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의 날이야."
출근 준비를 위해 씻으려고 하는데 아내가 탁구공을 던지듯 가볍게 말했다. 나는 외부로부터 입력을 받으면 정보를 찾아보는 성격을 가졌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오늘 4월 23일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이었다. 위대한 두 작가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 로미오와 줄리엣의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동시에 사망한 날짜를 선택했다는 스토리가 관련 기사마다 빠지지 않고 적혀 있었다. 매해 반복해서 언급될 정도니 저 날짜를 정한 사람은 대단한 마케팅 재능을 가졌었나 보다.
'ㅇㅇ의 날'은 대부분 공휴일이 아니다. 큰 기관에 의해 공식적으로 지정된 날이 있는 반면 작은 단체들끼리 만들어 두고 기념하는 날도 있다. 당연히 일반적인 달력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우연히 발견되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살아났다가 다음날이면 사라진다.
책의 날, 시의 날, 물의 날, 지구의 날, 평화의 날, 인권의 날, 소방관의 날, 노인의 날... 각각에 부여된 고유한 날짜는, 해마다 사람들의 기억 속 자물쇠를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그중에서도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소중하지만 잊고 살아가기 쉬운 이름이 붙어있는 '날'들을 만나면 반가움과 애틋함이 동시에 다가온다.
오늘 만난 <책의 날>은 어떤 시대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최근 기사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6명이 일 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고 있다고 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의 연간 종합 독서량은 3.9권이었다. 독서량이 아닌 도서 구매량은 종이책 1권이었다. 통계라는 건 한 달에 몇 권씩 책을 구매하는 사람이 함께 만든 평균값이고. 그마저 베스트셀라와 스테디셀러를 제외하면 생계가 막막하다는 작가들과 위기를 외치는 지역서점의 목소리가 슬프게 느껴졌다.
1990년대 초의 어린 시절, 책을 정말 좋아해서 부모님께 서점을 하자고 졸랐던 때가 생각났다. 집이 서점이면 원하는 책을 아무 때나 마음껏 볼 수 있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멀쩡히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었던 아버지는 어이가 없어 콧방귀를 뀌셨다. 어머니는 나중에 커서 네가 직접 차리라고 웃으셨다. 지금이야 공무원을 버리고 서점을 차린다거나 자식에게 서점을 운영하라고 권하는 게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IMF 이전 90년대는 즐겁게 웃고 얘기할 수 있었던 서점 호황의 시대였다.
"책의 날이니까 책 사러 가야겠다."
"응? 인과가 그렇게 되는 거니?"
"책에게는 그게 선물이니까."
잠깐 옛 생각에 빠져 유영하고 있을 때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책을 사겠다는 말을 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 책에게 선물을 하는 건지, 책이 아내에게 선물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또 새로운 책이 들어올 것은 분명하다.
나와 아내는 둘 다 책을 좋아한다. 우리는 술과 옷 대신 커피와 책을 사는 사람들이다. 예전 집에서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올 때, 공간에 비해 책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눈물의 이별을 했었다. 이제 책은 조금만 사자고 그렇게 다짐을 했었건만 또다시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책들이 쌓여있다.
사실 아내는 사기보다 읽기를 좋아하니 문제는 나였다. 나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서점에서 호감이 가는 책을 만나 집까지 모셔오는 과정에서 더 행복감을 많이 느낀다. 독서광은 아니라서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
그런데 때마침 세계 책의 날이라니. 오늘 책을 사는 행위는 얼마나 의미 있고 지당한 일인가. 아내에게는 그게 무슨 논리냐고 어이없는 표정을 보였지만, 속으로는 아내가 어떤 새로운 책을 데려올까 기대가 됐다. 저녁에는 책갈피를 꽂아둔 책을 꺼내야겠다. 책은 아내가 산다고 했으니, 나는 책장에 외롭게 꽂혀있던 책을 읽음으로써 책에게 선물을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