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P라서 일까? 아니면 인생은 원래 이런 것일까?
인생을 논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살아온 건지는 모르겠다. 과연 인생이라는 것을 정의하려면 얼마나 살아야 그 자격이 주어질까.
그렇지만 지난 나의 30여 년의 인생을 돌아보고 그 속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내 인생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기보다는 우연에서 행운을 찾아온 것 같다.
꿈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입사한 치과에서 도망치듯 나와 그냥 기숙사만 제공되면 된다는 조건 하나로 선택한 직장.
처음 몇 개월은 적응하기에 오히려 어려웠던 것 같다.
이 직장에서, 이 원장님은 어떤 치과위생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나를 고용했을까?
이는 궁금증이기도 하면서 부담이기도 했다.
친구의 소개로 입사했기 때문에,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돌아올 불만을 나 혼자만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객관적으로 "어떠한 치과위생사를 원한다"라고 제시가 되면, 그 요구에만 집중하여 맞추면 되기 때문에 쉬울 테지만, 표면적으로는 딱히 바라는 것 없어 보이면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분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러서 혼내거나 개선점을 짚어주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눈치만 보이는 그런 상황이랄까.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너무 나를 갉아먹지 말자며 여유로운 척하며 근무를 하던 때에, 치위생과 학생들이 임상실습을 위해 우리 치과에서 몇 개월 간 지내기로 했다.
물론 학생들이 학교에서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고 왔겠지만, 너그러이 품어주시는 교수님과 배움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대학교와 달리 이곳은 환자들을 위한 임상기관이기 때문에, 실수를 눈감아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똑똑하고 야무진 친구들도 바짝 긴장하고 하루를 보내는 기간이 실습기간이다.
하루는 그렇게 어려운 진료가 아니었고, 내가 이제까지 봐왔던 원장님들은 협조자 없이 혼자서도 진료를 처음부터 끝까지 잘 마무리하셨기 때문에 학생에게 실습을 맡겨도 괜찮을 거라고 판단해 한 학생에게 기초적인 진료이니 진료 협조를 해볼 것을 지시한 적이 있었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석션(suction, 아마 의학드라마를 통해 자주 들어보았을 것이다. 치과의 경우에는 구강 내에 있는 물이나 침, 혈액 등을 기구를 이용해 빨아내는 것을 의미한다)을 해야 하는 타이밍에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나는 환자 앞에서 학생들에게 훈수를 두는 것을 지양하기 때문에, 이따가 진료를 마치면 지도해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원장님께서는 나와는 다른 기준으로 진료에 임하고 계셨기에 즉시 피드백을 해주지 않는 나의 태도에 불편함을 느끼셨던 것 같다.
나에게 이 치과를 소개해준 친구가 임상 근무 선배로서 나에게 그런 상황에서는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학생과 손을 바꿔 진료에 협조했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가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그렇지만 원장님이 너무 환자 앞에서 학생에게 면박을 주신 것 같다. 다른 원장님들은 혼자서도 잘만 하시는데'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친구가 "그건 다른 원장님들이고, 이 치과에 왔으면 우리 원장님 스타일에 맞춰야지"라고 나의 잘못된 태도를 짚어주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얘가 왜 이렇게 말을 날카롭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빴지만, 곱씹을수록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다.
그때부터 원장님은 어떤 스타일로 진료를 하시는지, 직원들은 어떻게 대하고 생각하시는지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원장님을 고용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어느 정도 파악해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내가 파악한 이 치과의 원장님은 MBTI로 따지면 ISTP나 ESTP였다.
현실주의적이며 감정적이기보다는 객관적이고 계획이나 대책을 미리 세워두시지는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나니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개선되었으면 하는 것들도 어떤 식으로 원장님께 제안드려야 성공확률이 높아질지 갈피가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