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삿포로 여행 1 : 배웅
아내가 삿포로로 떠난 첫날. 출근을 위해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아내로부터 공항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나는 좋겠다고, 여행을 즐기라 답장했다. 1200km가 넘게 떨어진 타국 땅에 있지만 실시간으로 소통이 되니 걱정할 게 없다. 아내가 보내온 몇 장의 사진 속 삿포로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었다. 내리는 눈은 없어 돌아다니기 불편해 보이진 않았다. 다행이었다.
작고 소중한 가게를 홀로 지키며 밤에 볼 영화를 검색했다. 아내가 친정에 가거나 여행을 떠나면 미뤄뒀던 영화를 보는 습관이 있다. 나는 여기에 <혼자 보는 영화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번 폐막하고 나면 또 언제 다시 개최될지, 일정도 기간도 알 수 없는 오롯이 혼자만의 축제랄까.
시작은 몇 년 전. 친정집 일로 아내가 집을 비우게 된 날 밤. 무료함이 몰려와 영화나 하나 볼까 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 홍상수의 <강변호텔>과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장률의 <경주>, 이정재의 <헌트>. 태어나 처음으로 이틀간 다섯 개의 영화를 봤다. 그때 느꼈던 충만감이 좋아서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는 습관이다.
영화를 볼 때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감독과 메시지, 모티브에 끌려 영화를 선택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봤다는 영화는 '이유'가 궁금해서 보기도 한다. 혼자 있을 때의 선택 기준에는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아내의 취향과 다를 것. 특별히 같이 볼일은 없을 영화를 골라 본다. 주변에서는 '그래도 영화는 같이 봐야지!', '사랑하는데 그것도 못 참아 주냐?'라는 의견을 듣기도 했다. 철없는 소리다. 한 사람이 무조건 참는 건 어른의 사랑이 아니다. 부부는 영화 말고도 취향을 양보하거나 배려해야 할 일이 차고 넘친다. 대화를 통해 서로 합의만 되어 있다면, 각자 취향의 영화를 즐기고 서로 추천해 주거나 함께 보기도 하는 게 건강한 부부라 생각한다. 아내도 좋아한다.
이번 <혼자 보는 영화제>는 4박 5일간 열린다. 총 10개의 상영작이 정해졌다. 장률 <군산>. 홍상수 <탑>, <소설가의 영화>, <북촌방향>. 김성수 <서울의 봄>.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걸어도 걸어도>. 이창동 <밀양>. 왕가위 <화양연화>, <아비정전>. 이 영화들을 '꼭 다 보고 말 거야'하는 의무감은 없다. 체력이 허락하여 다 볼 수도 있고, 다른 일이 생기거나 흥미가 떨어져 몇 개 밖에 안 볼 수도 있다. 영화를 보러 플랫폼에 들어갔다가 다른 게 눈에 띄면 그걸로 대체할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혼자 보는 영화제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