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이야기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는데,
그냥 어디서 본 건 많아서.
일단은 늘 무거워야만 할 것 같은데,
문득 둘러보니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쉬이 쓰이는 것 같아서.
지우개를 바들짝 꺼내 들어 이내 쓱쓱 문지르고는
조금은 거뭇한 연필자욱이 남은 마음 위에다
이 정도만 적어본다. 당신을 좋아한다고.
그런데 내 마음도 퍽이나 유약한 것이
어제까진 민둥민둥하던 게 좋아한다 말 한마디
입 밖으로 꺼냈다고 이 오늘은 퍽이나 요동을 쳐서
온 머리로 멀미를 하게 만드는데
이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니어 버렸다.
난 그저 좋아한다 말 한마디 외쳐본 것일 뿐인데.
사랑도 아니고 단지.
영 대답 없는 빈 핸드폰 화면을 향한
두서없는 시선으로 헛구역질 두어 번 하고서야
손끝으로 입술의 끝을 매만지며
아, 꽤나 먼 강을 건너버렸구나 싶다.
너도 나와 조금은 같은 마음이길 바라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너가 저 멀리 달아날까 봐
좋아한다고 했던 것인데,
결국 그 말이 나는 언젠가는 널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진심이었으면서, 설령 그 사람이 모른 척
지나가도 힘들지 않겠거니 저무는 해를 보는데
결국 나는 이 밤이 다 지나기도 전에
다시 한번 지우개로 박박, 문지르고
꾹꾹 눌러 담을 것이다. 아니,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