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의 도시 산힐, 남자의 여행 여자의 여행?
이건 취향도, 선호도, 선택의 문제도 아니니까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 전날 밤 짧은 대화 후 헤어졌던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그리고 그들의 콜롬비아 친구로 추정되는 무리와 마주쳤다. 우리가 그들을 발견한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발견했는지, 저 멀리에서부터 손을 흔들어 왔다. 저들이 물꼬를 트면 당장 달려와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볼 것만 같은 기운을 뿜어대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았지만, 어째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체크아웃한 거 아니었어? 여기에서 뭐 해?”
“응 맞아, 우리 방 없어! 아직 방 못 구해서 그냥 길에서 잘 거야!”
“농담이지?”
“진짜야!”
이 무모하고 당찬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이름은 ‘파스칼’과 ‘마크’였다. 그리고 부카라망가에서 왔다는 그들의 친구들은 ‘페르난도’, ‘까미요’, ‘하비에르’, ‘윈솔’이었다. 무리에 무리가 합세해 가게 앞에 원을 그리고 섰다. 누군가 뽀께르를 잔뜩 사서 나와 손에 쥐여 주었다.
방 한구석에 쌓아 놓은 젖은 신발과 로프, 오토바이 헬멧을 보며 했던 추측대로 그들은 자유분방하고 활동적인 사람들이었다. 파스칼은 직장을 그만두고 9개월째 오토바이로 남미를 여행하고 있었다. 언제나 다음 목적지는 없고, 당장 내일부터는 마크와 카약을 배우러 간다고 했다. 3부에 걸쳐 쓰인 여행 에세이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사람, 그러니까 우리와는 조금 많이 다른 결정을 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바로 옆에서 만나게 되다니. 그런 의미에서 파스칼은 참 ‘대단한' 친구였다.
우리가 방금 생일 파티를 하고 왔다는 사실에 그들은 “생일 축하해!”를 외치며 끊임없이 맥주를 공급해왔고 손에서는 맥주가 떨어질 틈이 없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고 웃고 떠들고, 한 잔이 두 잔, 세 잔, 네 잔, 다섯 잔이 되었다. 화장실의 줄은 길어지고 그만큼 흥도 늘어졌다.
대체 지금이 몇 시인지, 내일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패러 글라이딩을 하러 가야 한다는 사실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파스칼과 친구들을 따라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자칫 무료하고 따분하기만 해 보이던 산힐에서도 새벽까지 문을 여는 클럽(디스코텍)이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새벽 3시면 칼같이 문을 닫는다는 것이 다소 충격적인 곳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바모스! 바모스!”
얼마나 마시고, 얼마나 흔들었을까.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우리는 3시에 문을 닫는다니 말이 안 된다며 한참을 불만이 잔뜩 담긴, 그러나 어째서인지 웃기기만 한 불평을 늘어놓다 쫓기듯 밖으로 나왔다.
파스칼과 나란히 앉아, 택시를 불러서 하나 둘 떠나는 일행을 보고 있을 때였다. 낯선 남자 하나가 웬 자그마한 파란 가방을 눈앞으로 흔들며 다가오더니 우리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손장난을 치던 우리에게 파스칼이 물었다.
“얘가 자기네 호스텔로 오래. 좋은 것도 많다는데?”
“그래?”
“갈까? 말까?”
우리의 의견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만은 어쨌거나 물었으니 답은 해야 하지 않겠나. 오지랖 조금 보태 가지 말라고 답했다. 가지 마 빠드레, 이 시간에 택시 타고 혼자 집에 가는 거 우리 못한단 말이야. 너처럼, 너희처럼 이렇게 아무 때나 지나가는 택시 붙잡아 타는 거, 그건 좀 무섭단 말이야. 아무렇게나 잡고 아무렇게나 타는 게 쉽지 않단 말이야.
새벽 한가운데의 호스텔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방이 없는 파스칼은 소파에 자리를 잡았고, 잔뜩 늘어져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양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왜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지, 왜 박살 난 아이폰 액정을 방치하는지, 남미를 여행하기에 세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지 않은지, 별거 아닌 이야기가 그렇게도 즐거웠던 걸 보니 확실히 술에 취했던 게다. 볼 언저리가 뜨끈거리고 잔뜩 상기된 기분은 좀처럼 내려올 줄을 몰랐다.
“방 못 구하면 어떡해?”
“그거 알아? 여기는 싸고, 많아.”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나 싶었다. 또렷하지 않은 정신, 무슨 이야기를 해도 웃어줄 수 있을 것만 같던 기분 좋은 흥분감을 뚫고 기시감 하나가 스멀스멀 솟아 올라왔다. 아, 쟤 입에서 나올 이야기, 그게 어떤 이야기인지 알 것 같기도 한데,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가 아닐 게 분명한데, 아니 너에게는 유쾌한 이야기인가?
그의 입에서 장난스레 그리고 은밀하게 흘러나온 이야기는, 예상이 너무도 쉬운 것이었다.
최근 콜롬비아 경제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해외 기업들의 투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넓은 대륙, 풍부한 자원, 저렴한 물가, 게다가 미국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까지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조건을 가진 땅이었다. 나라를 둘러싼 정부, 마약 카르텔, 무장 게릴라군 등의 갈등 구조, 그리고 마약과 매춘이라는 비극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콜롬비아의 혼란스러운 정치 구도와 마약 카르텔을 중심으로 한 폭력 상황이 어느 정도 해결의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는 외국 기업 유치에 힘을 썼고, 아직 개척되지 않은 노다지를 품은 땅으로 해외 투자자들은 몰려 왔다.
그러나 불러가는 국고가 콜롬비아의 고질적 경제 문제로 지적되는 마약과 매춘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약과 매춘은 콜롬비아 경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면서, 아이러니하게 경제의 주축이 되기도 했다. 그것은 여전히 이곳에서 어머니로 아버지로 아들로 딸로 살아가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 그중의 누군가에게는 별개의 호황이었고, 벗어날 수 없는 생존의 굴레였다.
흔히 경제적 제3세계 혹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기까지 하는 이 나라에서, 빈부격차가 극심한 이 나라에서, 성비에서 여성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 나라에서, 어린 엄마가 홀로 아이를 키워내는 미혼모의 비율이 높은 이 나라에서, 여성들의 경우는 상황이 좀 더 나쁘다. 종교적 이유로 낙태를 금기시하는 콜롬비아의 사회적 분위기가 수많은 미혼모의 삶을 고난 속으로 몰아넣었고, 아이와 자신의 삶을 부양할 능력이 없어 거리로 내몰린 많은 여성이 매춘의 표적이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콜롬비아는 대부분 남성의 월 평균 수입이 3-400달러 언저리인 나라이다. 반면, 여성들의 경우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거나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순조롭지 않을 뿐더러, 임금 역시 상대적으로 낮다고 한다. 하룻밤 매춘에 대한 대가가 월 평균 수입의 4분의 1 혹은 5분의 1이 된다면, 일종의 해결책으로 작용하기까지 하는 그 매력적인 대가를 거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가난은 지독하게 종속적이고 기회는 너무나도 불평등하다.
마약과 매춘은 여전히 돈이 되는 사업이며, 제1세계 사람들이 그곳에 기꺼이 지불하게 될 돈은, 그 가치가 높다. 제1세계 사람이라니, 다분히 구시대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며 지극히 차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이 단어를 지금 여기에서 사용하게 될 줄이야.
특정 국가와 사람들을 몇 세계 사람이니, 몇 세계 사람이니 하는 것은 어딘가 마뜩잖다. 예나 지금이나 서유럽과 미국은 잘 먹고 잘사는 나라임에 틀림없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용어에서 경제적인 용어로 그 의미가 변화되어 사용된다는 점에서, 제1세계라는 말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말이다. 다만 취향도, 선호도, 선택의 문제도 아니었던 국적과 성별의 차원에서 그들의 여행은 꽤나 거리감 느껴지는 ‘그들'의 여행이었기에 다음과 같은 어휘를 사용하기를 택했다.
어디에서도, 적어도 이곳에서는 기득권의 자리를 벗어나 보지 않았을 것만 같았던 그. 비하면 부자인 나라, 비하면 우월한 인종, 비하면 우월한 성별까지 되기도 하는 그. 파스칼은 기꺼이 돈을 지불할 나라에서 왔다. 하룻밤이고 이틀 밤이고 지폐 몇 장이면 누군가의 따스한 품속에서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는 거침이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싸고 많은 나라이지 않은가.
왜 너무나도 쉽게 여성의 노동은 정당한 가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존재로 치부되는 걸까, 아니 왜 동일한 사회 구조 속에서 노동할 수 없는 걸까, 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수많은 여성의 웃음과 몸은 부당한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어야만 하는 걸까. 왜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한 결정도, 우리의 결정에 대한 권리도 강요와 박탈이라는 개념 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어야 하는 걸까.
종래에는 개개인에 따라 모두 다르게 묘사될 여행 경험이라는 것은 감각적 차원의 영역 안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기까지 한 다차원의 경험 속에서 다시 한번 재생산 되리라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성별의 차이 역시 배제할 수 없는 차원으로 작용하게 되리라는 것.
제1세계 남자로 제3세계를 여행한다는 건 그렇지 않은 세계를 살아가는 여자가 그리는 경험 속에서는 완전히 재현될 수 없다. 온전히 이해하기에도 받아들이기에도 묘사하기에도, 겪어본 적 없는 이에게는 모두 쉽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상기할 그 순간의 모습은 그의 기억과 무척이나 다른 거라는 사실을, 적어도 우리도 알고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