는 의도였다. 많은 포장들은 입구에서 재질의 향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는 그렇지 않았고, 심지어 빨대를 꽂아 마신다.
당시에는 우유의 참맛을 알려주기 위한 가장 좋은 시도로 느껴진다. 물론 단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이걸 마시려고 엄마 쪽가위를 훔쳐서 주머니나 가방에 넣어두고 다녀야 했으니까. 언젠가... 빨대가 바로 꽂아지는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가 나올 수도 있을까?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가 세상에 등장한 지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대단한 점은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매년 3,500만 개가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이 음료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어른들은 어른대로,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발견과 추억으로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의 사랑은 계속 진행 중이다. 어느덧 이 삼각팩에 담긴 커피는 서울우유를 넘어 '소울우유'가 된 것이 아닐까?
세상에 있는 다양하고 맛있는 커피들 사이에서 '유일한 모양을 가진 커피'.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는 맛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한 노력과 그것을 즐긴 사람들의 추억과 감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여러분은 서울우유 커피 삼각포리 안에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참고문헌
마시는 법, 동아일보, 1976.7.23
서울우유 제품 다양화에 박차, 매일경제, 1977.6.9
코피우유 판매 잇달아 업계 소비 확대 일환책, 매일경제, 1987.8.20
국내 지로팩용기 생산의 역사, 한국포장협회, 1999.1
투명한 사면체의 추억 삼각포리 커피우유, 디자인DB Vol.175, 2001
30년 넘은 장수제품 ‘불황시대 효자’, 김보미, 경향신문, 2009.2.23
서울우유, 39년 만에 새로운 '삼각우유' 출시, 정은미, 아이뉴스24, 2012.6.26
자전거로 우유병 나르던 그 시절부터…1위 지킨 ‘협동조합 체제’, 주현진, 서울신문, 201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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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 공중목욕탕의 추억…서울우유 '커피포리', 김동현, 뉴시스, 2021.6.6
온라인용 ‘삼각커피우유’ 판매 돌풍…이커머스 힘주는 서울우유, 조재형, 아주경제, 2021.11.23
서울우유 커피우유 3종, 성분은 같아도 맛은 다르다?, 김효인, 조유빈, 투데이신문, 202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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