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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위 Apr 11. 2024

아내의 삿포로 여행 3 : 러브레터

아내가 삿포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 비행기 탔어"


 출근하기 전 벼리의 노즈워킹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에 가있던 아내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드디어 비행기를 탔다고. 어젯밤 아내는 자기 전에 짐을 다 싸두었다며 메시지를 보냈었다. 함께 온 사진 속에는 더 무거워졌을 캐리어와 그 위에 쌓아 올린 짐가방 두 개가 있었다. 이제 여행이 끝나가는구나, 근데 저걸 혼자 어떻게 다 들고 오려나 했었다.


 며칠 못 보기도 했고 짐도 많아서 KTX로 마중을 나갔다. 서울역발 KTX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하나둘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왔다. 조금 기다리자 후드를 뒤집어쓴 아내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는 나 여기 있다고 손을 흔들었다. 내가 반가움을 느끼기도 전에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겨우 3박 4일 떨어져 있었다. 시시 때때로 메시지를 주고받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보고 싶었나 보다.



"삿포로 재밌었어?"

"응. 나 없다고 안 울었니?"

"안 울었는데."


 아내는 익숙한 장소에 도착해자 긴장이 풀린 건지 평소처럼 내게 장난을 쳤다. 삿포로에서 인천공항까지 세 시간. 인천공항에서 서울역까지 한 시간. 다시 강릉까지 KTX를 타고 두 시간. 아내는 3박 4일의 여행과 다섯 시간의 이동거리 그리고 무거운 짐을 지니고 다니느라 몹시 지쳐 보였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친구들과의 여행이야기와 함께 삿포로에서 사 온 물건들을 잔뜩 풀어놨다. 먹거리부터 기념품, 의류, 화장품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내가 좋아하는 틴케이스와 초콜릿도 잊지 않고 사 왔다. 아내가 열심히 찍어온 사진들을 구경하며 밤을 보냈다. 사진마다 덧붙여준 이야기를 통해 삿포로의 시간을 함께 했다.



"부끄러우니까 나 잠들면 읽어."

"왜? 소리 내서 읽어야지!"


 새벽이 되자 아내는 졸려서 먼저 자야겠다며 내게 편지 하나를 건넸다. 홋카이도의 상징인 여우와 은방울 꽃 일러스트가 예쁘게 그려져 있는 편지봉투였다. 봉투 앞면에 손으로 눌러쓴 귀여운 'Love Letter'가 보였다. 뒷면에는 조그마한 삿포로 지도 모양 스티커가 붙어 있는 무려 러브레터였다.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편지를 읽었다. 아내가 여행을 떠나던 날, KTX 열차 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배웅하던 그때. 나와 아내는 같은 감정을 느꼈었나 보다. 삿포로에서 써 내려간 아내의 편지에는 그리움과 고마움을 곁들인 러브레터였다. 편지를 다 읽고서 울컥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가슴의 통증이었다.


 사랑 안의 부부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처음 사랑했던 두 줄기의 마음이 흘러 한 곳으로 고이면 믿음이라는 깊은 호수를 만들어간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무를 심고 꽃을 피우고, 사슴과 새를 불러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가끔이라도 이렇게 '내가 너의 마음을 알고 있어. 나도 같은 마음이거든.' 하고 넌지시 알려준다면 깊은 위안과 함께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표현을 아끼지 말자.

 나는 곧 혼자서 경주여행을 간다. 경주에서 아내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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