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DON'T DO THAT
살까 말까 하는 건 사고
먹을까 말까 하는 건 먹고
할까 말까 하는 건 하고
뭐든지 고(go)와 두(do)로 귀결되었던 단순한 나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요즘은 시시콜콜한 영역 곳곳에 노(no)와 낫(not)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말할까 말까 할 때는 하지 말자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말자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말자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록 나는 그것들이 어려워지기만 했다. 세상은 나의 가치만을 우주로 쳐주는 곳이 아니었고, 나는 내가 알던 삶이나 상식 밖의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 바싹하니 말려지기만을 기다리며 갈래갈래 찢어진 가지처럼 내 자아는 잘게 나누어졌다. 가림막은 없었다.
나는 숱한 타자들을 겪으며 부딪혀 충돌하기도 하고 상처입으며 그들을 흡수하기도 했다. 때로는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어딘가 나가떨어지기도 했다. 나를 지키는 거름망은 헤지고 헤져 약해질 때가 잦았고 그 시간 속에서 돌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들의 우주를 비켜 가는 것, 넘어가려 시도하지 않는 것. 적당한 회피가 비겁하고 옹졸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고, 회피는 종종 관계에 안정을 선사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먼 곳을 바라보고 의미 없는 미소를 보내는 동안 내 편견의 안테나는 더욱 예민해지기도 했다. 편협의 가르마는 더욱 공고해졌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라는 주머니 하나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니, 좋아하기는 하지만 자주 보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라는 주머니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내 속에는 편견과 편협이 만든 비밀스러운 주머니 여러 개가 생겨났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함부로 재단하지 말 것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 것
함부로 상처 주지 말 것
함부로 천박해지지 말 것
함부로 부끄러워지지 말 것
이 약속은 더 많은 주머니의 탄생을 경계하고자 하는 내 나름의 노력이다. 스스로를 더 이상 타락시키지 않고자 하는 방어기제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에도 익숙한 사람을 만날 때에도 잊지 않고 되새긴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을뿐더러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다소 비관적인 내가 그럼에도 잊지 않고자 하는 가치이다. 겁이 많아졌고 신중해진 내가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숨을 고르듯 고르고 또 고르는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