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언제나처럼 출근 시간이 닥쳐와서야 집을 나섰다. 거울 속 옷매무새를 보고, 집에 놓고 나온 건 없는지 점검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앞에 수녀님 한 분이 서 있었다. 몇 층이시더라. 오가는 길에 간혹 마주쳐서 가벼운 인사만 전하고 있는 분이다. 오늘도 '안녕하세요' 한마디 남기고 얼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고 했다.
문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수녀님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짐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말없이 오름 버튼을 눌러 문을 고정하고, 수녀님이 짐을 다 실으실 때까지 기다렸다. 수녀님은 무척 고마워하시며 짐을 차례차례 안으로 옮겼다. 나는 마흔 살이 넘어서도 '제가 엘리베이터 잡고 있을게요. 천천히 하세요.' 한마디 덧붙이지 못한 스스로가 한탄스러웠다. 그렇게 몇 초의 시간이 지났다. 수녀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엘리베이터 밖의 내게 말했다.
"축복을 빕니다."
축복. 겨우 손가락 하나 움직여 버튼을 눌렀을 뿐인데. 다급한 마음을 풀어줄 쉬운 말 한마디도 못해 드렸는데. 무거워 보이는 짐을 같이 옮겨드리지도 않고 보고만 있었는데. 이런 내게 축복을 빌어주셨다. 수녀님의 한마디가 귓가를 스치자마자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충만해졌다. 행복으로 단단하게 뭉쳐진 감사한 하루를 보냈다. 글을 쓰는 지금이야 아까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움에 사로잡혀 있지만. 나도 사소한 것에 감사하고 진심으로 축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수녀님이 내게 주신 과분한 축복을 나눠주고 싶다.
"축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