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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위 Apr 17. 2024

내 기특한 뇌 이야기

"저쪽에 ㅇㅇ씨 있었어."

"응? 저 사람이 ㅇㅇ씨라고?"


 경포호수를 산책하고 초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서 나오자 아내는 아는 사람을 봤다고 말했다. 나는 아내가 가리키는 사람을 힐끗 쳐다봤다.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 중에 가게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전에 두 번 정도 만나 대화한 적 있는 사람인데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게 처음이 아니다. 한 번은 아내의 지인이 우리 가게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반가운 얼굴로 내게 다가오셨는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났다. 몇 달 전 그분의 전시회도 찾아가고 인사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알아보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었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잦아졌다. 한두 번 본 적 있는 사람이나 TV에 자주 나오는 배우나 아이돌의 얼굴도 쉽게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다 당연히 알법한 얼굴까지 놓치기 시작했다. 아내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며 걱정 말라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가족과 친구의 얼굴은 잘 알아보고 있으니 안면인식장애도 아니었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스스로를 지각하자 슬픈 감정이 느껴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예전의 나는 얼굴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번 본 사람(직접 만나지 않아도)의 얼굴과 이름, 직업 정도는 쉽게 기억했다. 누군가 물어보면 떠올리지 않아도 정보가 착착 뽑아져 나왔다. 몰라도 될 여자 연예인의 얼굴과 이름까지 출력되어 곤경에 처했었다.


 연고가 없는 강릉으로 이사를 오면서 다양한 사람과의 교류가 적어진 게 이유일까 생각했다. 아니면 장사를 하면서 날마다 다른, 너무 많은 사람의 얼굴을 마주해서일까. 나를 가여운 마음으로 바라보자면 후자가 더 원인에 가까워 보인다. 내가 원하지 않음에도, 무의식에 의해 매일 만나는 사람의 얼굴이 모두 관찰되고 저장된다면 나의 모자란 뇌는 과부하가 걸려버리지 않을까. 감사하게도 나의 뇌는 이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얼굴 정보를 스킵하는 기능을 활성화했을지도 모른다. 가게 밖을 나와서는 제때 기능 전환을 해주기를 바라는 건 나의 욕심이겠다.


 사실 가장 정확한 원인은 나이로 인한 뇌기능 쇠퇴임을 알고 있다. 20대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도 몸은 마흔을 넘은 나이를 가졌다. 언제까지 똑같은 기능을 갖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모두 막을 수는 없다. 흠뻑 젖어 감기에 걸리지 않게 작은 우산 하나 있으면 된다. 의학적 소견이나 과학적 사실이 어떻든, 나는 그저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기특한 뇌를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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