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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Dec 05. 2024

처음으로 돌아가다

처음으로 돌아가다 _ 남자

술자리에서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던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직원들 4대 보험료만 한 해에 1억 가까이 낸다는 것'이었고- 대개 그렇듯 약간(?)의 허풍이 들어가 있다 - 나머지 하나는 '지난 2년간 우리 한의원에는 퇴사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굉장한 사업이라도 할 것처럼 멀쩡한 회사- 진짜 멀쩡했는지는 모르겠다 -를 박차고 나와 아직도 자영업 수준의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나에 대한 변호와 직원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직장을 만들어가며 국가의 고용창출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취기가 더해지며 경솔한 발언을 했던 거 같다. 옛사람들이 말을 조심하라고 했던가? 얼마 전에 이 두 가지가 모두 무너졌다. 그것도 동시에.


          시작은 사소했다. 아니, 사소해 보였다. 운영팀 직원 하나가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하였다. 키우던 고양이가 아파서 돌봐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고양이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일을 계속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지만 비용상의 문제로 어렵다고 했다- 반려동물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이 무척 비싸다고 했다 -. 나는 직원을 설득해 우선 휴가 처리하고 고양이가 좀 괜찮아지면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직원 없이 꾸역꾸역 한의원을 운영해 나가는 며칠새 고양이는 죽었다. 직원은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두겠다고 했다. 이미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버린 것이었다. 대신 사람을 새로 뽑아 교육할 때까지는 있어주겠다고 했다.


          내가 교육을 받기로 했다. 운영팀원을 뽑아 교육을 하는 데에는 최소 두 달 이상이 필요했고 두 달이라는 기간은 이미 퇴사를 결심한 사람에게 요구하기에는 지나치게 긴 기간이었다. 이는 향후 한의원을 운영하는데 커다란 위험요소였다. 혹시라도 며칠 말미로 그만두는 사람이 생기면 낭패였다. 그래서 내가 버퍼가 되기로 했다. 운영팀 직원이 그만두면 사람을 뽑을 때까지 내가 대체하고 새로 온 사람 교육도 내가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나는 수년 만에 다시 데스크에 앉게 되었다.




문제는 내가 실무에서 손을 뗀 지 너무 오래됐다는 것이었다. 제수를 실장으로 영입한 이후 나는 사실상 거의 프런트에 나서지 않았다. 마치 고종을 뒤에서 조종하는 대원위대감처럼 주로 한의원 밖에서 실장을 통해 이런저런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연히 어색했다. 게다가 업무의 복잡도가 상당했다. 한의원의 평범하지 않은 확장이 그 이유였다. 우리는 스무 평 남짓한 신축 아파트 상가에서 한의원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빠른 성장 속도에 얼마 지나지 않아 확장을 고민하게 되었다. 문제는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쪽은 자가로 운영하고 있는 치과였고 다른 한쪽은 영업을 할 수 없는 공용공간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한의원과 10미터 정도 떨어진, 공용공간 옆 점포를 계약해서 원래 진료하던 본원과 함께 운영하였다- 우리 한의원에서는 이 공간을 '센터'라고 불렀다 -. 그래서 한의원은 하나인데 데스크도 두 개, 대기실도 두 개인 이상한 구조가 되었다.


          운영팀 업무는 만만지 않았다. 특히 '센터'가 그랬다. 공간이 통합되었더라면 하지 않아도 될 수많은 절차들이 있었다. 본원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였다. 근무여건도 열악했다. 치료대기실에 있는 캐비닛은 치료팀 직원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었고 운영팀 직원은 바구니에 자기 소지품을 넣어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혼자서 일한다는 것이었다. 센터에서 일하는 치료팀은 네 명인데 운영팀은 하나였다. 환자를 하나라도 더 받으려는 운영팀과 환자가 많아지면 힘들어지는 치료팀은 업무의 특성상 태생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데 혼자서 네 명과 싸우려니 힘들었을 것이다. 그 직원이 그만둔다고 한 이유가 고양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스크 실습을 한 몇 주 동안 나는 이 모든 사실을 몸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직원에게 미안했고 그동안 버텨준 것에 대해 고마웠다. 그리고 이 문제는 사소한 부분을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전체적인 운영 시스템을 바꾸기로 했다. 그렇게 본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내 방 - 당시에는 실장의 방 - 을 허물고 본원 데스크와 대기실 공간을 넓혔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모든 운영팀 업무는 본원에서 하라고 했다. 당연히 운영팀 전체는 본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환자가 센터에 내원했을 때 베드를 배정하고 모시는 것은 이제 치료팀의 업무가 되었다.




바뀐 시스템 이후 걱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환자들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센터에서 치료받는 환자들이 치료 후에 본원에 들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환자들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기꺼이 본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더 큰 걱정은 치료팀이었다. 하지 않았던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직원들의 거부감은 심했다. 나는 치료팀이 몇 년간 팀워크를 맞춰왔기에 베드를 배정하고 환자를 안내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게다가 치료팀원들 간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어왔고 안으로 곪아있었다. 그리고 내 과감한 결정이 계기가 되어 이 모든 것이 폭발해 버렸다.


          어찌어찌 위태로운 상황을 이어가는 와중에 수년간 근무했던 부원장 하나가 본인의 한의원을 개원하기 위해 떠났다. 워낙 인품이 좋고 성실해서 직원들의 신망을 받던 사람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실장이 사직서를 냈다. 휴가를 쓰고 면접을 본 곳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고 했다.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직원, 그것도 가족이고 중간관리자였던 실장이 힘든 시기에 그만둔다는 건 타격이 컸다. 면접을 볼 때만이라도 미리 언질이라도 주었다면 대비했을 거라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배신감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남은 직원들을 챙겨야 했다. 예상대로 직원들은 동요했다. 결국 치료팀장이 이런저런 말을 두서없이 늘어놓으며 퇴사했고 나머지 치료팀 직원들도 차례대로 떠났다. 결국 우리는 센터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는 채 세 달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갔다. 4인 이하의 사업장이 되었고 스무 평 남짓한 본원만 운영한다. 아내는 다시 주 5일 진료를 하고 대개 새벽 별을 보며 퇴근한다. 신기한 것은 아내가 한결 편안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관리자로서의 스트레스가 심했던 거 같다. 좋아진 면도 있다. 이젠 아내 혼자 진료를 하기 때문에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치료 베드가 줄은 탓에 예약은 어려워졌지만 우리 한의원은 요즘 '찐팬'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고양이 때문에 그만두려던 직원은 지금 한의원 운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나는 다시 거의 반백수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규모가 줄다 보면 내가 할 일은 줄게 된다. 출근하지 않고 재무, 세무만 체크하는 백업의 업무만 맡게 되었다. 고맙게도 아내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의 새로운 목표를 믿어주고 응원한다고 했다. 나는 나대로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집중력으로 아내가 어렵게 확보해 준 시간을 치열하게 활용하고 있다. 아직은 뚜렷한 무언가가 보이지는 않지만 나를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한다. 


     지금 우리 부부는 처음 함께 일을 하기로 하면서 세운 계획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일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방식은 약간 달라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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