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시대의 하이퍼 리얼리즘 일기
"입사하자마자 임신해가지고 바-로 육휴 가서 저혼자 일 다했잖아요. 진짜 개싫어."
옆자리 동료가 투덜댔다. 사실 나는 임신 중이었다. 6-7주 차 정도의 극초기 무렵이라 회사 동료에겐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12주차까지는, 그러니까 아이의 심장 소리를 제대로 듣고 건강하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 사람들은 임신 사실을 잘 알리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그녀도 나의 임신 사실은 몰랐다. 막 입사한 그녀는 전 회사에 대한 분노를 종종 표출하곤 했는데, 거기엔 동료의 육아휴직으로 인한 업무 과중도 있었다. 그 말이 선득 나에게 하는 경고 같아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나보단 대여섯은 어렸던 그녀에겐 차마 입밖으론 꺼내진 못했지만 당신도 곧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될 것이란 얘길 하고 싶었다. 한마디로 남 얘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출산도 선택의 몫이고 어쩌면 평생 아이를 갖는 경험은 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했다.
온갖 미디어에서 출산율을 얘기하는 작금에 근 3년 동안 내가 겪은 임신과 출산, 육아 얘기를 하고 싶어졌다. 나는 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막연히 아이와도 '자만추'를 기대했던 것 같다. 평소 아이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거니와 특히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 미지의 불편함(왜죠, 왜 안낳아봤는데도 알 것 같았죠?)도 걱정이 됐다. 거기엔 나에 대한 여러 문제도 섞여 있었다. 나라는 사람이 육아에 과연 적합한지, 나의 경제 상황은 괜찮은지, 무엇보다 내 유년시절이 몽땅 투영되는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 두려웠던 것이다. 어쨌든 몰랐기에 할 수 있었던 임신과 출산, 육아는 내 생각보다 더 괴롭고 힘들었다. 온갖 상황 속에 놓인 내 육체와 정신이 처절하게 고문 당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스스로 육아불능자로 칭하게 된 나는 정말 이 사회에서 헌신과 모성애와 같은 온갖 의미부여를 쏙 뺀 날것의 경험을 간접 체험하도록 해야겠다 생각했다. 지극히 한 개인의 사적인 경험이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 정말 알고 싶나요? 그럼 이 글을 읽어보세요 이렇게, "우리나라 출산율은 도대체 왜 떨어지는 거예요?" 묻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내게 임신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 무렵 살던 단독주택 옥상엔 종종 길고양이가 찾아 왔다. 특히 한 가족으로 보였던 두 고양이는 우리가 키운다 할 만큼 매일 우리집을 찾곤 했다. 그중 한 녀석은 새끼를 한 마리 낳아 데리고 온 전적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두 번째 임신을 한 채였다. 정작 나는 옥상 고양이의 임신과 출산에만 몰두한 채 내 몸의 이상함은 감지하지 못했다.
결혼 3년차, 다낭성난소증후군을 가졌던 터라 불규칙한 생리 주기는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한 것이었다. 생리를 할 무렵이면 자연스럽게 열감이 생기고 가슴 통증과 관절통을 느끼면서 대략 대자연의 날을 짐작해 보는 게 고작이었다. 게다가 2-3개월 주기로 1년 중 배란을 하는 횟수도 5-6번, 즉 1년 중 임신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다섯 번이란 얘기다(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기회로 태어났는지!). 아무튼 그런 이유로 피임을 게을리 했던 것도 있지만, 우리는 여느 부부같지 않게(?) 열렬한 애정을 나누는 부부도 아니었다. 아침에 부랴부랴 출근하고 지하철에 몸을 태워 어기적어기적 퇴근하는 서울의 보편적인 맞벌이 부부, 연애 때보다도 현저히 줄어든 부부관계, 엄청난 습도와 온도로 한줄기 애정마저 싹 말려버리는 여름철엔 더더욱 '하지' 않는다.
그해 처서가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슬쩍 불어올 무렵에 임신테스트기로 두 줄을 확인했다. 임신을 한 옥상 고양이가 며칠 보이지 않다 수척해진 얼굴로 오랜만에 옥상을 찾아온 날, 프리랜서 생활을 접고 막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기 시작했고, 굳이 피임을 하지 않는데도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내 몸에 의아함이 생기던 차였으며, 그렇다고 부모가 될 자신도 없던 때였다.
하필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예약해둔 날 아침 테스트기를 확인했던 터라 얼떨떨한 얼굴로 일단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의사의 접종을 미루라는 권고와 함께 산부인과부터 가란 조언을 들었다. 나와 남편은 최대한 침착하게 얘길 나눴다. 드라마 같은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얼싸안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섣불리 기뻐하지 말자, 덤덤하게 생각하자. 그게 우리의 진짜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