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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경 May 28. 2022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열두 번째 이야기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는데,

그냥 어디서 본 건 많아서.


일단은 늘 무거워야만 할 것 같은데,

문득 둘러보니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쉬이 쓰이는 것 같아서.


지우개를 바들짝 꺼내 들어 이내 쓱쓱 문지르고는

조금은 거뭇한 연필자욱이 남은 마음 위에다

이 정도만 적어본다. 당신을 좋아한다고.


그런데 내 마음도 퍽이나 유약한 것이

어제까진 민둥민둥하던 게 좋아한다 말 한마디

입 밖으로 꺼냈다고 이 오늘은 퍽이나 요동을 쳐서

온 머리로 멀미를 하게 만드는데

이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니어 버렸다.

난 그저 좋아한다 말 한마디 외쳐본 것일 뿐인데.

사랑도 아니고 단지.


영 대답 없는 빈 핸드폰 화면을 향한

두서없는 시선으로 헛구역질 두어 번 하고서야

손끝으로 입술의 끝을 매만지며

아, 꽤나 먼 강을 건너버렸구나 싶다.


너도 나와 조금은 같은 마음이길 바라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너가 저 멀리 달아날까 봐

좋아한다고 했던 것인데,

결국 그 말이 나는 언젠가는 널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진심이었으면서, 설령 그 사람이 모른 척

지나가도 힘들지 않겠거니 저무는 해를 보는데


결국 나는 이 밤이 다 지나기도 전에

다시 한번 지우개로 박박, 문지르고

꾹꾹 눌러 담을 것이다. 아니,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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