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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leena Feb 04. 2020

첫날부터 이렇게 대책 없이 취해버리면 어쩌자는 건데

먹고 요리하고 춤추는 칼리, 어쩌긴 맘껏 좋아할 수밖에


더! 더! 더!


첫 만남부터 범상치 않은 곳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한국어로, 그것도 콜롬비아 칼리에서 프랑스 사람에게 듣게 될 줄이야. 방금 막 도착한 호스텔 리셉션에 가방을 내려 두던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 ‘엠마’는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던 프랑스인이었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있다니! 넘실대는 안도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호스텔 사람들에게는 비밀이라며 자신의 나이를 말한 엠마는 ‘언니’였다. 우리에게만 있는 독특한 호칭, 우리는 오늘 만난 이 언니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망원동에 살았다던 엠마는 동네 맛집을 줄줄 꾀고 소개할 정도로 그곳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용산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우리에게 용산역 근처 사우나를 아냐며 환호하기도 했다.


누군가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오랜만이었던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던 계획도 잊고 엠마와의 대화에 푹 빠져 버렸다. 그렇게 얼마간 호스텔 마당에 위치한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앉아 수다 삼매경이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우리는 주방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노래를 불러댔다. 엠마의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였다. 우리가 칼리에 도착한 날은 마침 엠마의 생일 파티가 열리게 될 날이었고, 노는 데에는 도통 거절을 모르는 우리는 “혹시"라며 운을 뗀 엠마의 초대에 “당연”이라고 답했다.


투숙객이 없는 건지 시끌벅적하게 주방을 울리는 무리를 저지하는 이는 없었다. 아니, 알고 보니 호스텔 호스트들과 그 친구들이 총출동한 파티였다. 엠마는 할머니의 비법을 따라 만들었다는 커다란 애플파이와 초코 시럽이 잔뜩 뿌려진 빵을 내어왔다. 한 푼 두 푼 모아 산 술도 테이블 위로 올려졌다. 


작은 플라스틱 컵에 담긴 것이 투명한 게 꼭 소주 같은 이 술은 메데인에서 만난 친구들과 마셔 본 적이 있는 ‘아구아르디엔떼(Aguardiente)’, 일명 ‘불타는 물’이다. 약간 취한 상태에서 들이키면 그 맛이 흡사 소주처럼 느껴지는 어딘가 친근한 술이다. 거침없이 들이키자 가슴 언저리가 타는 것처럼 달아올라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맥주 한잔, 파이 한입, 맥주 한잔, 파이 한입. 낯가림은 완전히 가셨고 목소리는 통제를 잃어가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전망이 끝내줄 거라던 ‘세바스티안’의 아파트로 자리를 옮겼다. 주로 사진을 찍고 가끔 드럼을 친다는 세바스티안은 엠마와 친남매처럼 가까운 사이의 친구다. 그의 아파트는 호스텔에서 나와 몇 분을 걸어 오른 오르막길 한쪽에 위치해 있었다. 조심조심 문을 따고 들어가 나선형의 계단을 타고 들어선 옥상에서는 칼리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가본 적 없는 보고타의 몬세라떼 언덕도, 타보지 않은 메데인의 케이블카도 부럽지 않을 풍경이었다. 


반짝이는 불빛, 뜨거워지기 시작한 양볼, 호감 가는 사람의 생일, 알고 싶어 지는 사람들, 한 손에 들린 술까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뒤로 넘어갈까 불안하다. 조심해.”

“칼리에 오길 잘한 것 같아. 여기 정말 멋지다.”


채워진 잔을 외면하지 못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테이블 위에 쌓인 잔은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두서없이 옮겨졌다. 처음 보는 얼굴들과 인사를 나눴고, 각자가 챙겨 온 술을 공유하기도 하며 다 같이 한 데 뒤섞여 즐겼다. 난데없는 살사 파티가 벌어지기도 했고, 뒤엉키는 스텝만큼이나 꼬여가는 혀를 주체할 수 없었다. 


“칼리는 진짜 매력적인 동네야. 영화 틀어주는 카페도 많고 미술관도 많아. 살사 클럽도 진짜 많고 재미있어.”

“비야 데 레이바에 있을 때 알게 된 친구들이 여기를 ‘칼리우드’라고 부르던데?”

“맞아, 호스텔 근처에도 영화 볼 수 있는 카페 많으니까 꼭 가봐!”


엠마는 살사만큼이나 즐길 것들이 많은 칼리를 예술적인 동네라 찬양했다.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세바스티안이 거들자 왜인지 신뢰와 기대가 한껏 올라갔다. 차차 알아갈 동네가 벌써부터 취향인 것 같으니 어쩌나, 맘껏 좋아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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