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번째 같은 말을 반복하는 엄마와, 그 소리가 듣기 싫은 나 사이에서 전쟁은 예고된 일 같았다.
강아지에게 치명적인 ‘심장사상충’ 약을 먹이자고, 사료 줄 때 절대 주지 말 것을 알리고, 이렇게 하면 좋고 저렇게 하지 말자 등등 내 잔소리가 늘어날수록 부모님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그저 전원생활의 외딴집을 지켜 줄, 낯선 사람 나타나면 우렁차게 짖어 줄 존재가 필요했을 뿐이다. 때마침 여든이 넘은 이모부가 힘에 부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하셔서 입양하게 된 진돗개 한 마리.
우리집 ‘짱’이는 그렇게 내 인생 첫 강아지가 되었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빠랑 같이 짱과 처음으로 아침 산책을 나가던 날의 그 느낌. ‘산책’이라는 말의 의미 자체가 달라지고, 눈에 보이는 모든 동물이 이젠 다르게 보인다. 추석 전부터 몇 주째 부모님 댁에 머물며 매일 산책을 함께 하고 있다. 산책을 마치면 밥을 챙겨주고, 털 빗질도 해주고, 발라당 누우면 배도 만져주고, 간식이나 장난감 쇼핑에도 정신이 팔린다.
개에 대해 궁금한 것 투성이니 열심히 공부도 한다. 유튜브와 포털 검색, 진돗개 카페(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온갖 정보를 찾느라 바쁘다. 그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먼저, 짱을 열심히 관찰해야 한다. 꼬리를 흔들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가끔 짖을 때의 발성과 표정 차이, 처음 주는 개껌이 이빨에 무리가 가진 않는지, 발톱 상태는 괜찮은지, 진드기는 없는지... 관심은 세심한 보살핌으로 이어졌다.
그 녀석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울컥해서 눈물이 난 적이 두어 번 있다. 좀 생경한, 측은지심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이상한 기분이었고 아주 많이 슬펐다. 오바액션인지는 몰라도 심지어 짱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상상도 해봤다. 신기한 건 시간이 지나 아빠도 엄마도 짱이 때문에 눈물을 보였다는 거다. 그 뒤로 짱이를 통해 깨달은 것은 한 단어로 정리되었던 것 같다.
생명.
우리가 말과 글로 나눌 순 없어도, 그래서 가끔은 그 아이의 눈빛이나 행동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그도 나도 살아있다는 것. 지금 우리가 ‘생명 대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시간 차이를 두고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리라는 것을 떠올리면, 정답은 분명하다.
사랑만 하기에도, 시간은 한없이 모자라다.
개는 개라고 혀를 끌끌 차던 엄마는 그래서 현재 어떻게 되었느냐,,, 짱이 좋아하는 고구마를 사료 위에 발라주고, 북어 넣어서 미역국도 끓여주신다. 매일 그렇게 특식 주다간 사료 안 먹으니 적당히 하시라 말려도 소용이 없다. 서울에 돌아온 딸은 그렇게나 전화 안하다가 짱이 잘 있냐고 겸사겸사 문안(?) 인사를 드린다. 짱에게 이렇게 될 줄, 짱이 처음 우리에게 왔을 땐 미처 몰랐다. 짱은 더 이상 그냥 개가 아니다.