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4.30
메이데이 전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하늘이 누래졌다 까매졌다 요동을 쳤다. 난 결혼식 참석하러 안산까지 지하철로 왔다갔다 했고, 사당역에서 내려서 걸어오다가 비폭탄을 뒤집어 쓰고서야 집에 도착했다. 대충 몸을 추스리고 있는데 지인이 사람 심기를 건드렸다. 복음을 상황으로 번역하재나 뭐래나....혼자 신경질을 내면서 빗속을 뚫고 고려대로 향했다.
(그 때부터 시작된 두통이 오늘 아침까지 계속됐었다는 건 말하지 않았었다.) 한참 헤맨 끝에 학생운동 하는 이들이 모인 작은 강당에 들어갔다. 지인은 그 곳에서 성무일과 (성공회에서 아침, 점심, 저녁 매일 하는 기도) 저녁 기도를 한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날 부른 거였다.
학생들은 그 수가 적었다. 물론 나도 메이데이 집회는 처음이었지만, 처음인 내가 봐도 참 빈약했다. 비가 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처음 투쟁전선(!)에 뛰어든(!) 사람들도 있어 보였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난 십년 후의 교회의 모습을 생각했다. 십년 후의 교회가 딱 이런 모습이리라. 말 그대로 가담하는 사람이 대부분 빠져 나가고, 소수의 열성당원들만 남은 교회. 지금 학생운동권이 보여주는 모습은 교회의 미래와 다름 없었다.
왕년에 최루탄좀 드셨다는, 돌팔매질 좀 해보셨다는, 그런 목사님들일수록 운동권에 회의적이다. 당신들도 다 해보셨다는 거다. 근데 그거 아시는가? 지금은 상황이 좀 바뀌었다. 그리고 세대가 바뀌었다. 님들이 아무렇지 않게 씹어드시고 무시하시는 20대 친구들 중에 작지만 아름다운 각성들이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자기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등록금 문제, 취업 문제, 경제적 난국의 문제 그 핵심에, 신자유주의가 있고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 경제체제와 권력구조가 있다는 걸 깨달은 20대들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기 시작했는데 열사였던 당신들은 운동권 냉담자가 되어 팔짱이나 끼고 높은 강단에서 쉰소리나 내뱉고 있다. (좀 감정이 섞였음을 고백한다.) 그나마 자기가 운동원이었다는 걸 고백하는 목사님들, 기독교인들은 소수다. 대부분은 그 성분이 바뀌어, 던진 돌과 질끈 묶은 머리띠로 이루어 낸 형식적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데 여념이 없다.
옛날의 극우 반공 분자들이 버젓이 '보수'이자 '전통의 수호자'로 탈바꿈하고, 그들과 대치하여 피터지게 싸우던 몇몇 분들은 '화해', '진보' 운운하며 정치판에서 그들과 손을 맞잡았다. 손을 잡으니 교감이 있었던 걸까? 사상이 뒤얽히고 뭔가 변화가 일어난 걸까? 어느샌가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엎치락 뒤치락 여당 야당 하면서 사람들이 오가고, 그러면서 누가 보수고 누가 진보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런 상황을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근본주의자들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자와 진보, 보수 근본주의자들끼리는 통하는 데가 있는데, 그건 바로 '배타성'이다. 때론 이 배타성이 공격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수비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쨌든 그들은 자기가 가진 도그마가 아니면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옛날의 그 구호로, 옛날의 그 방식으로 박터져라 싸운다.
뭔가 새로운 길이, 탈출구가 필요한 사람들은 운동권으로, 교회로 발길을 향하고 그들의 도그마를 받아먹고 자란다. 그리고는 그 조직의 충실한 일원이 되어 사람들에게 무작정 들이민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독재 타도! 민주주의!" 근데 어쩐다, 이제는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일단 그런 진부한 구호들에 질렸고, 둘째로 그들의 무식한 삶의 모습에 질렸다. 구호는 있는데 삶이 없다는 게, 그래서 설득력이 없다는 게 요즘 사람들의 평가다.
결국 불쌍한 건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이다. 대중들은 냉담하고, 위에 있는 사람들은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여기에 진리가 있다!'고 들이미는 사람들은 끌리긴 하는데 뭔가 이건 아니다 싶다. 그러니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은 운동권이든, 교회든, 갈 데가 없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4월 30일 고려대 강당에서의 만남은 '뭔가 해 보려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이었다. 기독교 냉담자들은 운동권으로 갔고, 운동권 냉담자들은 기독교로 갔는데, 그들 사이에는 운동권도 기독교도 딱히 다른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라 서로 비슷한 마음과 목적으로 모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쌍용차 노조에서 나오신 연사께서 열변을 토하시는 동안 강당 뒷켠에서 조용히 십자가를 꺼내 놓고 촛불을 진열하며 예배를 준비했다. 반짝반짝 켜진 촛불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담은 '낙인'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기 위해 강당 불이 꺼지는 바람에 더욱 밝게 빛났다.
그 때였다. 우리 일행이 아니었던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불을 붙이지 않은 촛불에 불을 붙였다. 능숙한 솜씨를 보니 카톨릭 아니면 성공회 신자인 듯 했다. 그는 잠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더니, 이내 운동권 무리들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십자가'와,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은 그렇게 만났다.
많은 말이 오간 것도 아니고, 따뜻한 눈길이 오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예수는 약하고 억눌리고 피곤하고 지치고 눈물나고 절망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앞이 캄캄한 사람들의 친구로 현현하셨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영상을 보다가 눈물을 터뜨린 한 친구를 그 자리에 함께 하셨던 예수께서는 위로하셨으리라.
운동권은 그렇게 조금씩 삶과 접속되어 갔다. 삶의 조건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실천을 유도했다. 인간다운 삶을 향한 몸부림이 이제는 행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교회는 그렇게 조금씩 삶과 유리되어 왔다. 교리와 교회 건물 속에 갇힌 사람들은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라'라는 말조차 자기 편한대로 번역해 버린다. 조금 구제하고, 조금 나눠주고, 불쌍한 사람들 안쓰럽게 쳐다보고, 그들에게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는 건 그런 의미다.
운동권은 투쟁과 삶이 유리됨으로 점점 죽어갔었다. 그리고 시간차만 있을 뿐, 교회도 이미 그 전철을 충실히 밟으며 죽어가고 있다. 성서와 삶, 예수와 현장 사이에는 교리와 교회라는 두꺼운 유리가 있어서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왜곡하고 있다. 그 초점을 흐리게 하고 있다. 그 초점을 다시 바로 맞출 방법은 없는 걸까?
그 방법을, 영리한 독자라면 이미 '강당 안에 계셨던 예수'에게서 발견했으리라 믿는다. 그것이 답이다. 삶의 치열한 현장을 바로 보고, 그곳에 예수가 있게 하자. 분명 그 예수는 문전박대 당하지만, 그 예수를 따라 성문 밖으로 나가자. 그리고 예수와 끌어안고 함께 울자.
강당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갔을 즈음, 그 공간을 채웠던 건 사람이 아니라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우리와 함께 하소서..."라는 간절한 고백이었다. 나는 그 강당, 그 자리에, 여전히 그 찬송의 기도 소리가 울리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